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여운은 연주회장의 분위기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강하게 젖어드는 미묘한 울림이 귓가에서 일렁였다. 피아노에서 손을 좀체 떼질 않던 리에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사뿐히 들렸다. 어느새 관객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선, 가벼운 손놀림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던 리에프는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다시 대기실로 돌아섰다. 아쉬워 하는 관객들은 리에프를 향해 장미꽃을 날렸으나 리에프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제지하기 바빴다. 그에 한숨을 내뱉는 이들은 야쿠를 포함하여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바 리에프. 일본을 대표하는 러시아 혼혈 피아니스트. 올해 23살, 다수의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개인 공연을 하며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는 중.

 야쿠는 입으로 리에프의 프로필을 줄줄 외우며 대기실을 지나치고 있었다. 오늘에야 말로 리에프를 만나고 말겠다는 강렬한 외침과 더불어 더 이상은 참기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끼얹으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거기, 누구시죠."
 "네에, 관계잡니다만."
 "아,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린 룸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쳇. 아쉬움에 돌아서려고 하니 그린 룸에서 리에프가 튀어나왔다. 아! 저 기럭지 하며 날이 선 반듯한 눈매마저도 매혹적이다 못해 아찔하다. 또, 저렇게 가지런한 손가락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야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넋을 놓은채 리에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팬이신가봐요? 남자 팬은 드문데. 이런 팬서비스라도 괜찮으신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리에프는 야쿠의 손에 가볍게 입맞춘 뒤,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남자에게 손 키스? 먼저 든 생각은 떨리는 손을 주체 할 수 없었던 걸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겠다는 거였고, 그 다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어떻게든 붙잡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리에프에게로 뛰어가다가 그의 몸으로 쓰러질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멈춰섰기에 자신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저 귀한 몸에 흠집하나라도 나면 안 되지, 암. 야쿠는 그래도 자기 몸이 넘어졌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앞에서 리에프의 손이 어른거렸다.

 "괜찮으세요? 뛰어 오길래 멈춰섰는데 넘어지셔서"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급하게 뛰어오시던데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웃으며 물어보는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멎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점차 흩어지는 시선에 리에프가 두개로 나눠졌다. 의식이 점차 무의식으로 전이 될 즈음 고개를 흔들어 제지시켰다. 리에프를 바라보며 정확하게 말했다.

 "저, 팬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알아요. 제 팬이시니까 오신거겠죠?"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네. 저한테 뭐요?"
 "그, 그러니까…."

 직접 그를 대면하고 나니 말을 잇기가 껄끄러웠다. 당신에게 악보를 준 건 나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야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닙니다, 로 짧게 그와의 만남을 끝냈다. 그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야쿠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그 간결한 감정을 거두고는 자신의 팬이라는 남성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선 경호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야쿠도 언젠가는 꼭 다시 그를 만나리라고 다짐하며 짐을 챙기고 작업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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