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산산히 부서지는 갈망 속에 타들어가던 애절함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었고, 눈물 방울은 끝무렵에 걸쳐있었으며 서로의 손은 맞잡은 채로 무참히 찢겼다. 그의 뜨겁던 몸뚱아리와, 귓 속에서 흩어져버리던 약한 숨소리마저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했던 때가 무색하게 나는 기억 속에서 완전하던 당신을 조각내고선, 애써 조각난 기억의 산물을 전부 무의식의 심해로 던져버렸다. 다신 그 기억을 꺼낼 이유도, 그럴 일도 없으리라.

 그 날 그렇게 다짐하고선, 다시 그가 생각났다. 그는 나의 구원자이고, 내 인생에서 전환점에 서 있던, 그 구원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바라건대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길 빌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3년 전, 자살기도를 하던 나를 구해주었다. 이젠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비오는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걸었다.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여전히 어둑하게 깔린 어둠에 앞은 보이지 않았으며, 껌벅거리는 가로등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았다.

 빗 속을 뚫고 지나쳤다. 차들은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엔,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한 개 외엔 전부 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는 그 밝은 가로등 불을 흐릿한 눈길로 응시했다. 추위에 나뒹구는 시체가 있다면 시청에서 처리해줄까. 유서라도 써놓는게 좋을까, 와 같은 의미없는 물음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그 날 죽음을 각오했다.

 실은 죽더라도 밝은 곳에서 죽길 원했다. 앞으로 계속 사람이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은 골목이었다. 그 흔한 고양이 조차도 없는 걸 보면 사람도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비가 와서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명 정도는 지나면서 죽어있는 내 시체를 발견하고선 누군가가 처리할 게다. 그저 죽음은 예견된 미래였다.
 그 때, 누군가가 제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앉아 있으면 감기 걸리실텐데."

 그 남자였다.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눈매마저도 아름답던 그가 제게 말을 건네왔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선 내 손을 맞잡았다. 이미 내려간 체온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하고선, 근처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나는 별 수 없이 경찰서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제 갈 곳이 없었다. 그가 내 보호자라는 말을 하고서는 경찰서를 나섰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금 있다가 돌아온다는 그 남자의 말이 귓가에서 헛돌았다. 뺨 끝 언저리에 남은 그의 온기는 다시 차갑게 변질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으나 나는 경찰에게 내 신원에 대한 진술을 해야했다. 몇일 전 일어난 주택 살인사건의 피해자이며, 나를 제외한 가족 전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할텐가? 나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아니, 그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사체가 되어 그냥 거리의 쓰레기로 전락되어 땅 어딘가에 묻혀졌을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다시 시작해야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까지 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이제야 내가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당신의 목에서 핏물이 떨어질 때면 내 온갖 신경이 마구 치솟아 오르면서 막, 막 이상한 감정이 차올라."

 당신이 제게 했던 말은 어느새 찢어진 붉은 입술에 먹혀 짙게 터져나오는 호흡에 갈라졌다. 그는 제게서 얻어내려고 하는 게 적지 않았으나 이토록 어이없게 단번에 저를 잡아먹으려 했던가? 그의 손길이 제 턱선을 따라 가슴 팍으로 내려가더니 어느새 허리에 다다랐다. 그는 끈적한 손길로 제 허리를 감싸더니 또 다시 제 목부근에 머리를 박고선 흐르는 핏물을 조심스레 핥아먹고 있었다.

 "당신 피는 야해서 좋아. 최근에 먹은 피 중에 당신 게 제일 좋았단 말이지."
 "잔말말고, 빨리 드시고 꺼지시죠."
 "너무 야박하네. 말했잖아. 이제 당신 피 말고는 먹을 피가 없다고. 다른 피는 다 더러워 보여서 말이지."
 "그냥 저를 죽이시고 피나 실컷 먹으신 뒤에 버리시는게,"
 "너를? 너를 죽이란 말이야? 대체 왜? 몇 일만 쉬면 새로운 피가 샘솟을 텐데, 내가 뭘 위해서 그래야하지? 한 순간의 행복을 위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님 말고요."

 당신은 아마 제 피가 탐나기 때문에 내 곁에 머무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갈 곳 없는 나를 붙잡아 집을 내어주었고, 음식도 건네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피를 내어주는 것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는 꽤나 친절했다. 고작 피를 먹겠다고 충분한 음식을 매일 내어준다든가, 다정하게 제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연인같이 보이기도 했다. 정작 그는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지만.

 "저기요, 뱀파이어 씨?"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몰랐다. 딱히 대체할 호칭도 찾지 못했기에 뱀파이어라 불렀다. 언젠가 그가 이 곳을 비우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이 빌어먹을 저택을 빠져나가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주 동안 그는 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꼼짝없이 뱀파이어에게 잡혀있어야 했다.

 "왜 그러지? 부탁이라도 있는건가?"
 "그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있어야 하죠?"
 "아, 밖에 나가고 싶은건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기에 그가 뭐라 하는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으므로, 안타깝지만 접어두는게 나을 듯 싶었다.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그럼?"
 "오늘이 몇 일이죠?"
 "9월 25일."

 예?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9월 25일이면 그를 처음 골목에서 마주했을 때와 같은 날짜였다. 혹여 1년이 지난 건지 물어봤으나 확실히 그 날이었다. 시간이 멈춰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이 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다. 여전히 그는 허기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그러지던 제 얼굴을 보던 그의 표정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번졌다. 그러더니 양껏 걱정을 껴안은 제 양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기에 앞서, 그의 입술이 움직거리는 종착지를 찾아가니 더 이상 놀랄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야. 뭐 그리 실망해? 오늘 당신이 들어오고 나서 딱 2주 지났어."
 "그, 그렇습니까."

