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애(刻愛)
(부제: 죽을 권리와 살 의무)


 


*나래님 생일 축전))
*마츠×오이(+이와)

 

 

 

 열린 창문 새로 바람이 옅게 불어오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안개가 부옇게 흐려오던 오전이었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눅진하게 스며들었다. 허리 부근이 아프다 못해 아리다.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 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니, 그 전날의 기억이 머릿 속을 어지러이 유영했다. 아슬아슬한 기억속에 그와의 접문이 아릿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결코, 말하건대 그의 키스는 최악이었다.
오늘에야 말로 죽어버릴테다. 각오는 산산히 부서져 그의 입술에 먹혔다. 어젯밤 죽을 각오를 하고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보안 장치에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주변을 가릴 즈음, 제 방으로 찾아와 자고 있는 제 몸을 덮치며 조심스레 키스했다. 입 맞춤은 최악이었다. 혀를 휘감아 오는 그의 입이 제 것을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솔직히 말해, 못한다기 보단 너무 아팠다. 그가 깨문 제 입이 붉게 부어올랐다.

 "오이카와.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리고 그는 방을 나갔다. 잠시의 접문을 끝내고, 밤이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한채로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해가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또한, 제 옷은 갈아입혀져 있는 상태로, 그의 차에 태워져 회사로 가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가 골랐을 수트는 깔끔하게 입혀져 있었고, 그는 유유히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 왔어. 내려."
 "여긴 뭐하러 왔어? 할 일도 없잖아. 유령회사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오늘 거래가 있을거야. 중요한 거래니까, 6층에서 조용히 있어."
 "잠깐 시내에 나가는 건 안 돼? 이와쨩만 잠깐 보고 다시 돌아올..."
 "안 돼."
 "내가 억지로 빠져나간다면?"
 "그땐 사지를 절단해 버릴거야."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들어. 나도 네 사지를 절단하고 싶진 않거든. 아직 제대로 맛도 보지 못했는데 죽어서야 되겠어?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사장실로 향했다. 아마 거래는 회의실에서 이루어질게다. 그는 순순히 뒤를 돌아 회의실로 향했고, 사장실로 가려다가 담배나 한 개비 피우려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 자신을 반긴다. 하늘은 오늘따라 흐릿했다.

 이와쨩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을텐데.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가 떠올랐다. 아마 비흡연자였던 이와이즈미의 호통이 생각났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담배는 냄새도 맡기 싫다며 거부하더니, 결국 이런 상태다. 물론 담배 때문에 떠나간 건 아닐지라도, 매한가지다. 그는 내가 싫었던걸까. 담배 끊기는 좀 힘든데. 그가 깔리는게 아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와쨩은 나를 마츠카와에게 팔아 넘기고 이 빌어먹을 공간을 나갔다. 그의 감시 아래 있었던 그가, 자유를 되찾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라도 이와쨩이 돌아와서 날 데리고 나가겠다고 와준다면, 난 다시 받아줄 의향이 있다. 이와쨩이 싫다고 해도 나는 그를 붙잡고 나갈게다. 그럴러면 제 몸 값을 지불할 -원래는 이와이즈미의 빚이었다- 돈이 있어야겠지. 애인을 팔아먹고 빚을 갚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건, 벌 뿐이다. 마츠카와에게서 벗어난다면, 반드시 그를 만나 그 간의 서러움을 알려주리라.

 무튼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는다 해도 -즉사만 아니라면- 그를 볼 수 있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이다. 가장 바라는 건, 지금 이와쨩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서, 마츠카와가 거래하는 동안에 나를 빼내는 거였다. 하지만 제 기대는 역시나 부서졌다. 정말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속박되어 사는 것보단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게 낫겠다고, 저 괴물같은 남자에게 잡아먹힐 바엔 세상을 등지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생각의 자유도 없는 건가. 그는 거래가 끝났는지 상쾌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이와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허황된 미래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지쳐 쓰러지던 제 손을 잡아 올린 건, 그가 아니었다. 깊은 눈매로 나를 응시하던 남자는, 넘어져 있던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고선, 뒤에서 나를 꽉 끌어 안았다. 그의 품에 폭하니 파묻힌 제 몸부림은 그의 팔에 간단히 제압되었다. 그는 그 단단한 손으로 제 몸을 끌어 올리고선, 파도처럼 잔잔한,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제 귀를 현혹시켰다.

 "놔! 난 죽을거라고! 이거 놔!"
 "토오루."

 그의 어두운 목소리가 제 귓가를 스치고, 그의 손은 제 몸을 더 억죄어 온다. 더듬는 그의 손길이 어딘가 모르게 음습하다. 옅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제 귀에 박혔다. 호탕하게 웃는 것도 아니고, 한숨과 가까운 웃음을 흘겼다.

 "이거..., 놔줘."

 태도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렇게 접근하는게 빠져 나오기 쉬울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편히 죽길 원했다. 나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선뜻 표를 던질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제 가슴을 찔러온다. 곧 비수가 되어 제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넌 못 죽어. 알잖아? 네 몸은 내가 샀으니까, 네가 독단적으로 움질일 수 있는게 아니란 말이다."
 "보스..."

