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네임버스 AU

 

다이×스가

 

 옅어져 간다는 의미는, 사라진다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내 손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지는, 몇 일 되지 않았다. 아직 그럴싸한 변화도 없었기에 고작 그게 끝인가, 싶었다. 연하다 못해 거의 보이지도 않는, 어쩌다 짓눌려 만들어진 어설픈 자국같이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확연히 피부색과 차이가 나긴 했지만, 선명하다기 보단, 흐릿하다. 나는 이름이 새겨진 왼쪽 손등을 매만지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선명하게 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혹여나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은거라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몇 일 전만 해도, 이런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 아님,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그럴일은 없다. 적어도 나는 3년간 그를 짝사랑해왔으니.
 다이치는 연습시합을 끝내고 벤치로 들어왔다. 시미즈가 다이치에게 물통을 건네주고, 노란 물병을 받은 그는 물병을 입에 물고선 제게로 다가온다. 여전히 확신에 찬 얼굴이다. 오늘에는 꼭, 고백을 하고야 말겠다는. 그런.
 그가 제 옆에 물병을 놓아두고선, 앉아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손은 먼저 이끌려 나갔고, 다이치는 묵묵히 제 손을 잡아끌었다. 일으켜 세우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끌려가듯이 그의 품에 폭하고 안겼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척, 실은 얼굴을 붉히면서-보이진 않았지만-제게 귓속말로 말했다.

 "조금 있다가, 애들 연습하는 동안에 체육관 뒷 쪽으로 와."

 그건, 고백을 준비하기 위한 첫 한마디 였을까, 아님 허물 뿐이던 제 이름을 그의 몸에서 없어지게 할 구실이었을까. 그는 제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몇분 뒤, 다른 애들이 연습하는 틈을 타서 체욱관 뒷 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그가 제게 이별을 통보한다거나, 그의 손에 새겨진 이름이 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정확히 그의 손에 새겨진 이름은 분명히 제 것이었으며, 제 손등에 새겨진 이름도 분명 그의 이름이었다. 그럼, 고백인데.

 "스가."
 "으응?"
 "이거. 네 이름이야. 어쩌지?"

 그의 말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그에게 먼저 고백해 차인다면, 더더욱 상처로 남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3년간의 짝 사랑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제 손등을 조심히 살펴보니, 점점 더 옅어져 가는 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옅어지는 게 아니라, 없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왼쪽 손등을 매만지며, 다시 그의 이름이 새겨지길, 간절히 바랬으나 다시 선명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스가. 나, 아무래도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
 "그러니까, 그게...사귀자, 스가."

 보란 듯이 선명해지는 그의 이름이 제 손등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의 손에 새겨진 제 이름도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그는 제 이름을 부르며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손을 잡아들어 그의 투박한 손으로 제 손을 매만져 주었으며, 제 손등에 가볍게 입맞추는 걸로 프로포즈를 마무리 했다. 이제는 제가 무언가를 말해야 할 터 였다. 답하기 어렵다면 나중에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 설레는 마음을 그에게 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도.., 좋아해. 3년 전부터 쭉, 좋아했어."
 "3년 전부터?"
 "응. 처음 만난 그 때, 여기. 네 이름이 새겨졌었거든."

 그리고 말 없이 조심스레 안아주는 다이치의 품에 파묻혀 눈물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흘러내리는 상태로,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포근한 품에 파묻혀, 서로의 손을 깍지끼고, 가볍게 입맞추며 사랑을 맹새하는 것 따윈, 제 망상속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사랑을 맹새했다. 어쩌면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라고. 분명 이 다음에 그나 나의 이름이 없어질 정도로 탁해진다면, 그건 아마 변심의 의미일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었을 뿐. 나는 당신의 고백을 듣고, 당신의 손을 잡으며, 당신과 함께 기도한다.
부디, 나의 구원자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사랑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손 끝에서 흘러내린 그것이 제 손등에 안착하자, 밝은 빛으로 물들었다. 옅어지던 색 따위, 신경쓸 게 아니다. 그저 당신과 나의 마음이 같으면 되는 것이므로.
 나는 당신의 이름을 다시 매만진다. 선명한 손 끝의 느낌이, 오른손으로 전이되어 당신을 느낀다. 당신의 오른손과 제 왼손을 마주잡으며, 나는 당신의 앞에서서 미소 짓는다.
 다신 없어지지 않을, 당신의 이름을 손으로 매만지며, 작게 입밖으로 내어본다. 나의 구원자, 사와무라 다이치.

 부디, 나의 구원자가 없어지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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