 농담은 되도록 하지 말아주시죠. 당하는 나는 심장 떨리니까. 또 얼굴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심장에 무리가 갈만한 외모라서 계속 제 심장은 열심히 뛰고 있다. 냉철한 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능글맞게 대꾸하고 있지만.

 "당신, 근데 내 이름 안 궁금해?"

 왜 안 물어보는거야? 그는 귓가에 대고 제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별로. 피만 주다가 나갈꺼니까요."
 "아냐, 기억해두는 게 좋아. 당신이 언제고 나를 마음 속으로 기억할 때마다 이름을 부른다면, 그 때라도 나는 당신을 이 저택으로 다시 데리고 올 생각이거든."

 당신도 아마 내가 그리워질껄? 능글맞게 웃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하자 그는 제 몸을 벽 쪽으로 밀치고선, 또 다시 입을 맞춰왔다. 평소보다도 더 격렬한 키스였다. 어쩌면 그간 했던 접문 중에서도 가장 여운이 길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터진 입술에서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다. 그는 제 피를 보고도 달려들지 않았다.

 "마츠카와 잇세이.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그럼, 잘가. 오이카와."

 그는 미련 없이 제 몸을 문 밖으로 밀쳐냈다. 눈을 뜨니 전에 그와 만났던 골목이었다. 휴대폰 액정이 나타내고 있는 시간은 오후 9시. 날짜는, 9월 25일이었다. 한 순간에 몰려드는 무력감과 황당함이 머릿속으로 가득차고 있을 즈음, 그의 이름이 생각났다.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 감정도 들지도 않았고, 어떤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매정하게 말하자면 허상이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어. 언제까지고 나는 당신과 아무런 연이 없는 평범한 인간일테고, 당신은 그저 잠시 내가 골목에서 빈혈이 나서 까무룩 쓰러진 차에 제 꿈 속에 나타난 무의식일 뿐이다. 난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언젠가 내가 당신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마음은 없는거야.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버리는 사람하고는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츠카와를 다시 본 건, 그로 부터 이틀 후였다.



 "오이카와?"
 "으음, 누구?"

 깨어나보니 그의 저택 안이었다.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쩌면 환청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잠들려고 했으나 맞닿아오는 그의 손길에 이는 꿈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의 선명한 숨소리가 제 귓가로 파고 들고 있었다. 얼굴을 제 목에 파묻은채로 짐승처럼 피를 갈망하다가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푹, 이를 박았다.
 피가 흐르는 감촉에 그의 머리를 끌어 안고선 고통을 내뱉었다. 어느새 노곤해진 몸은 그의 손이 지탱하고 있었고, 그는 제 몸을 잡아선 침대에 다시 눕혀주었다.

 "봐. 넌 다시 올거라고 했지? 이제 벗어날 수 없어."
 "이건 꿈입니다. 그래 이건 꿈이겠지."
 "꿈? 꿈 같은 소리 하네. 넌 이제 내 품에서 못 벗어나, 오이카와."

 저렇게 말하는 재수없는 놈에게 화가 나야하는게 분명한데 피를 빨려서 그런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아, 나는 탄식했다. 그의 몸을 껴안으며, 피의 저주에 잠식되어가면서. 점차 감정의 몰락에 처연히 대처하며.

 감정회로의 손상이 일어났다. 억지로 맞지 않는 곳에 끼워넣었다. 그럴 수록 이상하게 당신이 제 눈에 어른거렸다. 정말 고장난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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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after you

 

마츠×오이


*각애 외전


 그 날은, 평소와 다르게 꽤나 고요했던 날이었으나 또, 평소와 다르게 다사다난 했던 날이었다. 하늘은 여느날과 같이 청명한 빛을 머금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햇빛은 무더위에 적합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위에 찌들어 건물 안에 처박혀 있는 제 신세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가호아래 밖으로 나다니지도 못하고 에어컨 바람이나 쐬는 신세라니. 누가 들으면 부럽겠다고 구미가 도는 제안일지도 모르겠으나, 별로 달갑지만은 않는 말이다.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왔다면, 그가 과연 이렇게까지 편의를 제공해줄 의향조차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아아, 나는 탄식했다. 부디 나를 편히 놓아줬음 좋으려만. 애석하게도 제 바람은 이미 그의 입맞춤에 묻혀버린지 오래였다. 이제는 맨정신으로 그를 마주하는 일도 힘들었다. 죽여달라고 애원해도 그가 들고있는 총으로 제 몸만 죽이고 정신은 살려놓을 놈이다. 나는 체념한 상태로 차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맞이했다.

 "토오루"
 "무슨 일이시죠, 보스."
 "넥타이가 삐뚤어졌어. 잠깐 나와, 다시 매줄게."

 그는 한 손으로 나를 차 안에서 끄집어내더니 능숙한 손길로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끈적해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으나 금새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는 항상 반듯한 모습으로 회사에 가곤 했으므로, 흠잡을데가 없었지만 나는 익숙하지 않은 옷차림을 애써 정리하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굳이 일도 하지 않는 내가 정장을 입을 이유는 없었던 것 같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좀 더 신경쓰는 듯한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제 모습이 초라해보이기 그지없었지만 그도 그뿐이었다.

 "그리고 보스는 조금 딱딱하지 않아? 네가 조직원도 아니고, 굳이 그런 호칭으로 날 부를 필요는 없잖아."
 "아직은 어색하니까요"
 "어색하긴, 어제까지만 해도 반말 찍찍 써대는 사이 아니었나?"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미쳤나 보,"
 "그러지 말고, 기분좋게 갔다 올테니까 내 이름 불러줘. 오늘은 그닥 내가 좋아하지 않는 손님이 올 예정이라."