 나는 최대한 애절하게, 비굴하게 나 자신을 낮추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 보는 그 눈빛에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눈에 제가 온전히 파묻히게 된 것이었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거니와 그는 처음으로 -느낌이지만- 내 눈을 정확히 쳐다보고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그의 얼굴이 보였다. 금욕적인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뇌쇄적인 미소를 흘기며 제 본능을 자극했다. 그것은, 수컷 짐승의 구애 같기도 했고, 혹은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발악같기도 했다. 제 몸을 감싸오는 그의 손길이 야릇한 본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의 표정만으로는 이미 모든 걸 끝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미소에 나는 조심히 꼬리를 내리고 위협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대담한 손길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선, 다시 한 번 제 볼에 입을 맞추었다.

 "틀렸어. 난 네 보스가 아니라 애인이지."
 "미친, 당신이 왜 내 애인이야."
 "몸 맞고 마음 맞으면 애인이지. 아직도 그 녀석한테 미련을 가지고 있는거야? 널 버리고 떠난 놈인데도?"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그런 뜻으로 나간게 아닌데. 분명 그는 다시 돌아올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을 그는 단 3초의 정적으로 깨뜨려 주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어느새 바람결에 흩날려온 마냥 다시 스치듯 흘러갔다. 그가 팔을 느슨하게 풀려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어떻게든 안간힘을 썼고, 몸은 빠져나왔을지언정 마지막에 붙잡힌 손목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어오른 손목이 아릿했다. 더 세게 쥐어오는 탓에 통증은 더 심해졌다. 점점더 그의 손이 제 것을 쥐고 억죄어 왔다.
나는 있는 힘껏 발악을 했다. 그의 표정이 약간 험악해 졌음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당신의 그 잘난 손에 붙잡혀 총으로 맞고 칼로 난도질 당해 처참히 생을 마감하고픈 마음은 없다. 적어도 생의 마지막을 그런식으로 끝낼수는 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와의 언쟁이 점차 심해지다 못해 극에 다다랐다. 제 목소리는 여전히 공기를 갈랐지만, 그는 평소와 같이 고요한 울림이었다. 나는 목이 쉴 정도로 외치며 제 의사를 밝혔다. 그에게는 편치 않는 짐승의 포효와 별반 다를게 없었겠지만.

 "그에게 보내주지 않으려면, 그냥 죽는게 나아! 이거 놔! 죽을거라고!"
 "오이카와, 못 들은거야? 네 몸은 내가 샀다니까. 당신은 죽더라도 내가 죽여, 알겠어?"

 잠시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죽는 것도 저 괴물에게 맡겨야 한다니. 잠시 치가 떨리는 제안이엇지만, 고통스럽게 죽기보단 즉시하는게 낫겠다. 총으로 한 방에 죽여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마피아를 앞에 두고 죽겠다고 난리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죽여달라면 편히 보내줄텐데,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일을 만들어?"
 뭐, 부탁해도 안 들어 줄거지만. 섬뜩하게 웃는 녀석의 낯빛이 반질거렸다. 그는 제 손을 다시 잡으며 세게 쥐었다. 잇새로 신음이 튀어나가자, 그는 의아한 듯 제 손목을 들어 살펴보았다.

 "윽."
 "손목? 많이 부었네."

 그는 제 손을 확인 하고선 앞으로 안아들었다. 졸지에 공주님 안기 꼴이 됐지만, 몸이 들리니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손목 삔 것 뿐인데. 굳이 이렇게..."
 "걷다가 다리까지 삘지 누가 알아?"

 옥상에서 내려와 사장실로 들어갈 때 까지 나는 그에게 안겨 있어야 했다. 그는 서랍에서 붕대와 약품등을 들고와선 제 손목을 둘러 감쌌다. 얌전히 6층에 있으라던 그의 말을 안 들은게 잘못이었다. 왜 굳이 옥상에 올라가서 이런 몹쓸 꼴을 보이다니, 과거의 내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그는 조심스레 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이카와, 사랑한다."

 그러니까 죽으려고 하지마. 그건 결코 당신이 정부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의 말처럼, 나도 당신을 어쩌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백하게 새겨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강압적인 느낌의 언어였다. 억지로 새겨진 사랑을 다시 훑으며, 당신은 다시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가볍게 입 맞추며 조심스레 사랑을 새긴다. 사랑이란 이질적이고도 모순적인 감정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르는 제 감정을 드러내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인다.

 

각애(죽을 권리와 살 의무)_Fin.

 

 

 

+(설정)
-마츠카와 잇세이 : 마피아 보스. 현재 회사 운영 중. 회사라 해도 허물만 회사일 뿐, 실제로 없는 유령회사. 무기상이며 마약거래도 함.
-오이카와 토오루: 회사원이었으나 애인이었던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오이카와를 마피아 보스에게 파는 바람에 마츠카와네 저택에서 살게됨.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데리러 올거라 믿고 있음.
-이와이즈미 하지메: 마츠카와에게 빚이 있음. 그래서 오이카와를 대신 팔아넘김.

 

-

본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늦어지더라도 감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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