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오이×카게

 

 

 

 실은,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게 분명했다. 그의 표정만 봐도 그러했다. 사랑이라고 명백히 말을 꺼냈으나 정작 행동은 그러지 않았다. 어렸을 적, 좋아하는 아이에게 얄궂게 행동하는 남자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달까. 하지만 어린아이의 장난과는 다른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더 나쁜 행동을 하고 있건만, 어른이란 이유로 벌은 커녕 꾸중조차 듣지않는, 이유없는 욕심으로 가득찬 당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당신은 정녕 진심으로 사랑을 외쳤던가. 나는 당신의 마음에 비수를 던진다. 차가운 화살이 제 말을 통해 그의 가슴에 박힌다. 피가 흘러나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숨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다가 죽음에 사로잡힌 당신은, 곧 정신을 잃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당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제 시야를 관통시켰다. 이제 핏물이 흘러내리는 제 시야 안에는 핏물에 적셔져 어쩌면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당신에게 장미를 건네고, 당신은 그 장미를 받아들며 살며시 웃어보인다.

 "장미가 조금 시들었네, 토비오."



*



 오이카와 토오루, 23살. 성인이 되자마자 가업을 이어 현재 서점을 운영하는 중이다. 실제로 평일 한 낮, 한가하게 서점에 들러 책을 사가는 사람은 극히 적었으므로 가게 돌보는 일도 그닥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나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손님이 와도 친절하게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으며 사근사근한 그의 태도는  제 마음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했다. 줄곧 당신같은 남자를 바랬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거의 서점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도 서점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계단으로- 2층에 있었고, 서점 앞을 정리하거나 청소할 때 빼고는 거의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지금같은 여름에는 더욱. 한 손에 부채를 쥐고, 앞에 책을 펼쳐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웠는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분위기 만큼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신은 잡아 삼킬 듯한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으나 얕게 찰랑이는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손님이 계산대 앞에 다가와서 당신을 부르면, 그 청명한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는다. 당신이 좋다. 부디 그 눈으로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서점 옆을 지나쳤다.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나, 그것도 어느 날에 당신의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매일마다 지나치는 제 모습을 보고선, 나를 붙잡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호기심은 점차 관심으로, 증오로, 애정으로 변하며 제 마음을 갉아 먹으리라고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외면하고 싶었다. 확실치 않은 미래를 제 행복과 맞바꿀 순 없었으므로.
 당신은 제게 고백했다. 스스럼없이 이름으로 부르며, 책 선물까지 하고, 관심이 있으니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볼을 붉혔다. 단순히 좋아해, 혹은 사랑해보다는 관심이 기운 쪽에 가깝겠지만.

 "있지, 토비오. 토비오는 어느 학교 다녀?"
 "카라스노 고등학교.., 요."
 "헤에, 카라스노? "

 그는 아직까지 제가 고등학생인줄 알고 있다. 실제로 거리를 다닐 때 교복이 편하니까, 눈에 띄지 않으려면 오히려 교복이 더 나은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정리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여전히 제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거, 좋아요?"
 "응."

 그 날 우리는 무덤덤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키스하고선 헤어졌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 건, 그 다음날이었다. 실은 충격적이라기 보단, 들어선 안되는 의뢰에 불과했지만, 그를 죽여달라는 의뢰였다. 당신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제 손에 죽어야하는가. 그리고, 나는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는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겐 너무나 단순한 의뢰였으나, 제겐 단순할 리가 없었다. 아직 사랑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으나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사랑할 수 있었을게다. 서로의 배신만 없었더라면.
 사랑인가, 배신인가. 그것은 문제삼을게 아니었으나 도덕적인 양심에는 문제가 있었다. 제게 관심을 가져준 그 상냥한 사람에게, 총을 겨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죽여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이지 못한, 어떤 더러운 술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더군다나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였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진 당신에게 제 마음을 전부 주지는 않았으므로, 어쩌면 분명 나는 당신에게 가볍게 이별을 선언하고 당신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나를 조심히 대해주었다. 겉으로 장난은 치고 있으나 속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바스라질까 두려운 여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거, 얼마에요..?"
 "그 책? 안 팔아. 네가 읽으면 해로울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어서 안돼. 고등학생은 그런거 읽는 거 아냐."

