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산산히 부서지는 갈망 속에 타들어가던 애절함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었고, 눈물 방울은 끝무렵에 걸쳐있었으며 서로의 손은 맞잡은 채로 무참히 찢겼다. 그의 뜨겁던 몸뚱아리와, 귓 속에서 흩어져버리던 약한 숨소리마저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했던 때가 무색하게 나는 기억 속에서 완전하던 당신을 조각내고선, 애써 조각난 기억의 산물을 전부 무의식의 심해로 던져버렸다. 다신 그 기억을 꺼낼 이유도, 그럴 일도 없으리라.

 그 날 그렇게 다짐하고선, 다시 그가 생각났다. 그는 나의 구원자이고, 내 인생에서 전환점에 서 있던, 그 구원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바라건대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길 빌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3년 전, 자살기도를 하던 나를 구해주었다. 이젠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비오는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걸었다.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여전히 어둑하게 깔린 어둠에 앞은 보이지 않았으며, 껌벅거리는 가로등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았다.

 빗 속을 뚫고 지나쳤다. 차들은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엔,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한 개 외엔 전부 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는 그 밝은 가로등 불을 흐릿한 눈길로 응시했다. 추위에 나뒹구는 시체가 있다면 시청에서 처리해줄까. 유서라도 써놓는게 좋을까, 와 같은 의미없는 물음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그 날 죽음을 각오했다.

 실은 죽더라도 밝은 곳에서 죽길 원했다. 앞으로 계속 사람이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은 골목이었다. 그 흔한 고양이 조차도 없는 걸 보면 사람도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비가 와서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명 정도는 지나면서 죽어있는 내 시체를 발견하고선 누군가가 처리할 게다. 그저 죽음은 예견된 미래였다.
 그 때, 누군가가 제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앉아 있으면 감기 걸리실텐데."

 그 남자였다.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눈매마저도 아름답던 그가 제게 말을 건네왔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선 내 손을 맞잡았다. 이미 내려간 체온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하고선, 근처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나는 별 수 없이 경찰서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제 갈 곳이 없었다. 그가 내 보호자라는 말을 하고서는 경찰서를 나섰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금 있다가 돌아온다는 그 남자의 말이 귓가에서 헛돌았다. 뺨 끝 언저리에 남은 그의 온기는 다시 차갑게 변질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으나 나는 경찰에게 내 신원에 대한 진술을 해야했다. 몇일 전 일어난 주택 살인사건의 피해자이며, 나를 제외한 가족 전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할텐가? 나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아니, 그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사체가 되어 그냥 거리의 쓰레기로 전락되어 땅 어딘가에 묻혀졌을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다시 시작해야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까지 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이제야 내가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1

첫 만남은 우연

 

 

 필연은 아닐지언정, 그건 우연에 가까웠다.

 그 날은, 그의 은퇴기사가 공공연하게 떠다니던 날이었다. TV를 쳐다보던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탁상위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옮겼으나, 불행하게도 온통 자신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다시 선수생활을 재개하지 않을까, 와 같은 여론이 몰려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손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오이카와는 움직거리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뚜둑거리던 뼛소리와 손의 감촉이 선명하게 제 기억을 덮친다. 그리고 뒤이어 차가운 감촉이 제 손을 어루만졌다.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냐며, 천장에서 밝게 새어나오는 빛 때문에 검은 그림자로 보일 뿐인 지극히 평범한 남성에게 따지듯이 입을 열었으나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신은 점점 무뎌졌으나 신경은 무뎌지지 않고 선명했다. 살갗을 파고들어오던 쇳덩이의 감촉이 신경을 자극하고, 거의 산산 조각난 뼛조각에는 마취약이 들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몸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수술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뿐이었다.

 마취의 효과가 떨어지자마자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성급하게 끊어진 신경을 이어 붙인 듯 뼈 마디마디에 통증을 느꼈다. 오이카와는 깨어나지 않으려 했으나, 시끄러운 소음이 귓가를 파고들어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하지만 그를 깨우려는 건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마취에 풀려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리던 그의 손을 잡은 건 감독님이셨다. 그는 아직 마취가 덜 풀렸는지 눈은 반쯤 감은채로, 죽은 사람이 이승에 내놓은 영혼을 찾듯이 필사적으로 손을 잡았다. 그러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순간 오이카와는 몽롱한 상태였으나 자신의 몸이 뜻대로 할 수 없어졌음을 깨닫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허공을 휘젓던 손과, 감독님의 억센 손아귀에 팔목이 잡혔을 때조차도 반항하던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손에 힘을 풀었다. 살짝 뜬 눈 위로 수술실의 전등이 어른거리고, 그 위로 감독님의 얼굴이 덧대어졌다. 병원 특유의 시큼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정신마저도 잠식된,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는 비로소 다시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했다. 하마터면 그대로 죽을 뻔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테다. 아무래도 뒤 끝이 찝찝하더라니.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손을 애써 감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야에 들어온 건, 도쿄 대학 병원의 마크가 새겨진 병원 이불과 입원실 내에 비치된 작은 냉장고, TV정도뿐이었다. 창문은 열려있었다. 1인실이어서 딱히 시끄럽지는 않았으나,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아마 감독님께서 열어 놓으셨을 테다. 이 추운 겨울에, 대체 왜. 환기를 위해서? 아니. 바깥의 공기를 맡고, 어서 일어나라고. 무의식중에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 공기만 맡다간 그대로 갈지도 모르겠다고. 먼저 가 버릴까봐, 불편하다고. 정작 감독님께선 불편하게 간의 침대에서 숙면을 취하고 계셨다.

 아직 밤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다시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주변은 금방 어두워졌다. 정신은 또 다시 잠식되었다.

 "……야, 오이카와. 오이카와 토오루!"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부름은 다시 귓가를 간질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신경이 곤두섰다. 상대는 오이카와를 깨우려고 그의 손을 잡았다. 익숙하지 않은 감촉에 팔이 경련했다. 오이카와가 애써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온 건, 손을 잡고 있는 선배의 뻔뻔한 낯짝이었다. 순간 그 간의 서러움이 치솟았으며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으나, 손이 저 상태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탓에 가만히 누워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는 팔꿈치로 간신히 자신의 몸을 지탱해 일어섰다. 침대에 있는 기계로 올라오고 싶었으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애달프게 시선을 외면하고 있는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까닭이었다. 속으로는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도 얼굴에는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배는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무심하게 내뱉고선,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이카와는 힘을 주지도 못하는 손에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다시 뼈마디에 통증이 느껴졌다. 선배는 아마 이 미묘한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평소에도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단번에 움직임을 알아차리고선, 창가로 돌리고 있던 시선을 다시 마주했다. 여전히 그의 눈은, 냉동 창고에 처박힌 동태눈처럼 흐릿했다.

 "사고였습니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님도 코트에 나가고 싶어 했지 않습니까?"

 "……."

 "아, 당신의 그 짓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겁니까?"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분명 아픈 환자에게 손을 올리긴 했지만 차마 때릴 순 없었을 것이다. 아마 마음속으로 이놈을 때릴지 말지에 대한 내적갈등을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이카와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들어올렸다. 보기에도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을 조심히 접었다. 말려 들어가는 마디가 퍽석하게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이 손은, 10년간 코트 위에서 썩혀왔습니다. 애초에 이 손은 배구 밖에 모르는 손이었단 말입니다. 당신이 가르쳐 준 그 짓 빼곤,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죠. 아아, 당신이 생각하는 그 짓도 못하겠네요. 아쉽겠네. 근데 그건 압니까? 이거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선배가 직접 하지는 않으셨죠. 하지만 당신 때문에 선수 생활도 끝이란 말입니다."

 "치료 끝나고 다시 돌아오면…."

 "시합이 애들 장난입니까? 공백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단 말입니다."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다. 다시 배구 선수로 복귀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어렸다. 그래서 치료가 끝나면, 주전 세터로 팀을 이끌어 나갈 선배에게서 다시 주전 자리를 받아오고, 반드시 밟아 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오이카와 씨. 당분간은 손을 쓰지 않도록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애써 뼈를 붙여놨는데, 다시 수술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가만히 놔두십시오. 그리고,"

 "그리고?"

 "선수 생활은 은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손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거기서 연습으로 손을 혹사시키면 수술은커녕 손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으니까."