 좋아하지 않으면 거래를 잡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하고선, 입도 꿈적 안하고 회사로 가려고 했다. 그의 긴 손가락이 제 볼을 살짝 찔렀다. 어리벙벙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피식 웃으며 제 손을 붙잡았다. 그의 끈적한 숨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파고 들었다. 그는 제 의도를 파악했는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이 손을 놓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제 옆으로 달라붙어왔다. 그 사이 이미 차는 회사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아쉽다는 듯 제 손을 놓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제 손을 잡았고, 나는 그의 에스코트 아래 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왠일인지 어디로 가라는 그의 명령이 없었고, 그는 계속해서 제 손을 붙잡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속셈이지. 그의 손은 여전히 끈적하게 제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약간 소름이 돋는 터라 잘게 손이 떨렸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오늘은 그도 사장실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회의실이나 다른 장소로 가서 거래를 주고 받았을텐데, 오늘은 꽤나 중요한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것 같았다. 잘 모르겠지만 감이 그랬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의 이야길 꺼내는 이유가 왠지. 사장실에 들어서자 마자 그는 제게 이런 이야길 꺼내왔다.

 "난 가끔 당신이 떠날까봐 무서워. 당신 마음이 아직 그 쪽에 있거든. 그 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잘 살고 있어?"
 "아쉽지만, 죽었다는군."
 "개만도 못한 새끼!"
 "입도 적당히 놀려. 그 입 잘라버리기 전에."
 "씹…읍."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잇새로 흘러나온 짧은 외침은 그의 눈빛에 사그라들었다. 그는 제 귀에 대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놀라지 말고 들어, 토오루. 오늘 그가 이 곳으로 올거야.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아. 그는 살아있지만, 너를 알고 있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죽었거든. 그는 이미 너를 기억에서 지웠을테니까.

 조금 멍한 상태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별 말없이 사장실을 떠났다. 같이 올라온 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나. 그럼 분명 그가 좋아하지 않는 손님이란 건, 이와쨩을 의미할테다. 하지만 제가 회의실로 간다고 해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아마 도착하기도 전에 그의 손길에 붙잡혀 다시 그의 집에 처박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용히 기다렸다 그에게 경과를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확일게다. 이와쨩이 살아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텐데.
 다리에 힘이 풀려주저 앉았다. 정신없이 멍하니 10분 정도를 그렇게 있었을까. 사장실의 문이 열리는게 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서실로 들어오는 문이 아니라, 간이로 만들어 놓은 작은 문으로 들어 온 남자는 이와이즈미 하지메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에게로 달려갔고, 그 또한 제 얼굴을 보고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이와이즈미는 급하게 제 팔목을 잡아채고선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다. 얘가 약을 먹더니 미쳤나, 하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행히도 앞 건물과 높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 간신히 옥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의 회사를 바라보니, 사장실에서 제 모습을 응시하는 마츠카와의 흔적이 여실하게 깨진 창문사이로 드러났지만, 또한 그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 없었으나 나는 도망치기 바빴다. 이제 그의 손에 붙잡혀 사는 건, 치가 떨리는 제안이었다.

 "오이카와, 그 동안 잘 있었어?"
 "응. 이와쨩도 별 일 없었지?"
 "저 새끼가 준 마약 참는 것 빼곤 별로."

 그래도 가끔 발작은 해서 한 알씩 먹어줘야 해. 저 새끼가 뒤쫓아 오진 않겠지? 다른 마약밀수업자를 알아봐야 하나.
 이와이즈미는 정리되지 않은 언어를 내뱉었고, 달리던 도중 그는 무언가가 목에 걸렸는지 한손으로 목을 감싸며 ,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가슴을 연신 쳤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도시 한복판을 달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디선가 미약하게 피냄새가 났다. 옆에서 나는 냄새였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자 이와이즈미는 켁켁대며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는 핏물에 물들었고,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서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나는 그를 붙잡아 일단 골목으로 끌고 갔다. 이대로 있다가 경찰에게 들켜 병원에 간다해도 그의 신분 -신용불량자에 마약중독- 이 들킬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그 사람까지 연결될 수 있었기에, 복잡한 일은 피하고 싶었다. 나는 조심스레 옆의 골목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 순간, 그에게로 총탄하나가 날아들었다. 토해내던 입 속에서 울컥하고 핏물이 솟구쳤다. 가슴을 뚫고 지나간 총탄은 제 앞에 떨어졌고, 눈 밑이 벌겋게 충혈된 이와이즈미의 사체는 제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이카와는 쓰러진 이와이즈미를 한번 즈윽 훑고선, 다시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서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제가 알고있는 이였다. 마츠카와 잇세이. 벗어나고 싶었던 족쇄와도 같은 사람.

 "도대체 왜 죽인거야? 살려 놨으면 좋았을텐데! 살아있었는데!"
 "마약 중독이랬지? 그 새끼, 널 데려 가서 장기매매 업자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던 것 같은데. 아님 네 장기를 자기 몸에 이식하려는 생각도 했었겠지. 약 때문에 많이 망가졌거든."
 "그럼…."
 "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나한테로 와. 도망치지 말고."

 갑자기 제 자신이 한심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던가. 아아, 마츠카와! 나는 조심스레 그의 손을 붙잡았다. 죄송해요, 다시는 도망 안 칠게요. 믿을 사람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도망칠 여력도 없다. 나는 그의 사죄의 의미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나, 그가 제게 제안한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이름, 불러줘."

 아직도 이름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나는 별 수 없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흘기며 그에게 답했다.

 "잇세이."
 "좋아. 토오루. 이제 밤에도 그 상태로 울어줘."