 하루는 책을 들고 가서 그에게 내밀었더니 되려 호통만 들었다. 아마 책을 잘못고른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왔는데, 그게 외설스런 글이었던 걸 보면. 그래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책을 다시 되돌려 놓고 와야 했다. 그는 실수 할 수도 있다며 나를 타일렀으나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곧 죽을 사람에게 정을 둬선 안 되는 일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당신은 제 손에 죽을 것이다.

 "내일 봐, 토비오."

 당신은 여전히 그 달달한 목소리로 제 귓가를 자극한다. 적절히 섞인 미성이 마음에 와닿았고, 옅은 숨소리가 입가에 닿았다 사라진다.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며, 서로의 입술을 맞대었다. 속으론 내일 당신을 죽일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지껄이며 미소지었다.

 "내일 봐요, 오이카와 상."

 그의 마지막을, 제 손으로 물들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날을 위해 나는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사고, 그에게 선물받은 책을 소중히 손에 들고 그에게로 향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또한 미성에 부드러움까지 첨가한 완벽한 모습이었다. 나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며 그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언뜻 보기에는 프로포즈 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아니었다. 그가 장미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총을 겨눴다.

 "오이카와 상, 사랑해요. 하지만 난 당신을 죽일 수 없어. 그러니까, 나 대신 살아요. 저 멀리 도망쳐서 나 대신 살아줘. 이 더러운 세상에서 죽는 건 나 혼자만으로 족하니까, 부디 당신이라도 살아."

 그의 손에 붙들려 있던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계산대 위에 펼쳐져 있던 책으로 떨어졌다. 핏물이 책들로 떨어졌다. 그는 제 손에 들린 총을 빼내서 자신의 입을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이내 그 차가운 쇳덩이를 꺼내들어 제 목을 조준했다. 제 손을 빠져나간 총기의 서늘함이 다시금 목 주변으로 박혔다.

 "죽을거면 제대로 죽어. 토비오. 어설프게 얼쩡거리는 건, 내가 원하던게 아냐."

 당신이 조준한 총이 제 목을 관통했다. 살점을 비집고 나온 총탄이 핏물을 가득히 묻히고 떨어져 나갔다. 일그러져 형태 조차 알 수 없는 피부가 찢겨나왔으며, 검붉은 핏물이 흘러넘쳤다.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 나는 분명 당신의 죽음을 바랬건만,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없었다. 사랑이란 어설픈 욕망을 건네 준, 당신이 너무나 싫었으나 제 손으로 직접 죽이기엔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게다. 좋았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핏물에 적셔진 장미가 책 끝에 걸쳐져 있었다. 장미는 조금 시들어있었다.

_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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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네임버스 AU

 

쿠로×츠키

 

 절대 지워지지 않는 흔적,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그 흔적을 덮었다.
 쿠로오 상은 성인이 되었다. 원래도 만날 일이 그닥 없었으나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 소식 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방학이 되자마자 대학을 뛰쳐나온 쿠로오 상은 도쿄에서 곧장 미야기로 달려왔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아직 방학기간이 아니었고, 쿠로오 상은 저녁 연습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제가 저녁 연습을 끝나고 체육관에서 나올 즈음, 그는 학교 교문에서 나를 발견 하고선 달려오다시피 했다. 그가 팔을 벌려 제 몸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조금, 차가웠다.
 그는 나를 마주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해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쿠로오 상이 한 손으로 제 두 손을 마주 잡고, 나머지 한 손을 제게 들이 밀면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건, 그의 손에 새겨진 제 이름이었다. 선명하게 그의 손에 적혀있는 제 이름을 황망히 바라보며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게...뭐..,"
 "네 이름. 사랑한다는 증거야."
 "하지만, 저는 안 생겼는데요..?"
 "네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 생겼을지도 모르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제 팔에 조금 소름이 돋긴 했지만, 그의 차가운 손길에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게 맞을테다.

 "바로 가실거에요?"
 "음...,아니."
 "괜찮다면 저희 집에 오실래요..?"
 "아니야. 괜히 신세 질 필요는 없지. 다이치네 자취방에서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걱정마."