 청천벽력인 소리였다. 다신 손을 쓸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깐깐하게 생긴 의사는 회진하던 도중이었으므로 다른 환자를 진료하러 나갔고, 오이카와의 손을 붙잡고 있던 여 간호사들도 재빨리 따라 나갔다. 남은 건, 감독님과 선배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손을 매만지던 여 간호사들의 감촉을 곱씹었다. 그러다가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반반한 낯짝이었으나 흐릿한 눈빛사이에 비친 제 모습과 견줄 만큼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감독님을 불렀다.

 "감독님. 아무래도 이 손으로 시합에 나가긴 힘들 것 같으니까, 은퇴하겠습니다."

 "오이카와."

 "죄송합니다, 감독님."

 감독님께선 아무 말 없이 오이카와의 손을 쓰다듬었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마음속에서 끓어오른 아쉬움은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이게 전부 다 그 사람 때문인데, 앞에 있는데도 화낼 수 없는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그런 희망은 무색하게도 깨어진지 오래지만.

 선배는 다시 그 뻔뻔한 얼굴로 돌아와선 본성을 숨겼다. 어디까지나 착한 선배이자 후배 세터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불쌍한 사람으로 살았으니까. 하지만 연기는 거기서 그쳐야 했다. 굳이 그 작은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후배에게 역겨운 짓을 시키는 건, 짐승만도 못한 짓이었다. 정작 제 손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 당신이면서. 이제 와서 괜찮냐는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이렇게 되새기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오이카와. 그동안 수고했어."

 분명 위로의 말이었으나 그의 얼굴을 마주하니 결코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말없이 웃어보였다. 입 근처에 살짝 걸린 미소가 흡족스러웠는지 선배는 감독님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오이카와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쨍했으며,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답게 서늘했다. 오이카와는 다시 그 고통-차가운 쇳덩이가 들락날락거리는 끔찍한 수술-을 겪을 순 없다며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씁쓸함에 눈물이 떨어졌으나 그마저도 메말라 비틀어졌다. 볼까지 흘러내린 눈물이 목을 타고 침대 시트로 떨어졌다. 작게 새겨진 흔적을 눈으로 훑으며, 가까이 흩어지던 산만한 시야를 애써 한군데로 모으고선 눈을 감았다. 눈물은 증오감에 뜨거웠다.

 잠은 들었으나 정신은 깨어있던 터라 감독님이 다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오이카와에게로 가서 한 번 지긋이 눈길을 주더니 다시 병실을 나갔다. 뒤 따라 왔던 선배도, 그 작게 찢어진 눈으로 침대를 응시하고선,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돌아갔다. 오이카와는 두 사람이 나간 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명확하게 귓가에 울릴 적에, 그 때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그 후로 다른 동료라든가 대학 동기가 찾아오기도 했으나 다들 괜찮냐는 물음에 그쳤다. 매주 한 번씩 매니저가 찾아왔고, 가끔씩 시간 날 때마다 감독님과 선배가 찾아왔다. 입원 기간 사이에 취재진들도 몇몇 찾아와선 기삿거리를 갖고 돌아갔다. 그 사이에 기자회견도 한 번 있었고, 도중에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모두 제 부주의인 탓이니 죄송하다는 둥. 다시 한 번 열심히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들께 사과드린다고. 정리되지 않은 언어를 내뱉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취재진들 사이로 마이크가 불쑥 튀어나왔다. 여러 기자들 사이로 껴있는 키 작은 남성기자가 제 얼굴 가까이로 마이크를 들이대자,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기에 앞서 그에게서 질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은퇴 후엔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지, 혹은 다시 선수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까에 관한 터무니없는 질문을.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질문이 돌아오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경호원들로 부터 제지당하긴 했지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그를 보자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들었다.

 퇴원하기 일주일 전쯤에는 이와이즈미가 찾아왔다.

 "너! 어떻게 된 거야."

 "미안, 너부터 찾았어야 했는데. 근황이 없어서."

 "손은."

 "보시다시피. 멀쩡해."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는 손을 들어 보이며 웃어 보이는 오이카와의 얼굴에 괴리감이 피어올랐으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분명 억울함을 토로하지 못하는 친우의 고충을 아는 탓이리라.

 "기자회견도 했고……."

 "이 손도 그 새끼가 한 짓이냐?"

 "아냐 이건 그냥 내 부주의로…신경 쓰지 마, 이와쨩."

 유일하게 선배의 악행을 아는 이와이즈미였으나, 그도 또한 울분이 터져 제대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거의 매일 병실에 틀어 박혀있었다. 하루는 이와이즈미에게 회사는 안 가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생각치도 못한 것이었다.

 "이와쨩, 회사는 안 가?"

 "너 나두고 갈 수 있겠냐. 손도 이 꼴이라서 아무것도 못하는 놈인데. 내가 없으면 너, 시도 때도 없이 간호사들 호출해서 부려먹을 거 아냐. 그 꼴 보기 싫어서 온다, 왜."

 "질투했어?"

 "아니거든."

 쉬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잠깐 점심시간에만 보러 오는 거니까. 너 또 다치면 큰일나잖냐, 얼빵한 놈아.

 이와이즈미의 장난스런 말투에 그만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보면서 진심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곧 손도 나아서 이제는 병원에 안 와도 될 것 같다는 아쉬운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너 같은 놈의 병 수발을 안 들어도 되니까 기쁘다는 둥의 의미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는 퇴원하면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초대와 함께 다시 회사로 향했다. 병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가 나가면서 다시 조용히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외롭게 텅 빈 병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가슴 한 켠이 아릿한 정적으로 휩싸였다.

 

❁❁❁❁❁

 

 다음 날,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대로 침대에서 뻗었다. 공식적인 발표와 두 번째 기자회견이 어제 이뤄졌으므로, 어느 채널로 돌려도 온통 오이카와의 은퇴기사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전원을 끄자 화면은 빛을 흡수했다. 그리고 방안에는 어두운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제 기사가 잠잠해질 즈음에 TV를 켰을 땐 배구경기가 한창이었다. 항상 벤치에 앉아 있던 선배는 코트로 나갔고, 그는 굉장히 큰 성과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이카와의 얼굴에 씁쓸함이 번졌다.

 팔은 분명 다 나았으나 뭔가 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집 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외로움에 정신이 이상해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텁텁한 목을 물로 적시고 난 뒤, 식탁 위에 있던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자리, 찾아볼까. 오이카와는 곧장 구인광고 사이트로 들어가 자신이 할 만한 일이 있는가를 우선 찾아봤다. 배구 코치가 제일 적당할 텐데. 그렇지만 아직까지 손목은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굳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 이와이즈미에게 한 대 얻어맞을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창을 껐다. 이렇게까지 무능력했던가. 배구에 인생을 건 대가치고는 너무나 비약했다. 곧이어 다른 직장을 알아봤으나 다른 조건이 걸림돌이었다. 결론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었단 게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기로는, 토오루는 아무래도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가수-혹은 배우-는 어떠냐고 많이 들어왔으나 반반한 얼굴과 달리 그런 쪽엔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뭐든 잡고 봐야했다. 오이카와는 며칠 전 들어온 드라마 섭외가 떠올라 담당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오디션을 보러 방송국으로 나오란 간단한 문자가 왔다. 오이카와가 오지 않을 시를 대비한 대타도 있었고, 아직 주연도 정해지지 않았으나 감독님은 오이카와를 주연으로 쓰고 싶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드라마의 주연이 배구 선수였고, 전반적으로 경험이 있는 오이카와가 주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감독님께선 그에게 섭외 문자를 보냈으나 아직까지 답이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일부 팬들로 부터 일어난 논란 중에는 아직까지 오이카와의 손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라 그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등의 의견도 있었다. 담당 작가님께선 오이카와가 맡게 될 작중 인물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고, 또 그런 미숙한 선수가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으므로 오이카와가 아니라 다른 배우로 써도 무방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감독님께선 꽤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마 전화를 받은 그 시점에서 그는 결정을 끝냈을지도 모른다.