 뭔가 이상한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고 있음에 틀림없었지만, 나는 무턱대고 끄덕였다. 분명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남아있던 여유가 다 사라진 탓이리라. 나는 그에게 안겨있는 채로 그에게 말했다. 좋아합니다. 이제는 진짜 도망치지 않을테니까, 나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과연 그런 말로 그의 마음이 풀릴 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조금 보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마피아 보스 이름을 막 부르는 건, 뒤가 조금 찝찝했다. 그래서 그냥 달링을 호칭으로 정하고 마무리했다. 그는 제가 달링하고 부를 때마다 조금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오히려 즐기는 마음으로 부르고 있다.

 당신이 온전히 제 마음 속으로 들어올 그 날까지 난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할테다. 당신이 내 뒤를 뒤쫓듯, 나도 당신의 마음을 뒤쫓으며. 이제는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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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 Holiday

 

마츠×오이 

* 각애 스핀오프



 "아아-, 더워."

 더위에 물든 건물은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으며, 방 안에 있는 에어컨 조차도 주인이 없는 동안에는 작동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비서실에 가서 얼음물이라도 달라고 해볼까. 그러기엔 저번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 것만 같아서 차마 사장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작은 선풍기가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기에 그거라도 틀고선 작은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타이밍 좋게 거래를 마치고 돌아왔다. 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소규모 회사의 사장인데 (사실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가끔씩 오는 손님들과 거래만 하고, 주로 마약류나 총기등을 거래하는 '마피아'라는 사실은 극히 소수만 알고있는 사실이다. 아마 분홍색 머리인 그 비서도 아마 이러한 사실은 모를 것이다.

 그는 책상앞에 있는 선풍기에 얼굴을 대고 투덜대는 제 얼굴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그리고 서랍에서 에어컨 리모컨을 꺼내더니 무심하게 전원을 키고선 다시 집어넣었다. 그냥 틀어놓고 갈 것이지. 몇 시간 동안 더위에 방치시켜 놓은 그가 조금 미워질 뻔 했지만, 그 다음 그의 말에 누그러졌다.

 "영화보러 갈래?"
 "영화관?"
 "응."

 월척이다. 최근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집에서는 영화를 본다해도 그가 계속 달라붙어와서 힘들터였고, 최근에 바깥에 나가지 못해 많이 수척해 진 것 같았는데 그런 기분도 모조리 다 날려버릴 만한 제안이었다. 그 달콤한 제안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말을 바꿀세라 나는  재빨리 가겠다고 했다. 어딘가 찝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설마, 영화관을 통채로 빌린다거나...?"
 "그런짓은 안 해. 가서 영화 보려는거 아냐?"
 "아님 나 혼자 갔다 올...까?"
 "같이 가. 안 달라붙을게."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좋아, 가자. 더운데 잘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괴리감을 떨쳐버리진 못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채로 다시 그의 손에 붙잡혀 영화관을 가야 했다. 그래도 나갈 수 있다는 자유에 사로잡혀 별 말 없이 그를 따랐다.

 "자리는, 각자 떨어져서 앉,"
 "이미 예매했어."
 "팝콘은?"
 "가서 사줄게."

 휴일이랍시고 거래도 빨리 끝내고 오셨댄다. 그럼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지. 나는 잔말않고 그를 따라 가기로 했다. 한 손엔 팝콘을 들고, 한 손엔 콜라를 들고 그를 따라간 2관에서는, 아직까지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많이 없는 것 같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놓을 순 없었다.

 "이거, 보고 싶은 거 맞아?"
 "으, 응."
 "꽤, 마니악하네. 이런 거, 좋아해?"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2관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찾아가니, 것도 영화관 구석이다. 진짜 어떤 흑심도 없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보는 내내, 내용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무심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끼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다음부터 내가 그 녀석이랑 영화관에 오나 봐라, 진짜. 그리고 끌려 올테다, 제기랄.

 "그러니까, 이런 외설적인 영화는 집에서 나랑 보는게 좋겠지?"
 "당신이 손으로 만지지만 않았어도..!"
 "느꼈잖아. 응? 기분은 좋았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대답을 기다렸으나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채로 그저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뭔가 생각이 난 듯 제 어깨를 그의 큰 손으로 감싸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 공공장소는 아닌 것 같아. 당신이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거든. 정 영화가 보고 싶으면 말해. 안 쓰는 건물 하나 매입해서 영화관으로 만들어 놓을게."
 "그냥 집에서 볼게. 미안. 굳이 나오겠다고 고집피워서."

 말이 안 통하는 놈이다. 그냥 제 몸 간수만 잘한다면 별 상관 없을 것 같으니 순순히 그의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그의 입에 키스하고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휴일이라기엔 조금 어지러운 날이었다. 영화관은 특히 생각치도 못한 일을 당했으나, 나를 위로한답시고 바닷가로 드라이브한건 꽤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기분좋게 찰랑였다. 그의 차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볼에 입맞추며,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익숙해진 당신에게 속삭이며.

 "사랑합니다. 이제는 도망 안 가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나, 당신을 꽤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래? 그거 고마운데."

비록 처음은 강제였으나, 지금은 조금 다른 사랑을 속삭이며.


    

 

각애(刻愛)
(부제: 죽을 권리와 살 의무)


 


*나래님 생일 축전))
*마츠×오이(+이와)

 

 

 

 열린 창문 새로 바람이 옅게 불어오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안개가 부옇게 흐려오던 오전이었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눅진하게 스며들었다. 허리 부근이 아프다 못해 아리다.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 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니, 그 전날의 기억이 머릿 속을 어지러이 유영했다. 아슬아슬한 기억속에 그와의 접문이 아릿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결코, 말하건대 그의 키스는 최악이었다.
오늘에야 말로 죽어버릴테다. 각오는 산산히 부서져 그의 입술에 먹혔다. 어젯밤 죽을 각오를 하고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보안 장치에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주변을 가릴 즈음, 제 방으로 찾아와 자고 있는 제 몸을 덮치며 조심스레 키스했다. 입 맞춤은 최악이었다. 혀를 휘감아 오는 그의 입이 제 것을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솔직히 말해, 못한다기 보단 너무 아팠다. 그가 깨문 제 입이 붉게 부어올랐다.