 당신은 나를 다시 한 번 꽉 안아주더니 곧장 제 몸을 이끌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한 여름인데도 바람이 불었다. 허나, 상쾌하지 않은, 텁텁하고 더운 바람이었다. 거기다가 더위에 습기까지 한데 뭉쳐 불어오니 짜증은 배로 커졌다.
 그런 바람을 맞으며 그의 손에 붙잡힌 채로 집으로 가야했다. 집 문을 열고 그를 밀어넣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탓이다.
 그는 나를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선, 아무 미련도 없이 돌아서서 다이치 선배네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 마지막엔, 살며시 입을 맞춰주고 내일 보자는 달콤한 말을 지껄이긴 했지만, 나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그의 이름은 마치 암흑과도 같아서, 혹여 제가 지니고 있다가는 제 빛이 사그라 들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물론, 착오일 뿐이다. 그를 굳이 색으로 말하자면, 흰색, 순수하다 못해 이질적이다. 본성이 순수하다기 보단, 아껴주고, 지켜주려 하는 그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순수하다는 건 전부 애들 장난 일뿐. 오히려 좀 더 대담한 남자였음 좋았을테다. 가령 빨간 성인책을 관심 독서로 두고, 어김없이 성욕을 내뿜는 그런, 파렴치한 남자였을지라도. 아님 그의 이름처럼, 어둠에 잠식되어 나를 타락시켜 줄 그런 남자도 어쩌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가 나를 붙잡았을 적에,그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 같은 그런- 제 몰골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졌는지도 기억한다. 한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 입꼬리는 비죽 올려 냉소를 지으며,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제 표정을 본 그는, 공원에서 자살하려던 제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실은, 죽으려던 건 아니었다. 때 마침, 커터 칼을 들고 있었고,-죽을지 말지에 대한 갈등이었다-표정은, 원래 제 얼굴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는 단단히 오해를 했는지 제게 달려와선 커터 칼을 빼앗았다. 나는 당신의 눈빛이 그토록 빛나던 금빛이었는지는 그 날 처음 알았던 사실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제 몸에 새겨질 법도 한데, 야속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커녕 흔적조차도 없다. 그는 나를 괜찮다고 타일렀으나 나는 불안하다. 어쩌면, 당신과의 관계가 쉽게 부서질 수도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쿠로오 상.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 것도 안 생기는.."
 "케이. 넌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나 또한 그래. 그리고, 넌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몸에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서 안 생길 수도 있는거라니까. 걱정하지마. 난 네 몸에 내 이름이 안 생겨도 안 떠날테니까."
 "다른 사람 이름이 새겨지면..."
 "와, 지금 네 입으로 바람피겠다고 한거야? 케이, 너무한데. 쿠로오 상 조금 상처받았을지도."
 "그런거 아닙니다! 그저, 걱정이 되서.."
 "난 너 좋아하니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그가 제 이마에 가볍게 버드키스를 했다. 옅게 붙었다 떨어지는 그의 입술이 붉게 물든다. 사랑에 빠져있는 남자는, 기분이 좋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걱정스럽다.

 "정 걱정되면 내가 새겨줄게. 성인 되면. 아직은 아냐. 네 어설픈 요구 때문에 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있는 수고는 너도 싫겠지? 아직은 아냐."

 미성년자 강간하면 잡혀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의 이질적인 말소리가 흩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나 이미 식어버린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탓에 그 와의 거리는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게요. 늦어서 형이랑 엄마가 걱정하거든요."
 "그래? 안녕. 내일 봐, 케이. 내 꿈 꾸는거 잊지말고."

 그는 다시 버드키스로 제 볼에 한 번 부딪히더니, 그대로 제가 가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고, 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내일 쯤이면 제 몸에 당신의 흔적, 당신의 존재가 각인 되어 있길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핏기가 가신 창백한 손목에 칼날을 대자 붉은 선혈이 송글송글 맺혀나왔다. 나는 조심히 당신의 이름을 새겼다. 어쩌면 흉터로 남을테지만, 난 당신을 제 첫번째 흉터로 남겨 놓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일 쯤이면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놀라 경악할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핏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당신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느낌-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상처 또한 마다 않으리라. 나는 비릿한 미소를 흘겼다.

 조금 흐릿한 하늘과 당신의 표정이 일치하는 걸 보니, 본의아니게 그는 제 상처를 알아차린 듯 했다. 그는 점점 험악해진 표정으로 제 눈을 응시하더니, 곧이어 그 시선을 제 손목으로 옮겼다. 손목에는, 핏자국으로 선명해진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

 "이거 봐요, 당신 이름이야."
 "케이. 이런 건..."
 "이제 당신하고 나는 이어진거야. 그렇죠? 내 몸에 당신이 있으니까, 나만 봐요. 네? 테츠로...상."