 오이카와는 준비를 끝마친 말끔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선수 생활하기 전에도 몇 번 입지 않은 정장을 이제야 입다니. 오이카와는 불편한 듯 몸을 움직거리면서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그가 찾은 곳은 2층 회의실이었다. 다들 배역 오디션을 보러 온 배우들로 가득 차있었는데 그 중에는 모델이나 가수도 적지 않게 보였다. 그런 쟁쟁한 인간들 사이에서 제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한편으론 의심이 되면서도 괜스레 기대감이 커졌다. 혹여나 자신이 주연으로 캐스팅 된다면 그거야말로 인생역전 아니겠는가. 오이카와는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간단한 면접과 연기로 심사를 했는데, 애석하게도 오이카와는 연기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오이카와의 연기력을 본 감독님께선 씁쓸한 미소를 한껏 얼굴에 머금고는, 아쉽다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그를 돌려보냈다. 무거운 발걸음을 조심히 떼어내자 그간의 긴장이 전부 발끝으로 쏠린 것인지 저릿함이 몰려들어왔다. 그래도 한 걸음씩, 비장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자책하고 있을 즈음,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려 문손잡이를 붙잡았는데 무슨 일인지 제 몸이 앞으로 쏠려나갔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부딪쳤다. 그가 제 몸을 감쌌기에 넘어지는 꼴은 면했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 온 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뭔가 했더니 그가 들고 있던 커피가 흰 셔츠에 묻어있었다. 거의 새 옷인데, 아쉽지만 오이카와는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하루 빨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했다.

 "아, 이런."

 그는 옷을 보며 난처해하더니 오이카와에게 되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가게로 가셔서 옷을 새로 맞추시는 건 어떠신지. 제 잘못인데, 이렇게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 옷이요?"

 "예. 디자이너, 마츠카와 잇세이입니다. 도쿄의 작은 상점에서 맞춤 정장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뭔가 낌새가 안 좋은걸 느끼긴 했지만, 우연이 이토록 틀어지게 된 계기는 단지 그와의 만남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놀라운 건, 그 사람에게 살짝 마음이 기울었다는 일일까. 첫 만남에 이토록 뛰는 심장이라니. 오이카와는 고장 난 제 심장을 계속 멈추려고 노력하며 그의 뒤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HQ!! > 우연의 굴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03. 오해는 금물  (0) 2016.10.09
02. 모델 해 볼 생각 없습니까?  (0) 2016.10.09




 강렬한 여운은 연주회장의 분위기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강하게 젖어드는 미묘한 울림이 귓가에서 일렁였다. 피아노에서 손을 좀체 떼질 않던 리에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사뿐히 들렸다. 어느새 관객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선, 가벼운 손놀림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던 리에프는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다시 대기실로 돌아섰다. 아쉬워 하는 관객들은 리에프를 향해 장미꽃을 날렸으나 리에프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제지하기 바빴다. 그에 한숨을 내뱉는 이들은 야쿠를 포함하여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바 리에프. 일본을 대표하는 러시아 혼혈 피아니스트. 올해 23살, 다수의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개인 공연을 하며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는 중.

 야쿠는 입으로 리에프의 프로필을 줄줄 외우며 대기실을 지나치고 있었다. 오늘에야 말로 리에프를 만나고 말겠다는 강렬한 외침과 더불어 더 이상은 참기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끼얹으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거기, 누구시죠."
 "네에, 관계잡니다만."
 "아,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린 룸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쳇. 아쉬움에 돌아서려고 하니 그린 룸에서 리에프가 튀어나왔다. 아! 저 기럭지 하며 날이 선 반듯한 눈매마저도 매혹적이다 못해 아찔하다. 또, 저렇게 가지런한 손가락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야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넋을 놓은채 리에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팬이신가봐요? 남자 팬은 드문데. 이런 팬서비스라도 괜찮으신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리에프는 야쿠의 손에 가볍게 입맞춘 뒤,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남자에게 손 키스? 먼저 든 생각은 떨리는 손을 주체 할 수 없었던 걸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겠다는 거였고, 그 다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어떻게든 붙잡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리에프에게로 뛰어가다가 그의 몸으로 쓰러질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멈춰섰기에 자신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저 귀한 몸에 흠집하나라도 나면 안 되지, 암. 야쿠는 그래도 자기 몸이 넘어졌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앞에서 리에프의 손이 어른거렸다.

 "괜찮으세요? 뛰어 오길래 멈춰섰는데 넘어지셔서"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급하게 뛰어오시던데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웃으며 물어보는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멎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점차 흩어지는 시선에 리에프가 두개로 나눠졌다. 의식이 점차 무의식으로 전이 될 즈음 고개를 흔들어 제지시켰다. 리에프를 바라보며 정확하게 말했다.

 "저, 팬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알아요. 제 팬이시니까 오신거겠죠?"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네. 저한테 뭐요?"
 "그, 그러니까…."

 직접 그를 대면하고 나니 말을 잇기가 껄끄러웠다. 당신에게 악보를 준 건 나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야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닙니다, 로 짧게 그와의 만남을 끝냈다. 그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야쿠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그 간결한 감정을 거두고는 자신의 팬이라는 남성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선 경호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야쿠도 언젠가는 꼭 다시 그를 만나리라고 다짐하며 짐을 챙기고 작업실로 향했다.

'HQ!! > 네코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야쿠] 웨딩화보  (0) 2016.10.09
[쿠로켄] 애증의 모순  (0) 2016.09.25
[리에야쿠] 입술이 닿는 거리  (0) 2016.08.28
[리에야쿠] 흔적  (0) 2016.08.02
[쿠로켄] 약속  (0) 2016.07.10




 애정은 고사하고, 오로지 증오로만 가득찼다. 단 한 가닥의 관심조차도 제게 남아있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늘, 그것도 항상 제 곁에 있었기에 어떻게든 떨어지려 해도 그럴 이유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제 인생의 이정표와 마찬가지였다. 굳이 나서서 그를 밀치고 제지할 필요가 없었단 것이다. 쿠로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말해보자면, 엄마랄까. 딱히 그렇게 대단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쿠로는 항상 나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난 쿠로를 좋아해. 근데 그거 알아? 난 쿠로가 싫어.
 이토록 변덕스러울까. 나는 머릿 속으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되려 헤집으며 어지럽혔다. 산산조각나 떠다니던 기억의 잔해들이 서로 부딪혔다. 쿠로오의 얼굴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휘젓다보니 어느새 쿠로의 손이 제 얼굴을 감쌌다. 쿠로오는 지긋이 바라보며, 그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로 뭔가를 지껄이더니 제 이마에 가볍게 입맞췄다.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역겨운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행위였기에 서로에게 딱히 흥분될만한 쾌락을 줄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쿠로는 매일 장난식으로 제게 사랑을 고백하며 안아주는게 고작이지만, 그것마저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실상은 게임을 하고 있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얼굴만 감상할 뿐이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흘렀다. 매일 부활동, 혹은 수업. 그리고 게임. 딱히 새로울만한 일도 없었다. 쿠로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이제 부활동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 리에프 때문에 깨어지긴 했지만.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따금씩 쿠로오가 학교로 찾아온 것 빼곤, 관심도 없었던 1년이 어느덧 흘러 성인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 넣었는데 하필 같은 대학. 쿠로오가 같이 방을 쓰지 않겠냐고 물어왔기에 괜찮다고 답했으나, 기숙사에 자리가 없어서 결국 승낙했다. 룸메이트로 지내는 것도 몇 달 뿐이다. 언제까지고 그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쿠로오가 지긋이 쳐다보는 눈길에 움찔했으나 여전히 손은 바삐 움직였다. 예전처럼 나를 안아서 무릎에 앉혀놓고 게임을 하는 일도 드물었거니와, 그런 제안을 하더라도 거절 할 생각이었다.

 "켄마. 게임 좀 그만해."
 " ……."

 별 수 없이 게임기를 내려놓자 쿠로오가 제게 다가왔다.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노트북 앞으로 다가가는 쿠로를 황망히 바라보며 다시 주저 앉아 게임기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손에서 게임기가 사라졌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언제 제 뒤에 왔는지 그가 게임기를 가져간 것이었다.

 "줘."
 "켄마…, 너."
 "응."
 "…하아. 아니다. 먼저 들어가서 잘게."

 그는 그 말을 뒤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시계를 한 번 보고선 방으로 들어갔다.

 쿠로오는 너무 감싸려고 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 절제가 안 좋은 방면으로 나타난게 틀림없지만,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단 것이다. 오히려 자신은 더 분명하게 표현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도 않고. 또, 아기보는 마냥 막 하지말라고만 하거나 챙겨주는 일은 삼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전에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었는데, 그때 과선배가 나를 들쳐업고선 집으로 갔을 때 쿠로오가 많이 화냈었다. 최근에도 담배를 피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했고. 대체 왜 혼나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단 것 빼곤, 그와 충돌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다.