 "오이카와.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리고 그는 방을 나갔다. 잠시의 접문을 끝내고, 밤이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한채로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해가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또한, 제 옷은 갈아입혀져 있는 상태로, 그의 차에 태워져 회사로 가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가 골랐을 수트는 깔끔하게 입혀져 있었고, 그는 유유히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 왔어. 내려."
 "여긴 뭐하러 왔어? 할 일도 없잖아. 유령회사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오늘 거래가 있을거야. 중요한 거래니까, 6층에서 조용히 있어."
 "잠깐 시내에 나가는 건 안 돼? 이와쨩만 잠깐 보고 다시 돌아올..."
 "안 돼."
 "내가 억지로 빠져나간다면?"
 "그땐 사지를 절단해 버릴거야."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들어. 나도 네 사지를 절단하고 싶진 않거든. 아직 제대로 맛도 보지 못했는데 죽어서야 되겠어?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사장실로 향했다. 아마 거래는 회의실에서 이루어질게다. 그는 순순히 뒤를 돌아 회의실로 향했고, 사장실로 가려다가 담배나 한 개비 피우려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 자신을 반긴다. 하늘은 오늘따라 흐릿했다.

 이와쨩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을텐데.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가 떠올랐다. 아마 비흡연자였던 이와이즈미의 호통이 생각났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담배는 냄새도 맡기 싫다며 거부하더니, 결국 이런 상태다. 물론 담배 때문에 떠나간 건 아닐지라도, 매한가지다. 그는 내가 싫었던걸까. 담배 끊기는 좀 힘든데. 그가 깔리는게 아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와쨩은 나를 마츠카와에게 팔아 넘기고 이 빌어먹을 공간을 나갔다. 그의 감시 아래 있었던 그가, 자유를 되찾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라도 이와쨩이 돌아와서 날 데리고 나가겠다고 와준다면, 난 다시 받아줄 의향이 있다. 이와쨩이 싫다고 해도 나는 그를 붙잡고 나갈게다. 그럴러면 제 몸 값을 지불할 -원래는 이와이즈미의 빚이었다- 돈이 있어야겠지. 애인을 팔아먹고 빚을 갚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건, 벌 뿐이다. 마츠카와에게서 벗어난다면, 반드시 그를 만나 그 간의 서러움을 알려주리라.

 무튼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는다 해도 -즉사만 아니라면- 그를 볼 수 있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이다. 가장 바라는 건, 지금 이와쨩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서, 마츠카와가 거래하는 동안에 나를 빼내는 거였다. 하지만 제 기대는 역시나 부서졌다. 정말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속박되어 사는 것보단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게 낫겠다고, 저 괴물같은 남자에게 잡아먹힐 바엔 세상을 등지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생각의 자유도 없는 건가. 그는 거래가 끝났는지 상쾌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이와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허황된 미래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지쳐 쓰러지던 제 손을 잡아 올린 건, 그가 아니었다. 깊은 눈매로 나를 응시하던 남자는, 넘어져 있던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고선, 뒤에서 나를 꽉 끌어 안았다. 그의 품에 폭하니 파묻힌 제 몸부림은 그의 팔에 간단히 제압되었다. 그는 그 단단한 손으로 제 몸을 끌어 올리고선, 파도처럼 잔잔한,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제 귀를 현혹시켰다.

 "놔! 난 죽을거라고! 이거 놔!"
 "토오루."

 그의 어두운 목소리가 제 귓가를 스치고, 그의 손은 제 몸을 더 억죄어 온다. 더듬는 그의 손길이 어딘가 모르게 음습하다. 옅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제 귀에 박혔다. 호탕하게 웃는 것도 아니고, 한숨과 가까운 웃음을 흘겼다.

 "이거..., 놔줘."

 태도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렇게 접근하는게 빠져 나오기 쉬울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편히 죽길 원했다. 나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선뜻 표를 던질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제 가슴을 찔러온다. 곧 비수가 되어 제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넌 못 죽어. 알잖아? 네 몸은 내가 샀으니까, 네가 독단적으로 움질일 수 있는게 아니란 말이다."
 "보스..."

 나는 최대한 애절하게, 비굴하게 나 자신을 낮추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 보는 그 눈빛에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눈에 제가 온전히 파묻히게 된 것이었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거니와 그는 처음으로 -느낌이지만- 내 눈을 정확히 쳐다보고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그의 얼굴이 보였다. 금욕적인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뇌쇄적인 미소를 흘기며 제 본능을 자극했다. 그것은, 수컷 짐승의 구애 같기도 했고, 혹은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발악같기도 했다. 제 몸을 감싸오는 그의 손길이 야릇한 본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의 표정만으로는 이미 모든 걸 끝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미소에 나는 조심히 꼬리를 내리고 위협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대담한 손길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선, 다시 한 번 제 볼에 입을 맞추었다.