 당신만 있으면 돼. 내 몸에 새겨질 모든 흉터는, 당신의 것이야. 그러니까, 날 안아요. 테츠로 상.

 "사랑해요, 테츠로 상."

 나는 조심스레 그를 안았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그의 떨림이 조금 크게 느껴졌으나, 곧 그것도 무뎌졌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잖아?

 나는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요. 내 몸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건 선명하다 못해 타들어가는 붉은 흉터처럼 남았고, 그것은 아주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겨져있어서, 어쩌면 당신이 찾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요. 지금은 당신을 사랑할지언정, 그 흔적은 쉽게 지워지는 흉터가 아니야. 당신이 부디 그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에, 당신의 이름은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싶어서, 핏물로 당신의 이름을 새겼지만 아프진 않아. 괜찮으니까, 아무 말 없이 안아주세요.
 아무리 당신을 사랑할지라도, 내 몸엔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입으로 나마 당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 쿠로오 테츠로.

 부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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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사망소재 있습니다.

쿠로×츠키

 

 당신의 그 단단한 손에 쥐어져 질식될 수 있다면, 황홀할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당신의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바라보며, 눈물 범벅으로 흘러내린 제 얼굴을 애써 미소로 바꾸며 애처롭게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당신의 그 어벙한 모습이 보고싶었다. 멍하게 제 눈물을 쳐다보며, 어찌할지 모르는 당신의 그 손을 잡았다. 더, 더 세게. 제 힘으로는 당신의 손을 풀 수 없을 정도로 세게. 계속 졸려지는 목에 켁켁대면서도 성대에 힘을 주고 보란 듯이 더 세게. 당신은 날 구하러 온, 천사인가요. 그렇다면, 제 목을 졸라주세요. 더 이상 제가 살 의지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더, 더-! 커헉! 죽지-않-을-정도-로오, 질식하고 싶-,윽."
 "이제 그만. 진짜 못하겠다. 이건 아니야, 츠키시마."
 "당신이 바란거잖아요? 남자 고등학생, 그 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목을 조이면 반응이 즐겁다면서요. 울먹이면서 그만해달라 애원하는 모습이 좋다고. 분명 당신이 첫 만남 때 그랬어."
 "하지만, 츠키시마 군, 이건 아닌 것 같아."
 "난 좋아요. 당신이 제 표정 보면서 어떻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좋고, 다 끝나고 챙겨주는 것도 좋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신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그 단단한 팔로 나를 죽여줄 수 없다는 점."

 그는 의아해 하면서도 다시 제 목을 쓰다듬었다. 그의 능숙한 손길이 제 목을 단단히, 부드럽게 주무른다. 당신의 손길이 목 위의 천을 사이에 두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제 목을 보며 물음을 내뱉는다.

 "있지, 머플러는 왜 두른거야?"
 "당신 손자국이 남아서, 들키면 이제 당신 좋아하는 것도 못 하잖아요?"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게 아니라."
 "걱정마요. 난 좋으니까. "

 둘의 언어가 부서지며 얽혔다. 엄마는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마 당신이 매번 우리집에 찾아오는 걸 알고 있었나봐요. 형도 당신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매번 제 방에 들어와서 당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제가 괜찮다고 했거든요.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곧 나를 황홀하게 죽여줄, 미안하고도 고마운 사람이니까.