 "쿠로. 좋아해."
 "켄마? 무슨 소리야?"
 "쿠로가 나 좋아하는 거 알고있어."
 "……"
 "왜, 왜 아무말도 안 해? 진짜야?"

 쿠로가 날 좋아하면, 날 좀 더 만지고 싶어하고, 또 막 그런 짓도 하고 싶어하는 게 남자아냐? 나만 남자야? 쿠로, 혹시 거기에 문제있는 건.

 "조만한게. 뭐라 지껄이는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그런 짓을 하려고 너를 사랑하지는 않아. 내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건, 마음 깊이 사랑하고 그저 묵묵히 안아주면서 네가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야."
 "……."
 "그리고 그건, 서로가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을 때, 그 때."

 그 때 하자.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렁였다. 아아, 이래서 난 쿠로가 싫어. 근데 날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거야? 전에 술 마시고 같이 왔던 여자랑 바람난 건 아니고? 점점 하고 싶은 말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일그러진 제 표정을 봤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는 그의 손길이 썩 나쁘진 않았기에 추궁하는 건 관두기로 했다.

 쿠로가 나를 사랑하는 것 만큼 나는 쿠로를 싫어해. 그리고 거기서 반으로 나눈 만큼 사랑해.

 오히려 증오가 마음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사랑을 속삭이는 이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일테다. 증오는 점차 절반으로 줄어들테고, 애정은 점차 배로 늘어날것이며, 그 때 마저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는지.

 애정은 점차 식어가고 증오는 타오르다가 사그라들었다. 결국 애증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다다랐다. 쿠로,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아. 그런 나를 당신은 사랑하고, 또 미워하겠지.

 결국은 애증이다. 서로의 관심을 짓누르며, 서로를 탐하다가 헤어지는 그런. 애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이 증오로 변질되어 머릿속에 남아있다.

 쿠로, 사랑해. 그렇지만 난 쿠로가 미워.
잇새로 흐르다 못한 말들은 혀끝에서 맴돌았다.

'HQ!! > 네코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야쿠] 웨딩화보  (0) 2016.10.09
[리에야쿠] 선율의 애로사항 (1)  (0) 2016.09.25
[리에야쿠] 입술이 닿는 거리  (0) 2016.08.28
[리에야쿠] 흔적  (0) 2016.08.02
[쿠로켄] 약속  (0) 2016.07.10



 "당신의 목에서 핏물이 떨어질 때면 내 온갖 신경이 마구 치솟아 오르면서 막, 막 이상한 감정이 차올라."

 당신이 제게 했던 말은 어느새 찢어진 붉은 입술에 먹혀 짙게 터져나오는 호흡에 갈라졌다. 그는 제게서 얻어내려고 하는 게 적지 않았으나 이토록 어이없게 단번에 저를 잡아먹으려 했던가? 그의 손길이 제 턱선을 따라 가슴 팍으로 내려가더니 어느새 허리에 다다랐다. 그는 끈적한 손길로 제 허리를 감싸더니 또 다시 제 목부근에 머리를 박고선 흐르는 핏물을 조심스레 핥아먹고 있었다.

 "당신 피는 야해서 좋아. 최근에 먹은 피 중에 당신 게 제일 좋았단 말이지."
 "잔말말고, 빨리 드시고 꺼지시죠."
 "너무 야박하네. 말했잖아. 이제 당신 피 말고는 먹을 피가 없다고. 다른 피는 다 더러워 보여서 말이지."
 "그냥 저를 죽이시고 피나 실컷 먹으신 뒤에 버리시는게,"
 "너를? 너를 죽이란 말이야? 대체 왜? 몇 일만 쉬면 새로운 피가 샘솟을 텐데, 내가 뭘 위해서 그래야하지? 한 순간의 행복을 위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님 말고요."

 당신은 아마 제 피가 탐나기 때문에 내 곁에 머무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갈 곳 없는 나를 붙잡아 집을 내어주었고, 음식도 건네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피를 내어주는 것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는 꽤나 친절했다. 고작 피를 먹겠다고 충분한 음식을 매일 내어준다든가, 다정하게 제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연인같이 보이기도 했다. 정작 그는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지만.

 "저기요, 뱀파이어 씨?"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몰랐다. 딱히 대체할 호칭도 찾지 못했기에 뱀파이어라 불렀다. 언젠가 그가 이 곳을 비우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이 빌어먹을 저택을 빠져나가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주 동안 그는 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꼼짝없이 뱀파이어에게 잡혀있어야 했다.

 "왜 그러지? 부탁이라도 있는건가?"
 "그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있어야 하죠?"
 "아, 밖에 나가고 싶은건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기에 그가 뭐라 하는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으므로, 안타깝지만 접어두는게 나을 듯 싶었다.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그럼?"
 "오늘이 몇 일이죠?"
 "9월 25일."

 예?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9월 25일이면 그를 처음 골목에서 마주했을 때와 같은 날짜였다. 혹여 1년이 지난 건지 물어봤으나 확실히 그 날이었다. 시간이 멈춰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이 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다. 여전히 그는 허기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그러지던 제 얼굴을 보던 그의 표정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번졌다. 그러더니 양껏 걱정을 껴안은 제 양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기에 앞서, 그의 입술이 움직거리는 종착지를 찾아가니 더 이상 놀랄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야. 뭐 그리 실망해? 오늘 당신이 들어오고 나서 딱 2주 지났어."
 "그, 그렇습니까."

 농담은 되도록 하지 말아주시죠. 당하는 나는 심장 떨리니까. 또 얼굴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심장에 무리가 갈만한 외모라서 계속 제 심장은 열심히 뛰고 있다. 냉철한 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능글맞게 대꾸하고 있지만.

 "당신, 근데 내 이름 안 궁금해?"

 왜 안 물어보는거야? 그는 귓가에 대고 제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별로. 피만 주다가 나갈꺼니까요."
 "아냐, 기억해두는 게 좋아. 당신이 언제고 나를 마음 속으로 기억할 때마다 이름을 부른다면, 그 때라도 나는 당신을 이 저택으로 다시 데리고 올 생각이거든."

 당신도 아마 내가 그리워질껄? 능글맞게 웃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하자 그는 제 몸을 벽 쪽으로 밀치고선, 또 다시 입을 맞춰왔다. 평소보다도 더 격렬한 키스였다. 어쩌면 그간 했던 접문 중에서도 가장 여운이 길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터진 입술에서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다. 그는 제 피를 보고도 달려들지 않았다.

 "마츠카와 잇세이.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그럼, 잘가. 오이카와."

 그는 미련 없이 제 몸을 문 밖으로 밀쳐냈다. 눈을 뜨니 전에 그와 만났던 골목이었다. 휴대폰 액정이 나타내고 있는 시간은 오후 9시. 날짜는, 9월 25일이었다. 한 순간에 몰려드는 무력감과 황당함이 머릿속으로 가득차고 있을 즈음, 그의 이름이 생각났다.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 감정도 들지도 않았고, 어떤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매정하게 말하자면 허상이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어. 언제까지고 나는 당신과 아무런 연이 없는 평범한 인간일테고, 당신은 그저 잠시 내가 골목에서 빈혈이 나서 까무룩 쓰러진 차에 제 꿈 속에 나타난 무의식일 뿐이다. 난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언젠가 내가 당신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마음은 없는거야.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버리는 사람하고는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츠카와를 다시 본 건, 그로 부터 이틀 후였다.



 "오이카와?"
 "으음, 누구?"

 깨어나보니 그의 저택 안이었다.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쩌면 환청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잠들려고 했으나 맞닿아오는 그의 손길에 이는 꿈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의 선명한 숨소리가 제 귓가로 파고 들고 있었다. 얼굴을 제 목에 파묻은채로 짐승처럼 피를 갈망하다가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푹, 이를 박았다.
 피가 흐르는 감촉에 그의 머리를 끌어 안고선 고통을 내뱉었다. 어느새 노곤해진 몸은 그의 손이 지탱하고 있었고, 그는 제 몸을 잡아선 침대에 다시 눕혀주었다.