 "틀렸어. 난 네 보스가 아니라 애인이지."
 "미친, 당신이 왜 내 애인이야."
 "몸 맞고 마음 맞으면 애인이지. 아직도 그 녀석한테 미련을 가지고 있는거야? 널 버리고 떠난 놈인데도?"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그런 뜻으로 나간게 아닌데. 분명 그는 다시 돌아올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을 그는 단 3초의 정적으로 깨뜨려 주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어느새 바람결에 흩날려온 마냥 다시 스치듯 흘러갔다. 그가 팔을 느슨하게 풀려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어떻게든 안간힘을 썼고, 몸은 빠져나왔을지언정 마지막에 붙잡힌 손목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어오른 손목이 아릿했다. 더 세게 쥐어오는 탓에 통증은 더 심해졌다. 점점더 그의 손이 제 것을 쥐고 억죄어 왔다.
나는 있는 힘껏 발악을 했다. 그의 표정이 약간 험악해 졌음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당신의 그 잘난 손에 붙잡혀 총으로 맞고 칼로 난도질 당해 처참히 생을 마감하고픈 마음은 없다. 적어도 생의 마지막을 그런식으로 끝낼수는 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와의 언쟁이 점차 심해지다 못해 극에 다다랐다. 제 목소리는 여전히 공기를 갈랐지만, 그는 평소와 같이 고요한 울림이었다. 나는 목이 쉴 정도로 외치며 제 의사를 밝혔다. 그에게는 편치 않는 짐승의 포효와 별반 다를게 없었겠지만.

 "그에게 보내주지 않으려면, 그냥 죽는게 나아! 이거 놔! 죽을거라고!"
 "오이카와, 못 들은거야? 네 몸은 내가 샀다니까. 당신은 죽더라도 내가 죽여, 알겠어?"

 잠시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죽는 것도 저 괴물에게 맡겨야 한다니. 잠시 치가 떨리는 제안이엇지만, 고통스럽게 죽기보단 즉시하는게 낫겠다. 총으로 한 방에 죽여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마피아를 앞에 두고 죽겠다고 난리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죽여달라면 편히 보내줄텐데,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일을 만들어?"
 뭐, 부탁해도 안 들어 줄거지만. 섬뜩하게 웃는 녀석의 낯빛이 반질거렸다. 그는 제 손을 다시 잡으며 세게 쥐었다. 잇새로 신음이 튀어나가자, 그는 의아한 듯 제 손목을 들어 살펴보았다.

 "윽."
 "손목? 많이 부었네."

 그는 제 손을 확인 하고선 앞으로 안아들었다. 졸지에 공주님 안기 꼴이 됐지만, 몸이 들리니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손목 삔 것 뿐인데. 굳이 이렇게..."
 "걷다가 다리까지 삘지 누가 알아?"

 옥상에서 내려와 사장실로 들어갈 때 까지 나는 그에게 안겨 있어야 했다. 그는 서랍에서 붕대와 약품등을 들고와선 제 손목을 둘러 감쌌다. 얌전히 6층에 있으라던 그의 말을 안 들은게 잘못이었다. 왜 굳이 옥상에 올라가서 이런 몹쓸 꼴을 보이다니, 과거의 내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그는 조심스레 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이카와, 사랑한다."

 그러니까 죽으려고 하지마. 그건 결코 당신이 정부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의 말처럼, 나도 당신을 어쩌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백하게 새겨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강압적인 느낌의 언어였다. 억지로 새겨진 사랑을 다시 훑으며, 당신은 다시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가볍게 입 맞추며 조심스레 사랑을 새긴다. 사랑이란 이질적이고도 모순적인 감정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르는 제 감정을 드러내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인다.

 

각애(죽을 권리와 살 의무)_Fin.

 

 

 

+(설정)
-마츠카와 잇세이 : 마피아 보스. 현재 회사 운영 중. 회사라 해도 허물만 회사일 뿐, 실제로 없는 유령회사. 무기상이며 마약거래도 함.
-오이카와 토오루: 회사원이었으나 애인이었던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오이카와를 마피아 보스에게 파는 바람에 마츠카와네 저택에서 살게됨.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데리러 올거라 믿고 있음.
-이와이즈미 하지메: 마츠카와에게 빚이 있음. 그래서 오이카와를 대신 팔아넘김.

 

-

본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늦어지더라도 감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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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을 새기다

각애(刻愛) 스핀오프

 

 

 

마츠×오이

 

 

저번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으나, 그나마 나았던 점은 회사에 틀어박혀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남은 잔업을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조금 달랐다. 아무 일도 하지않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했던 터라,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대낮부터 아무것도 없는 건물에 붙박혀 있는 것은, 결코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그나마 에어컨이라도 달려있어서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여름 더위에 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사무실은 단조로운 편이었다. 적어도 전에 있던 회사와는 전혀 달랐다. 가끔씩 지시를 받으러 올라갔던 사장실의 풍경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간결하게 책상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요즘에는 쓰지 않을 법한 깃펜 하나가 잉크 통에 세워져 있었다. 또한 접대를 위한 테이블과 소파 외엔 어떠한 가구도 찾아볼 수 없는 간결함이 흐르고 있었음엔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 밖의 비서실엔 서류들이 넘쳐 났는데, 그의 비서는 꽤나 성실한 편이라 오전에는 거의 일을 다 끝내곤 했다. 아니, 하는 일이 그닥 없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유령회사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여튼, 그의 사무실은 정갈하게 정돈 되어 있음이 확실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오늘 그의 사무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따분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갑게 식은 책상과 딱딱한 가구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품속에 안고 왔기에 망정이지, 책이라도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면 또 적막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가끔 거래를 할 때 나를 데리고 같이 나오곤 했는데, 그는 내가 도망갈 것을 걱정했는지 사장실에 보안장치를 걸어놓고는 거래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더운 여름, 에어컨이나 틀어놓은 사무실에 박혀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전에는 특별하다 느끼지 못했던 자유가 간절해지자 옥상에서 뛰어내릴 성 싶었던 제 계획도 그의 손에 산산조각나 부서졌다. 죽겠다 다짐했었던 그 허망한 각오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물이라도 드시겠어요?"