 당신의 욕망은 이제 빛을 바랜 듯 점차 연해졌다. 목을 조를 때의 느낌은 선명했지만, 탁하게 시야를 가렸다. 어지러히 흩어지던 제 기억이 주마등처럼 흩어 지나간다. 아아, 나의 천사여. 부디 나를 이 악한 세상에서 죽여주시길. 당신의 그 억세고 단단한 손으로 제 목을 조여 주소서. 이미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인마냥 조용히 죽어줄테니, 조심히 쥐어 사뿐히 질식시켜 주옵소서. 제 목이 조여오는 그 느낌은 당신의 손끝에서 부터 전율하여 다가왔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당신의 그 욕망을 빌어, 부디 제 몸을 조심히 질식시킨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당신의 욕망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이지만, 어쩌면 그러는 편이 더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조여오는 감각도 무더졌으며, 당신은 마음이 약해져 점차 힘을 약하게 쥐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은 약하게 제 목을 조여온다. 익숙해진 당신의 손길이 조심스레 제 목을 누른다. 나는 이미 이것의 쾌락을 익혀버린지라, 당신의 손길도 거부할 수가 없다. 그 황홀감에 빠져, 나는 그렇게도 증오하던 세상과의 작별을 고한다. 비록 당신의 손을 빌어 죽음을 얻어가지만, 그것 나름대로 감사한다. 나는 당신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에 당신을 향해 제 몸을 던지기엔,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나는 오늘에야 말로 사랑하는 당신의 앞에서, 당신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던 표정을 지으며, 황홀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다시, 다시 조여주세요."
 "미안, 츠키시마. 진짜, 미안."
 "큿-,더, 더 세게,아-아아-아-아아아-"

 정돈되지 않은 언어가 한계까지 걸쳐졌다. 당신을 바라보니, 확신에 찬 표정이다. 이제 더 세게 조여주세요. 당신의 그 단단한 손길로 나는 죽고 싶으니. 그는 더 힘을 주어 제 목이 부서질 것만 같다. 제가 울먹거렸나요. 울지말라고 그가 말해준다. 입이 점차 벌어지며 막힌 숨이 튀어나온다. 손에 막혀 나오지 못한 신음 소리가 잇새로 갈라진다. 곧 산소가 부족해지며 눈이 뒤집어 지고, 몸은 제 기능을 잃고 뒤로 젖혀진다. 발작을 일으키다 덩그러니 떨어진다. 드디어, 나는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쿠로오는 그대로 츠키시마의 손을 빌어 목을 쥐려고 했지만, 이미 뇌가 멈춘 츠키시마의 손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쿠로오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자신의 목을 조심히, 그리고 조금씩 조였다. 목 안의 기관이 파열되고, 당신과 같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천사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어, 이 빌어먹을 세상과 작별을 고하며, 나는 다시 당신의 곁으로 갈 것이니. 그 땐 반드시 사랑한다 말하리라.  

 

 

Cigarette

 

쿠로×츠키




 퀴퀴한 냄새가 연기로 흩어지며 코끝을 찔러댔다. 초봄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서늘했으며, 아스라이 흩어지는 하이얀 연기는 담배 연기에 묻혀 사라졌다. 바스라지던 그 하얀 연기는 허공을 뿌옇게 물들였다.
 코끝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은 듯 목 끝이 따가웠다. 내뱉은 한숨은 담배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독하디 독한 매연이 제 머릿속을 어지러이 헤엄쳤다.

 고개가 떨궈졌다. 앙하고 다문 입술 사이로 연기가 뿌옇게 새어나갔다. 켁켁거리는 소리가 촬영장 안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담배 한 개비를 쥐고 있던 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게 흔들렸다.

 "컷!"

 감독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제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켁켁거리는 탓에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는지 그가 직접 세트장 안으로 들어와 제 상태를 살폈다. 평소에 배우들한테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제가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고, 관심조차 주지 않을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그랬을 텐데. 이상하게도 계속 챙겨주려는 그의 노력이 꼭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것도 배로.

 "츠키시마 군, 힘들면 그만해도 돼. 그 부분은 그냥 편집하면 되니까."
 "아니요, 하겠습니다."

 하지 말라는 데도 오기가 생겼다. 제가 맡은 역은 완벽히 소화해내고픈 마음뿐이었다. 그 사람의 노력에 반응해 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싶었다. 되도록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그가 제게 다가와 속삭였다.

 "들이마셔봐, 천천히."

 제 입에 담배개비를 가져다 대고선 금방 치웠지만 연기는 이미 호흡을 타고 넘어간 뒤였다. 다시 한 번 켁켁거리자 이번에는 그가 제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사랑하는 애인을 마주하듯 이질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웃어보였다.

 "괜찮아? 아, 이런. 새 걸 꺼내야겠네."

 담배꽁초는 재빠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꽁초 끝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선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더 꺼냈다. 그러고선 제게 줄 줄 알았던 담배는 그의 입으로 향했다.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이는 그의 손이 분주했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연기가 그의 입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몽롱한 연기는 그가 뱉어내는 숨과 함께 흩어졌다.