 "봐. 넌 다시 올거라고 했지? 이제 벗어날 수 없어."
 "이건 꿈입니다. 그래 이건 꿈이겠지."
 "꿈? 꿈 같은 소리 하네. 넌 이제 내 품에서 못 벗어나, 오이카와."

 저렇게 말하는 재수없는 놈에게 화가 나야하는게 분명한데 피를 빨려서 그런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아, 나는 탄식했다. 그의 몸을 껴안으며, 피의 저주에 잠식되어가면서. 점차 감정의 몰락에 처연히 대처하며.

 감정회로의 손상이 일어났다. 억지로 맞지 않는 곳에 끼워넣었다. 그럴 수록 이상하게 당신이 제 눈에 어른거렸다. 정말 고장난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HQ!! > 세이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이와] 구원  (0) 2016.10.07
[마츠오이] Run after you  (0) 2016.08.14
[마츠오이] Holy Holiday  (0) 2016.08.07
[마츠오이] 각애(刻愛)(죽을 권리와 살 의무)  (0) 2016.07.25
[마츠오이] 여름을 새기다  (0) 2016.07.24


 매일 밤 옆집 테라스에서는 담배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하얗게 물들어간 연기 한 송이가 거무죽죽한 공기를 가른다. 네온사인이 붉게 물든 도시 한 가운데의 아파트에서, 작게 마련된 공간이 테라스가 아니던가. 요즘 매번 기침을 달고 사는 것도 그 남자 때문이 아닐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테라스에 있는 작은 선반 위에 라이터와 담배를 놔두고 다녔는데, 그 선반은 제 집에서 닿을 수 있는 거리라서 혹여나 그가 나갔을 때 슬쩍 빼오면 안될까 생각도 해봤다. 옆집이라 그런지 붙어있는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테라스가 아주 가까이 붙어있었다. 정 안되면 넘어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하지만 매번 제 인기척에 그는 테라스로 나왔으므로, 재빨리 뺏아올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을 뿐더러 빼앗아 온다 하더라도 그는 아마 다시 담배를 사러 앞의 편의점에 갔다 왔을테다.
 담배피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제가 나와있을 때 만큼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그는 항상 제가 밖에 있는 시간을 노려 조심스레 나와선 능청스레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선 보란듯이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뻑뻑 피워댄다. 제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표정 하나 까딱없이 그저 슬며시 웃으며 저를 마주할 뿐이었다.
 몇 일 이야기 하다보니 그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알게되었다. 하이바 리에프. 나이는 28살. 제 나이보다 딱 2살 어렸다. 회사는 이 근처 어디. 우연인가? 제 회사와 가까운 것 같았다.
 옆집인데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제 쪽이 아니라 그 남자였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건넸다. 제 테라스로 넘어온 길쭉한 손이 어른거렸다. 제가 그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어서 악수하자며 재촉했다. 그는 미묘한 미소를 흘기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이 연기를 흩날렸다. 그가 피던 담배 연기가 제 쪽으로 날라오자 갑작스런 상황에 콧속으로 들어온 텁텁한 담배향기가 목을 간질였다. 재채기가 튀어나오고, 옆에선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서 제 테라스로 넘어오려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급히 그를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혹시 어디 안 좋으신건 아님까.
 -호흡기가 좀 안 좋을 뿐입니다. 담배도 조금 힘들고요.

 그가 언젠가 제게 담배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거부했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뻑뻑대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불과 사흘 전인데. 굳이 그 사람에게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하며 제가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다른 때에도 정말 안 피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요즘들어 그의 곁에서 나는 냄새는 담배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질이 나쁜 냄새였다. 싸구려 향수 냄새, 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독한 꽃의 향기가 코 근처를 간질였다. 직접적인 불쾌함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의 몸에서 나던 담배냄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 나쁜 냄새에 대한 출처는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
   
 -있잖아요, 그 쪽, 애인있슴까?
 -없어.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귀여워서. 그의 잇새로 튀어나온 그 단어에 움찔 반응하더니 뒤로 물러나자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제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다시 말을 건네기 까진, 조금 힘겹게 대꾸한 탓도 있을테다.

 -그럼, 너는?
 -저 말임까? 음, 애인은 없는데. 신경쓰이는 사람은 있슴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작고 귀여운 사람임다. 부드럽고, 고운.

 아마 그 싸구려 향수의 주인공인 듯했다. 작은 여자가 취향이라니. 역시 자신의 성향과는 반대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쓴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선,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도 조금있다가 이내 추위를 느끼며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몇 일 후에 그를 봤을 땐,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피폐해진 얼굴과, 녹아내린 다크서클, 수척해진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다. 테라스에는 이제 담배가 아닌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너 뭐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거야, 대체!
 -머리가 너무 아픔다.
 -무슨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지 않아서여.
 -아아, 연애문제? 그 때 작고 귀엽다는 그 사람?
 -예.

 이거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저 남자는 뭘했길래 아직까지도 고백을 못한걸까. 그냥 남자답게 저질러버려! 하고 조언해 주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여자는 네가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
 -아, 그 여자. 모르겠죠 아마.
 -그럼 그냥 남자답게 해버려! 뭘 고민하고 앉아있어.
 -그 사람은 나보다 너무 여려서 부서질지도 모르겠거든여.

 그게 당신이란 걸 왜 몰라. 그 남자의 입이 뭐라 중얼거리긴 했으나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를 토닥이며 술은 그만 마시라는 충고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다. 20대의 연애란 좋구나.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선 찬 바람을 느끼며 밤을 보냈다. 

 이틀 후, 그의 얼굴은 좀 나아진 듯 했으나, 끈적하게 달라붙어오는 그 시선은 어딘가 불순한 것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 여자랑은 어떻게 잘 되고 있어?
 -예? 잘 모르겠슴다. 아직도 못 물어봐서.
 -답답하네. 나 같으면 바로 물어볼텐데. 20대면 좀 더 불꽃같은 연애를 즐겨야 하지 않나? 왜 그렇게 고민해. 그 여자가 너 싫대?
 -모르겠슴다. 연상이라서 대하기도 힘들고.
 -아, 연상.

 연상의 여자라. 너도 취향한번 독특하다. 적어도 29. 아님 30대라는 얘긴데. 그 정도 나이면 연하나 만나고 있을 시간은 없을텐데. 그래도 저런 남자면 만나볼 가치는 있겠지.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그 여자의 생각일테니.

 -그래도 술은 그만마셔. 몇 일째 술만 마시고 있잖아.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한 병만, 당신이랑 마시면 안될까여.
 -여기서? 그래, 그럼.

 그러더니 그가 조심스레 들고 나온 건, 와인잔 두개와 비싸보이는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자주빛의 액체가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그의 것을 따라주고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건 남자에여.
 -뭐라고?
 -그렇다고 하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시겠죠?
 -아니.

 별로. 취향이란 건 다 다른거니까. 제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좀 밝은 얼굴로 저를 마주했다. 헌데 그것이 조금 이상한 것이 그의 끈적한 시선이 달라붙었을 뿐더러 와인을 놓고 테라스 사이에 붙어오던 그의 손을 느꼈기 때문일게다.
 그의 입술이 제 것을 향해 다가왔다. 혀가 밀고 들어오던 끈적한 느낌에 그는 혀 끝으로 제 입천장을 쓸어내리더니,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옆 선반에 잠시 내려놓고 제 머리를 끌어당겼다. 강하게 얽혀드는 그의 혀가 축축하게 서로의 것을 쓰다듬었다.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그의 혀에 농락당해야 했다. 야릇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은 초조함에 잠겨있었다. 매만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애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서성이는 제 혀도 그러했다.
 그의 입에선 담배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달콤한 향이 났다. 사탕인가. 거기에 약간 붉게 상기된 눈도 뭔가 귀엽게 보이고. 오히려 이상한 건, 제가 이 상황에 저 남자랑 왜 키스를 했냐는 것인데.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저 사실 당신을 좋아함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때 부터. 저 싫어졌겠죠?
 -아니.
 -저 그럼 당신한테 고백해도 되나여. 제 방식대로, 야쿠 상이 말했던 것 처럼 남자답게.