그의 비서였다. 그와는 초면이었다. 솔직히 말해 달가운 편은 아니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오히려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의 존재마저도 전 애인-그의 비서직에서 해고당했다-이 떠오르는 탓에 쉽게 웃어보일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적개심을 드러낼 의도는 없었기에 한껏 치장된 웃음를 내보이며 미소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조용히 비서실로 가서 물을 한 잔 가지고 왔다. 안에는 얼음이 한 가득 담겨있는 채였다. 나는 그에게서 물 잔을 받아들고선 조심히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으로 시원스레 넘어갔다. 그는 빤히 제가 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때 마침 거래를 끝낸 마츠카와가 들어왔다. 그는 귓속말로 비서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잠시 귀 기울여 듣다가 인사를 꾸벅 하고는 비서실로 다시 돌아가는 그 비서를 황망히 바라보다가, 제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얼음만 남아있는 물잔으로 고정시켰다.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났다.

"더워. 밖에 나가면 안 돼?"
"안 돼. 지금 폭염이라 나가면 죽어. 그냥 여기 있어. 에어컨도 틀어놨는데, 진짜로 더워?"
"더워."
"그럼 시원하게 해줄게."

그는 제 몸을 소파위에 눕히더니 얼음이 든 컵을 집어들었다. 그대로 몸에 부으려는 건가.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으나 아마 그는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리라. 물은 다 마셨지만 얼음이 맨 살에 닿으면 아마 차갑다기 보단 아프단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두 손목은 그의 한 손에 잡혀있었고, 그는 물 컵을 들고선 제 위로 그의 몸을 겹쳐왔다. 결국 그가 덮치는 자세로 제 몸을 깔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거 풀어줘. 더우니까 손 좀,"
"더우니까 시원하게 해준댔잖아. 조금만 참아."

그러고선 한 손에 들고 있던 컵에서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넣고선, 밑에 깔린 제 입에 넣어주었다. 그의 타액이 섞인 투명한 얼음 조각이 제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투명한 액체가 그의 입에서 떨어져 제 볼으로 흘러내렸다. 얼음은 그의 입에 삼켜져 제 입으로 옮겨졌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얼음이 차가워야 할텐데, 그의 타액에 닿아 뜨겁다. 그의 시선마저도 정열적으로 타들어간다.

"하나, 더 줄까?"

그의 목소리는 낮게 제 귓가를 울린다. 억지스럽게 요구하는 말투는 아니었으나 분명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 안 먹는다 해도 억지로 먹일 것이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얕게 웃으며 다시 컵의 얼음을 한 개 입에 머금었다. 얼음을 녹이는 그의 혀가, 어쩌면 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잔뜩 머금은 얼음과 물을 제 입으로 넘겨주었다.

아니. 넘겨주다가 그의 입이 제 것을 삼킬 듯이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서로의 혀가 얽히면서 차가운 얼음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말캉한 혀가 서로 부딪히며 얼음 조각을 녹혔다. 점차 작아지는 얼음 조각에 더 격하게 얽혀드는 혀가 뜨거웠다. 축축하게 얽혀드는 그의 혀가 부드럽게 제 혀를 감쌌다. 얼음이 다 녹고 나서도 그의 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입 안을 헤집었다. 이제 야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어느새 그에도 익숙해 졌는지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부끄럽다기 보단,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의 시선을 좇고 있다 보면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뜨겁게 일렁인다. 그 뜨거움을 즐기는 건 적적한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나, 더?"
"이번엔, 좀 더 진하게."

나는 그에게 옅은 미소를 흘겨보였다. 그는 제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눌렀다. 그의 미소가 제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점차 옅어지는 그의 미소가 제 눈에서 일렁였다. 그가 얼음을 물고 제 입을 향해 다가오자 나는 다시 한 번 조심스레 그의 입을 받아냈다. 서로의 혀는 얽혀서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부드러운 입 맞춤에 시원하긴 커녕 좀 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를 밀쳐낼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에게서 여름의 -잊지못할- 기억을 받은 것만 같다. 여전히 강렬하게 엉키는 혀가 나를 덮쳐온다.
얼음이 그의 손에 들려있던 컵에서 쏟아져 흘러내렸다. 제 몸으로 흘러내린 얼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맨 살에 닿아 투명하게 흘러내린다. 얼마 남지 않은 얼음이었기에 그는 제 팔에 떨어진 얼음을 혀로 감싸고, 제 팔을 핥아 올렸다. 아아, 그의 혀가 제 몸을 뜨겁게 감싼다. 그의 혀로, 여름을 새기며.


여름의 무더위는 얼음에 녹혀져 흩어졌다. 눅진한 기억 속, 그 해 여름을 꺼내며, 다시 한 번 여름을 새긴다.

*2인칭 시점의 소설입니다만, 혹여 '나'라는 표현이 발견되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찌통, 사망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미약한 유혈)
*분량 매우 짧습니다.(주의

 

 

 

 

너의 마지막

 


이와×오이

 


 네가 그걸로 족하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그냥 네 곁에서 너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너를 떠나보내도록 할게. 그게 너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기꺼이.

 "이와쨩."

 그날따라 너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까닭에서일까. 타케루가 괴롭히기라도 한걸까? 너의 미소는 종잡을 수 없이 일그러져갔다. 평소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없었다. 항상 밝은 미소로 맞이하던 네가 없어지고 나니 주변은 조용했다. 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하늘마저 푸른, 맑다 못해 밝은 날이었고, 방학이었지만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옅게 흩어지는 구름은 애처롭게 하늘을 누비고 다녔다. 너의 마음속에 떠다니는, 불필요한 여러 생각처럼.

 너의 그 표정을 본 순간, 장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표정이 왜 그래. 너의 낯빛은 차차 어두워지더니 흐릿하게 일그러지다 못해 구겨지듯 어두워졌다.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던 순간에, 너는 그 깊고 깊은 근심의 파도에 휩쓸려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무런 발버둥조차도 치지 않고 고요히 가라앉고 있었다.