 "자, 다시 해봐."

 그러고선 그가 피우던-한 번이지만-담배를 제 입에 물려주었다.

 "천천히 빨고, 들이켜. 조금은 목 뒤로 흘려보내고, 나머지는 입 벌려서 뱉어내."

 전 보다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호흡을 따라하며 담배 향기를 음미했다. 여전히 독하고 더러운 냄새였지만, 그의 담배를 피운 덕인지 그렇게 역겹지는 않았다. 이게 몸에 주는 영향을 알면 그런 소리는 나오지도 않겠지만.

 다시 촬영은 재개되었고,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다시 한 번 촬영을 이어갔다. 다행히도 장면에는 이상이 없었고, NG도 나지 않았다. 코끝으로 깔깔한 담배향이 미약하게 흩어지며 간질였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아니 고요한 바람소리가 흘러간 촬영장은 감독의 한마디의 외침에 갈라졌다. 드디어 끝이다. 끝.
 '컷'을 외친 감독님은 빠르게 세트 안으로 들어와 제 상태를 살폈다. 옥상 난관이기에 딱히 세트라고 명명하기도 힘들지만, 아무튼 마지막 장면은 연기가 되어, 담배연기에 흩어지며 주인공이 사라지는 장면이었기에 감독님은 그 장면은 엄청 찍고 싶어 했다. 마치 세상에 이별을 고하듯 마지막 담배를 들이키며 참담한 얼굴로, 그걸 또 묵묵히 숨기면서 돌아서는 그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했다.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지만, 담배에 모든 걸 맡겨버린 제 마음은, 감독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서서히 피폐해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렇게 담배를 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님, 단기간에 익숙해진 이 담배 향에 몸을 맡기고 다시 한 번 그 독한 매연을 들이키고선, 의지할 곳이 없는 제 처지를 비관하며 부정하려 들지도 모르겠고.

 "담배 이리 내놔."
 "쿠로, 아니 감독님. 제가 버리겠습니다."
 "버릇 들면 안 돼. 익숙해 졌다고 계속 피우게 되는 게 담배야. 이리 내. 옷에 있는 담배 곽도 내놓고."
 "예."
 "그리고 감독님이라고 안 불러도 돼. 익숙한 대로 불러. 이제 촬영 끝났으니까."
 "예, 쿠로오 상."

 나는 웃어보였다. 그도 기분 좋은 미소를 흘기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큰 손은 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고, 나는 그 안정감에 안도했다. 이제 나와 그의 사이를 갈라놓았던 '배역' 이란 일은 끝이 났다. 그는 '감독'이란 위치에서, 나는 '배우'라는 위치에서 오롯이 '영화'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마지막 장면을 끝마쳤다. 그 중 담배가 가장 거슬렸지만, 이제 그와 나는 원 위치로 돌아가야 했다. 요 근래 조금 어색했던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선, 애인답게 굴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빠지지 않았다.  
 어쩌면 난, 이 사람에겐 아무것도 당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오 상, 촬영도 끝났으니까 이젠,"
 "집으로 가야지."

 그래요.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새어 나오는 그 미소는 담배 향기처럼 중독성 있으면서도, 달콤했다.

 "촬영 끝났으니까, 담배에는 손도 대지마.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로오 상."
 "응?"
 "사랑합니다."
 "응, 응. 얼만큼?"
 "담배 만큼이요."

 잠깐, 츳키? 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쿠로오 상의 물음을 무시하고선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초봄에 흩어지는 연기는 아스라이 어른 거렸다. 제 입안을 물들였던 담배연기도 곧, 그의 집에선 사라질 테고 제 몸을 물들였던, 옷에 배인 향도 그의 향으로 가득 찰 테다. 나는 아무도 본 적 없는 미묘한 미소를 흘기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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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_거_넣고_싶었다!

黒-츳키.
月-쿠로오 상.
-달려드는 쿠로오 상, 막지 못한 츳키.
月-뭐 하시는 겁니까?!
黒-소독.
月-하아?
黒-담배 연기는 입 안에 배면 안 좋아.

능글맞게 웃으며 겁나 진한 키스를 퍼부어 줬다고 합니다. 것도 딥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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