 그렇게 우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자연스레 넘어가는 의식의 흐름이 무의식을 덮칠 때 즈음, 우리는 테라스에서 달콤한 키스를 하고 있을게다. 그것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거나,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매만지고, 그는 상체를 굽혀 제 입술에 살며시 입맞출게다.
 서로의 거리는 그렇게 짧았다. 하지만 인연은 길었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 나는 당신과 나의 입술이 닿는 거리를 알고 있다. 그것은 거의 닿을것 같으면서도 애절하게 멀어져가서 당신이 나를 꽉 붙잡아 주었기에 제가 닿을 수 있었다는 걸. 당신은 과연 알까.

'HQ!! > 네코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야쿠] 웨딩화보  (0) 2016.10.09
[리에야쿠] 선율의 애로사항 (1)  (0) 2016.09.25
[쿠로켄] 애증의 모순  (0) 2016.09.25
[리에야쿠] 흔적  (0) 2016.08.02
[쿠로켄] 약속  (0) 2016.07.10



 

Run after you

 

마츠×오이


*각애 외전


 그 날은, 평소와 다르게 꽤나 고요했던 날이었으나 또, 평소와 다르게 다사다난 했던 날이었다. 하늘은 여느날과 같이 청명한 빛을 머금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빛은 무더위에 적합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에 찌들어 건물 안에 처박혀 있는 제 신세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가호아래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에어컨 바람이나 쐬는 신세라니. 누가 들으면 부럽겠다고 구미가 도는 제안일지도 모르겠으나, 별로 달갑지만은 않는 말이다.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왔다면, 그가 과연 이렇게까지 편의를 제공해줄 의향조차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아아, 나는 탄식했다. 부디 나를 편히 놓아줬음 좋으려만. 애석하게도 제 바람은 이미 그의 입맞춤에 묻혀버린지 오래였다. 이제는 맨정신으로 그를 마주하는 일도 힘들었다.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그가 들고있는 총으로 제 몸만 죽이고 정신은 살려놓을 놈이다. 나는 체념한 상태로 차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맞이했다.

 "토오루"
 "무슨 일이시죠, 보스."
 "넥타이가 삐뚤어졌어. 잠깐 나와, 다시 매줄게."

 그는 한 손으로 나를 차 안에서 끄집어내더니 능숙한 손길로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끈적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으나 금새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는 항상 반듯한 모습으로 회사에 가곤 했으므로, 흠잡을데가 없었지만 나는 익숙하지 않은 옷차림을 애써 정리하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굳이 일도 하지 않는 내가 정장을 입을 이유는 없었던 것 같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좀 더 신경쓰는 듯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제 모습이 초라해보이기 그지없었지만 그도 그뿐이었다.

 "그리고 보스는 조금 딱딱하지 않아? 네가 조직원도 아니고, 굳이 그런 호칭으로 날 부를 필요는 없잖아."
 "아직은 어색하니까요"
 "어색하긴, 어제까지만 해도 반말 찍찍 써대는 사이 아니었나?"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미쳤나 보,"
 "그러지 말고, 기분좋게 갔다 올테니까 내 이름 불러줘. 오늘은 그닥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손님이 올 예정이라."

 좋아하지 않으면 거래를 잡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하고선, 입도 꿈적 안하고 회사로 가려고 했다. 그의 긴 손가락이 제 볼을 살짝 찔렀다. 어리벙벙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피식 웃으며 제 손을 붙잡았다. 그의 끈적한 숨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 들었다. 그는 제 의도를 파악했는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이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제 옆으로 달라붙어왔다. 그 사이 이미 차는 회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아쉽다는 듯 제 손을 놓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제 손을 잡았고, 나는 그의 에스코트 아래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왠일인지 어디로 가라는 그의 명령이 없었고, 그는 계속해서 제 손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속셈이지. 그의 손은 여전히 끈적하게 제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약간 소름이 돋는 터라 잘게 손이 떨렸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오늘은 그도 사장실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회의실이나 다른 장소로 가서 거래를 주고 받았을텐데, 오늘은 꽤나 중요한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 같았다. 잘 모르겠지만 감이 그랬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의 이야길 꺼내는 이유가 왠지. 사장실에 들어서자 마자 그는 제게 이런 이야길 꺼내왔다.

 "난 가끔 당신이 떠날까봐 무서워. 당신 마음이 아직 그 쪽에 있거든. 그 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잘 살고 있어?"
 "아쉽지만, 죽었다는군."
 "개만도 못한 새끼!"
 "입도 적당히 놀려. 그 입 잘라버리기 전에."
 "씹…읍."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잇새로 흘러나온 짧은 외침은 그의 눈빛에 사그라들었다. 그는 제 귀에 대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놀라지 말고 들어, 토오루. 오늘 그가 이 곳으로 올거야.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아. 그는 살아있지만, 너를 알고 있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죽었거든. 그는 이미 너를 기억에서 지웠을테니까.

 조금 멍한 상태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별 말없이 사장실을 떠났다. 같이 올라온 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나. 그럼 분명 그가 좋아하지 않는 손님이란 건, 이와쨩을 의미할테다. 하지만 제가 회의실로 간다고 해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아마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손길에 붙잡혀 다시 그의 집에 처박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용히 기다렸다 그에게 경과를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확일게다. 이와쨩이 살아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텐데.
 다리에 힘이 풀려주저 앉았다. 정신없이 멍하니 10분 정도를 그렇게 있었을까. 사장실의 문이 열리는게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서실로 들어오는 문이 아니라, 간이로 만들어 놓은 작은 문으로 들어 온 남자는 이와이즈미 하지메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에게로 달려갔고, 그 또한 제 얼굴을 보고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이와이즈미는 급하게 제 팔목을 잡아채고선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다. 얘가 약을 먹더니 미쳤나, 하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행히도 앞 건물과 높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간신히 옥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의 회사를 바라보니, 사장실에서 제 모습을 응시하는 마츠카와의 흔적이 여실하게 깨진 창문사이로 드러났지만, 또한 그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 없었으나 나는 도망치기 바빴다. 이제 그의 손에 붙잡혀 사는 건, 치가 떨리는 제안이었다.

 "오이카와, 그 동안 잘 있었어?"
 "응. 이와쨩도 별 일 없었지?"
 "저 새끼가 준 마약 참는 것 빼곤 별로."

 그래도 가끔 발작은 해서 한 알씩 먹어줘야 해. 저 새끼가 뒤쫓아 오진 않겠지? 다른 마약밀수업자를 알아봐야 하나.
 이와이즈미는 정리되지 않은 언어를 내뱉었고, 달리던 도중 그는 무언가가 목에 걸렸는지 한손으로 목을 감싸며 ,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가슴을 연신 쳤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도시 한복판을 달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미약하게 피냄새가 났다. 옆에서 나는 냄새였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이와이즈미는 켁켁대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는 핏물에 물들었고,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서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나는 그를 붙잡아 일단 골목으로 끌고 갔다. 이대로 있다가 경찰에게 들켜 병원에 간다해도 그의 신분 -신용불량자에 마약중독- 이 들킬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그 사람까지 연결될 수 있었기에, 복잡한 일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레 옆의 골목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 순간, 그에게로 총탄하나가 날아들었다. 토해내던 입 속에서 울컥하고 핏물이 솟구쳤다. 가슴을 뚫고 지나간 총탄은 제 앞에 떨어졌고, 눈 밑이 벌겋게 충혈된 이와이즈미의 사체는 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이카와는 쓰러진 이와이즈미를 한번 즈윽 훑고선, 다시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제가 알고있는 이였다. 마츠카와 잇세이. 벗어나고 싶었던 족쇄와도 같은 사람.

 "도대체 왜 죽인거야? 살려 놨으면 좋았을텐데! 살아있었는데!"
 "마약 중독이랬지? 그 새끼, 널 데려 가서 장기매매 업자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아님 네 장기를 자기 몸에 이식하려는 생각도 했었겠지. 약 때문에 많이 망가졌거든."
 "그럼…."
 "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나한테로 와. 도망치지 말고."

 갑자기 제 자신이 한심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던가. 아아, 마츠카와! 나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죄송해요, 다시는 도망 안 칠게요. 믿을 사람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도망칠 여력도 없다. 나는 그의 사죄의 의미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나, 그가 제게 제안한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이름, 불러줘."

 아직도 이름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나는 별 수 없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흘기며 그에게 답했다.