 "있지. 나, 이번 여행은 못 갈 것 같아."
 "왜?"
 "음, 갈 곳이 생겼거든."

 고 3 겨울방학. 우리는 모든 것을 마주했고 흘러 보냈다. 인터하이가 끝난 3학년들은 별 필요 없는 것에 불과했던가. 인터하이 후, 그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후, 너는 부활동에 나가지 않았다. 한편으로 조금 편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지만, 여전히 너의 얼굴은 일그러짐의 연속이어서 차마 너를 그냥 둘 순 없었다.
 그래서 너의 기분도 전환시킬 겸, 무작정 우리끼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그것마저도 따라주지 않는다. 부모님도 따라오지 않는 배낭여행이라 둘이서 재밌게 놀다올 수 있겠다고 밝게 웃던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조그마한 행복마저도 너에게 전해줄 수 없었던 걸까. 신은 무정하다. 너의 사랑을 앗아간 그 신에게, 되려 너를 증오하는 투로 내뱉는다. 그것은 너를 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너에게로 날아간다. 마치 모든 게 네 탓인 것처럼.

 "그래도, 그 뭐냐.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고. 그거, 미룰 수 없는 거냐?"
 "응. 미안."

 너의 표정이 꽤 심각했기에 나는 아무 말도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행기 티켓을 엄마들의 여행을 위해 각자 집에다 가져다 드렸고, 두 분은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의 기간 동안같이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생겼다. 그것이 우연일지라도 너는 꽤나 기뻐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이 메말라 갈라지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오이카와, 너 어디 아프냐?"
 "가까이 오지 마, 이와쨩."
 "피, 피가 나는데."
 "이 정도 피는 괜찮아. 심각한 거 아냐."

 병원이라도 가자. 하지만 너는 괜찮다며 계속 거부했다. 너의 아픔은, 전이되지 않았다. 네가 아프면 그건 반드시 마음속으로 공유될 터인데. 너는 아픔을 나누려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병을 끌고 간다. 그것마저도 조금 의지하고 기대면 좋으련만. 가기 싫다는 너를 억센 손으로 잡아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에 너는 말을 건넸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한 표정으로 그 아슬아슬한 절벽을 떨어질까, 고민하고 있었다. 병의 진전도 없었지만, 완치의 진척도 보이지 않았다. 너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대었던 머리를 떼어냈고, 지긋이 바라보던 그 눈빛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런 너를 보면서도 서로 안으며 울어주는 것 밖에 못한다는 게 슬프다. 눈물은 너의 두 볼을 타고 흘렀다. 너의 것인지도 모를 액체가 서로의 얼굴로 떨어져 부둥켜안던 너의 표정이 아릿했다. 너는 곧 죽는다.

 "의사가 말하는데, 곧 죽을 거래."

 죽는다는 말이 무덤덤하게 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 너의 최후를 맞이하는 걸 보는 건 고통스러우나, 최후의 마지막은 함께해주고 싶었다.

 "안 죽어."
 "우리 여행도 못 갔는데. 그거 졸업여행이 아니라 신혼여행이었다?"

 농담조로 내뱉었지만 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너는 반응을 보더니 조금 난감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넌 남자라도 상관없어?"
 "너라면, 괜찮아."
 "그럼 결혼 할래? 아, 그건 이와쨩한테 너무 가혹하려나."
 "결혼 하고 싶어?"
 "응."

 너는 밝게 미소 지었다. 그것이 너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되는 마냥,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너의 미소가 애처롭게 아른거렸다.

 "여자랑 안 해도 되는 거야? 나랑 해도 괜찮아? 분명 남자라서 딱딱하기만 하고 재미 없을 텐데."
 "이와쨩. 난 이와쨩이 좋으니까 상관없어. 네가 남자인 것도 관계없고, 그리고 난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한 순간에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너의 그 한마디는 눈물이 흐르게 했다. 죽음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결혼은 축복할 만한 일이었다. 그걸 동시에 하겠다는 건, 모순이 있었다. 죽음은 결코 축복할 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너를 떠나보낼 수 없었지만 너는 이미 마음을 전부 저승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그저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몸만을 남겨 둔 것 같았다. 그 마지막을 죽음으로 맞이하지 않고, 결혼으로 축복받으며.

 "그래. 어디서 하고 싶어?"
 "결혼식이라고 거창한 것도 필요 없어. 그냥, 사랑한다고만 말해줘."
 "사랑해."
 "이와쨩, 한 번만 더."
 "사랑해, 오이카와."
 "고마워 이와쨩."

 아스라이 흩어지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지막은 부디 평온하게 갈 수 있기를, 너의 손을 잡으며 기도했다. 이아쨩. 너의 입술이 미약하게나마 떨리며 부여잡고 있던 너의 손에 마지막 힘이 들어갔다.

 "응. 응. 오이카와. 흡, 왜 그래, 응?"
 "으, 이아쨔앙, 사랑해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너의 손에선 힘이 빠져나갔다. 너는 죽었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너의 손을 매만졌다. 마지막은 아직 인데, 아직 너를 떠나보내지 못했는데. 눈물이 너의 손을 타고 흐른다. 아직까지 온기가 남은 손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마지막은 서로의 축복을 받으며 일그러졌다. 물론 너는 일그러지지 않았다. 손마저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너의 모습은 오히려 더 평온해 보였다.
죽은 건 너인데, 되려 일그러지는 건 네가 아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심장이 차차 멎어 들어간다. 너의 마지막을 맞이하며, 너를 떠나보냈다. 부디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길 빌며.

 


 안녕, 토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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