 "잇세이."
 "좋아. 토오루. 이제 밤에도 그 상태로 울어줘."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고 있음에 틀림없었지만, 나는 무턱대고 끄덕였다. 분명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남아있던 여유가 다 사라진 탓이리라. 나는 그에게 안겨있는 채로 그에게 말했다. 좋아합니다. 이제는 진짜 도망치지 않을테니까, 나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과연 그런 말로 그의 마음이 풀릴 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조금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피아 보스 이름을 막 부르는 건, 뒤가 조금 찝찝했다. 그래서 그냥 달링을 호칭으로 정하고 마무리했다. 그는 제가 달링하고 부를 때마다 조금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즐기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다.

 당신이 온전히 제 마음 속으로 들어올 그 날까지 난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할테다. 당신이 내 뒤를 뒤쫓듯, 나도 당신의 마음을 뒤쫓으며. 이제는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며.


'HQ!! > 세이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이와] 구원  (0) 2016.10.07
[마츠오이] 감정회로의 손상  (0) 2016.09.25
[마츠오이] Holy Holiday  (0) 2016.08.07
[마츠오이] 각애(刻愛)(죽을 권리와 살 의무)  (0) 2016.07.25
[마츠오이] 여름을 새기다  (0) 2016.07.24



*조각글 (떠오르는 대로 추가 예정)
*약간 r-15...?
*조금 상냥한 캇쨩과 조금 대담한 데쿠...))(실은 아직 캐릭터 파악이...완벽하지 않아서....ㅂㄷ)

-

 이건 정말, 장난에 불과한거야. 단순히 사춘기의 변덕에 불과한거란 말이지. 너도 그럴거라 생각해. 소꿉친구를 장난으로 망쳐놓는 일은 어른이 할 짓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해할 수 있어. 나만 망가지는 건 그렇게 문제 삼을게 못 되니까. 만약에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서라도 뜯어 말릴거라고. 그러면 넌 화만 내면서 날 죽이려고 할까? 아냐. 캇쨩은 캇쨩이니까. 넌, 날 죽이지 못해. 왜? 너는 별 수 없이 나를 찾아올테니까. 너의 그 변덕을 참고 받아줄 인간은, 나밖에 없을테니까.


*


 처음엔 단순히 협박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청소년기의, 아직 설익은 과즙을 흘리는 제 모습이 퍽이나 가련했을까.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봄에 나는 딸기가 무르익어 새빨간 자태에서 흘러나오는 연분홍빛 과즙같다며 농담조로 던지긴 했으나 단순히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진심이 아닌 줄 알았다. 흘러나오던 그의 언어가 제 귀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의 입술이 달싹이며 나오는 그 한마디가 그리도 절박할 수 있었던가. 실은 다급한 목소리였다기 보단, 욕망으로 가득한 짐승이 으르렁대는 소리였지만.

 먹고싶다.

 겉으로 들릴까 말까한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분명히 들었다. 어쩌면 마음은 이미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순수한 욕망을 배제하고서 제가 살아남기에는, 아마 역부족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날의 캇쨩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준비가 필요하다거나 프로포즈를 먼저 하는게 어떻겠냐는 등의 혼잣말을 내뱉으며 복잡한 머리를 애써 굴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옆에서 그의 혼잣말을 듣고 있었으나 들으면 들을 수록 그의 본심이 나오는 것 같아 그 날 이후로 그를 피해다녔다. 그도 딱히 말릴 생각은 있어보이지 않았다.

 문제의 발단은, 영상 사건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애들은 성장이 빨라서, 자신이 모르는 것들도 거의 대부분 알고있었다. 가령 그 중에서 질 나쁜 아이들은 서로의 AV를 공유하며, 그 속에서 나오는 연상의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붉게 물든 영상을 뻔히 쳐다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영상 속 여자들은 전부 하나같이 교태를 부리며 그-정확히는 영상의 배우-를 유혹했다.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 남자는 없으리라. 다만 분명한 건, 그는 비도덕적인 짓을 저지르고 끝에 와서야 후회에 물드는 짓을 반복할 위인은 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단박에 해버리고 마는 행동파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제가 겪게 될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여느 날과 같은 표정으로 제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말을 지껄이며 하루를 끝마칠 예정이었으나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오후 5시의 중학교 교실은, 석양이 저물어가는 황금빛 태양이 교실 전체를 물들여 놓고, 그를 바라보던 제 눈빛마저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가 태양 속에 빛나고 있었다. 붉은 빛을 뒤로 하고, 당신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 그가 조심스레 제게 다가와선 제 손에 들린 CD를 가져갔다. 비웃기라도 할 듯한 표정으로 제 눈을 쳐다보더니 되려 한숨만 내쉬는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왜, 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댄다.

 "그. 그거, 그러니까 그거 내껀 아니고. 내 차례라면서 넘겨주길래 받은 것 뿐인데... 그, 그냥 갖다 놓으려고.. 했..!"
 "이런 걸 왜 보냐? 너드새끼."
 "그, 그러니까 보려고 한게 아니.."

 제 마지막 언어는 그의 입술에 먹혔다. 이질적으로 흩어지던 그의 숨소리가 옅어지다가 사라졌다. 그는 제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소름끼치던 그 손길이 떠올라 눈을 감았으나 그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혹여 그의 개성으로 제 몸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다거나, 죽일 생각으로 달려든다면 막을 생각은 없다.

 "내가 때릴 것 같았냐. 데쿠, 내가 널...!"
 "미, 미안! 그, 그게 아니라..."
 "암튼 이런거 보지마. 알겠냐?"
 "으, 응."

 먹는 건 나중으로 미룰까. 하는 소리가 잠깐 작게 들리는 것 같았지만. 제 볼이 붉게 물들었단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건,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_fin?

 Holy Holiday

 

마츠×오이 

* 각애 스핀오프



 "아아-, 더워."

 더위에 물든 건물은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으며, 방 안에 있는 에어컨 조차도 주인이 없는 동안에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비서실에 가서 얼음물이라도 달라고 해볼까. 그러기엔 저번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 것만 같아서 차마 사장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작은 선풍기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기에 그거라도 틀고선 작은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타이밍 좋게 거래를 마치고 돌아왔다. 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소규모 회사의 사장인데 (사실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가끔씩 오는 손님들과 거래만 하고, 주로 마약류나 총기등을 거래하는 '마피아'라는 사실은 극히 소수만 알고있는 사실이다. 아마 분홍색 머리인 그 비서도 아마 이러한 사실은 모를 것이다.

 그는 책상앞에 있는 선풍기에 얼굴을 대고 투덜대는 제 얼굴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서랍에서 에어컨 리모컨을 꺼내더니 무심하게 전원을 키고선 다시 집어넣었다. 그냥 틀어놓고 갈 것이지. 몇 시간 동안 더위에 방치시켜 놓은 그가 조금 미워질 뻔 했지만, 그 다음 그의 말에 누그러졌다.

 "영화보러 갈래?"
 "영화관?"
 "응."

 월척이다. 최근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집에서는 영화를 본다해도 그가 계속 달라붙어와서 힘들터였고, 최근에 바깥에 나가지 못해 많이 수척해 진 것 같았는데 그런 기분도 모조리 다 날려버릴 만한 제안이었다. 그 달콤한 제안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말을 바꿀세라 나는  재빨리 가겠다고 했다. 어딘가 찝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설마, 영화관을 통채로 빌린다거나...?"
 "그런짓은 안 해. 가서 영화 보려는거 아냐?"
 "아님 나 혼자 갔다 올...까?"
 "같이 가. 안 달라붙을게."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좋아, 가자. 더운데 잘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괴리감을 떨쳐버리진 못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채로 다시 그의 손에 붙잡혀 영화관을 가야 했다. 그래도 나갈 수 있다는 자유에 사로잡혀 별 말 없이 그를 따랐다.

 "자리는, 각자 떨어져서 앉,"
 "이미 예매했어."
 "팝콘은?"
 "가서 사줄게."

 휴일이랍시고 거래도 빨리 끝내고 오셨댄다. 그럼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지. 나는 잔말않고 그를 따라 가기로 했다. 한 손엔 팝콘을 들고, 한 손엔 콜라를 들고 그를 따라간 2관에서는, 아직까지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놓을 순 없었다.

 "이거, 보고 싶은 거 맞아?"
 "으, 응."
 "꽤, 마니악하네. 이런 거, 좋아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2관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찾아가니, 것도 영화관 구석이다. 진짜 어떤 흑심도 없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보는 내내, 내용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끼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다음부터 내가 그 녀석이랑 영화관에 오나 봐라, 진짜. 그리고 끌려 올테다, 제기랄.

 "그러니까, 이런 외설적인 영화는 집에서 나랑 보는게 좋겠지?"
 "당신이 손으로 만지지만 않았어도..!"
 "느꼈잖아. 응? 기분은 좋았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대답을 기다렸으나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채로 그저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제 어깨를 그의 큰 손으로 감싸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 공공장소는 아닌 것 같아. 당신이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거든. 정 영화가 보고 싶으면 말해. 안 쓰는 건물 하나 매입해서 영화관으로 만들어 놓을게."
 "그냥 집에서 볼게. 미안. 굳이 나오겠다고 고집피워서."

 말이 안 통하는 놈이다. 그냥 제 몸 간수만 잘한다면 별 상관 없을 것 같으니 순순히 그의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그의 입에 키스하고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휴일이라기엔 조금 어지러운 날이었다. 영화관은 특히 생각치도 못한 일을 당했으나, 나를 위로한답시고 바닷가로 드라이브한건 꽤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기분좋게 찰랑였다. 그의 차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볼에 입맞추며,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익숙해진 당신에게 속삭이며.

 "사랑합니다. 이제는 도망 안 가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나, 당신을 꽤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래? 그거 고마운데."

비록 처음은 강제였으나, 지금은 조금 다른 사랑을 속삭이며.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오이×카게

 

 

 

 실은,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게 분명했다. 그의 표정만 봐도 그러했다. 사랑이라고 명백히 말을 꺼냈으나 정작 행동은 그러지 않았다. 어렸을 적, 좋아하는 아이에게 얄궂게 행동하는 남자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달까. 하지만 어린아이의 장난과는 다른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더 나쁜 행동을 하고 있건만, 어른이란 이유로 벌은 커녕 꾸중조차 듣지않는, 이유없는 욕심으로 가득찬 당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당신은 정녕 진심으로 사랑을 외쳤던가. 나는 당신의 마음에 비수를 던진다. 차가운 화살이 제 말을 통해 그의 가슴에 박힌다. 피가 흘러나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숨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다가 죽음에 사로잡힌 당신은, 곧 정신을 잃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당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제 시야를 관통시켰다. 이제 핏물이 흘러내리는 제 시야 안에는 핏물에 적셔져 어쩌면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당신에게 장미를 건네고, 당신은 그 장미를 받아들며 살며시 웃어보인다.

 "장미가 조금 시들었네, 토비오."



*



 오이카와 토오루, 23살. 성인이 되자마자 가업을 이어 현재 서점을 운영하는 중이다. 실제로 평일 한 낮, 한가하게 서점에 들러 책을 사가는 사람은 극히 적었으므로 가게 돌보는 일도 그닥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나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손님이 와도 친절하게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으며 사근사근한 그의 태도는  제 마음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했다. 줄곧 당신같은 남자를 바랬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거의 서점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도 서점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계단으로- 2층에 있었고, 서점 앞을 정리하거나 청소할 때 빼고는 거의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지금같은 여름에는 더욱. 한 손에 부채를 쥐고, 앞에 책을 펼쳐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웠는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분위기 만큼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신은 잡아 삼킬 듯한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으나 얕게 찰랑이는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손님이 계산대 앞에 다가와서 당신을 부르면, 그 청명한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는다. 당신이 좋다. 부디 그 눈으로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서점 옆을 지나쳤다.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나, 그것도 어느 날에 당신의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매일마다 지나치는 제 모습을 보고선, 나를 붙잡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호기심은 점차 관심으로, 증오로, 애정으로 변하며 제 마음을 갉아 먹으리라고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외면하고 싶었다. 확실치 않은 미래를 제 행복과 맞바꿀 순 없었으므로.
 당신은 제게 고백했다. 스스럼없이 이름으로 부르며, 책 선물까지 하고, 관심이 있으니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볼을 붉혔다. 단순히 좋아해, 혹은 사랑해보다는 관심이 기운 쪽에 가깝겠지만.

 "있지, 토비오. 토비오는 어느 학교 다녀?"
 "카라스노 고등학교.., 요."
 "헤에, 카라스노? "

 그는 아직까지 제가 고등학생인줄 알고 있다. 실제로 거리를 다닐 때 교복이 편하니까, 눈에 띄지 않으려면 오히려 교복이 더 나은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정리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여전히 제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거, 좋아요?"
 "응."

 그 날 우리는 무덤덤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키스하고선 헤어졌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 건, 그 다음날이었다. 실은 충격적이라기 보단, 들어선 안되는 의뢰에 불과했지만, 그를 죽여달라는 의뢰였다. 당신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제 손에 죽어야하는가. 그리고, 나는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는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겐 너무나 단순한 의뢰였으나, 제겐 단순할 리가 없었다. 아직 사랑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으나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사랑할 수 있었을게다. 서로의 배신만 없었더라면.
 사랑인가, 배신인가. 그것은 문제삼을게 아니었으나 도덕적인 양심에는 문제가 있었다. 제게 관심을 가져준 그 상냥한 사람에게, 총을 겨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죽여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이지 못한, 어떤 더러운 술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더군다나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였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진 당신에게 제 마음을 전부 주지는 않았으므로, 어쩌면 분명 나는 당신에게 가볍게 이별을 선언하고 당신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나를 조심히 대해주었다. 겉으로 장난은 치고 있으나 속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바스라질까 두려운 여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거, 얼마에요..?"
 "그 책? 안 팔아. 네가 읽으면 해로울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어서 안돼. 고등학생은 그런거 읽는 거 아냐."

 하루는 책을 들고 가서 그에게 내밀었더니 되려 호통만 들었다. 아마 책을 잘못고른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왔는데, 그게 외설스런 글이었던 걸 보면. 그래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책을 다시 되돌려 놓고 와야 했다. 그는 실수 할 수도 있다며 나를 타일렀으나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곧 죽을 사람에게 정을 둬선 안 되는 일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당신은 제 손에 죽을 것이다.

 "내일 봐, 토비오."

 당신은 여전히 그 달달한 목소리로 제 귓가를 자극한다. 적절히 섞인 미성이 마음에 와닿았고, 옅은 숨소리가 입가에 닿았다 사라진다.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며, 서로의 입술을 맞대었다. 속으론 내일 당신을 죽일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지껄이며 미소지었다.

 "내일 봐요, 오이카와 상."

 그의 마지막을, 제 손으로 물들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날을 위해 나는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사고, 그에게 선물받은 책을 소중히 손에 들고 그에게로 향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또한 미성에 부드러움까지 첨가한 완벽한 모습이었다. 나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며 그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언뜻 보기에는 프로포즈 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아니었다. 그가 장미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총을 겨눴다.

 "오이카와 상, 사랑해요. 하지만 난 당신을 죽일 수 없어. 그러니까, 나 대신 살아요. 저 멀리 도망쳐서 나 대신 살아줘. 이 더러운 세상에서 죽는 건 나 혼자만으로 족하니까, 부디 당신이라도 살아."

 그의 손에 붙들려 있던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계산대 위에 펼쳐져 있던 책으로 떨어졌다. 핏물이 책들로 떨어졌다. 그는 제 손에 들린 총을 빼내서 자신의 입을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이내 그 차가운 쇳덩이를 꺼내들어 제 목을 조준했다. 제 손을 빠져나간 총기의 서늘함이 다시금 목 주변으로 박혔다.

 "죽을거면 제대로 죽어. 토비오. 어설프게 얼쩡거리는 건, 내가 원하던게 아냐."

 당신이 조준한 총이 제 목을 관통했다. 살점을 비집고 나온 총탄이 핏물을 가득히 묻히고 떨어져 나갔다. 일그러져 형태 조차 알 수 없는 피부가 찢겨나왔으며, 검붉은 핏물이 흘러넘쳤다.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 나는 분명 당신의 죽음을 바랬건만,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없었다. 사랑이란 어설픈 욕망을 건네 준, 당신이 너무나 싫었으나 제 손으로 직접 죽이기엔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게다. 좋았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핏물에 적셔진 장미가 책 끝에 걸쳐져 있었다. 장미는 조금 시들어있었다.

_fin.

'HQ!! > 타교×타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로츠키] 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0) 2016.07.31
[쿠로츠키] 욕망  (0) 2016.07.17
[쿠로츠키] Cigarette  (0) 2016.05.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