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옆집 테라스에서는 담배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하얗게 물들어간 연기 한 송이가 거무죽죽한 공기를 가른다. 네온사인이 붉게 물든 도시 한 가운데의 아파트에서, 작게 마련된 공간이 테라스가 아니던가. 요즘 매번 기침을 달고 사는 것도 그 남자 때문이 아닐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테라스에 있는 작은 선반 위에 라이터와 담배를 놔두고 다녔는데, 그 선반은 제 집에서 닿을 수 있는 거리라서 혹여나 그가 나갔을 때 슬쩍 빼오면 안될까 생각도 해봤다. 옆집이라 그런지 붙어있는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테라스가 아주 가까이 붙어있었다. 정 안되면 넘어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하지만 매번 제 인기척에 그는 테라스로 나왔으므로, 재빨리 뺏아올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을 뿐더러 빼앗아 온다 하더라도 그는 아마 다시 담배를 사러 앞의 편의점에 갔다 왔을테다.
 담배피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제가 나와있을 때 만큼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그는 항상 제가 밖에 있는 시간을 노려 조심스레 나와선 능청스레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선 보란듯이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뻑뻑 피워댄다. 제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표정 하나 까딱없이 그저 슬며시 웃으며 저를 마주할 뿐이었다.
 몇 일 이야기 하다보니 그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알게되었다. 하이바 리에프. 나이는 28살. 제 나이보다 딱 2살 어렸다. 회사는 이 근처 어디. 우연인가? 제 회사와 가까운 것 같았다.
 옆집인데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제 쪽이 아니라 그 남자였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건넸다. 제 테라스로 넘어온 길쭉한 손이 어른거렸다. 제가 그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어서 악수하자며 재촉했다. 그는 미묘한 미소를 흘기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이 연기를 흩날렸다. 그가 피던 담배 연기가 제 쪽으로 날라오자 갑작스런 상황에 콧속으로 들어온 텁텁한 담배향기가 목을 간질였다. 재채기가 튀어나오고, 옆에선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서 제 테라스로 넘어오려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급히 그를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혹시 어디 안 좋으신건 아님까.
 -호흡기가 좀 안 좋을 뿐입니다. 담배도 조금 힘들고요.

 그가 언젠가 제게 담배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거부했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뻑뻑대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불과 사흘 전인데. 굳이 그 사람에게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하며 제가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다른 때에도 정말 안 피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요즘들어 그의 곁에서 나는 냄새는 담배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질이 나쁜 냄새였다. 싸구려 향수 냄새, 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독한 꽃의 향기가 코 근처를 간질였다. 직접적인 불쾌함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의 몸에서 나던 담배냄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 나쁜 냄새에 대한 출처는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
   
 -있잖아요, 그 쪽, 애인있슴까?
 -없어.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귀여워서. 그의 잇새로 튀어나온 그 단어에 움찔 반응하더니 뒤로 물러나자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제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다시 말을 건네기 까진, 조금 힘겹게 대꾸한 탓도 있을테다.

 -그럼, 너는?
 -저 말임까? 음, 애인은 없는데. 신경쓰이는 사람은 있슴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작고 귀여운 사람임다. 부드럽고, 고운.

 아마 그 싸구려 향수의 주인공인 듯했다. 작은 여자가 취향이라니. 역시 자신의 성향과는 반대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쓴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선,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도 조금있다가 이내 추위를 느끼며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몇 일 후에 그를 봤을 땐,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피폐해진 얼굴과, 녹아내린 다크서클, 수척해진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다. 테라스에는 이제 담배가 아닌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너 뭐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거야, 대체!
 -머리가 너무 아픔다.
 -무슨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지 않아서여.
 -아아, 연애문제? 그 때 작고 귀엽다는 그 사람?
 -예.

 이거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저 남자는 뭘했길래 아직까지도 고백을 못한걸까. 그냥 남자답게 저질러버려! 하고 조언해 주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여자는 네가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
 -아, 그 여자. 모르겠죠 아마.
 -그럼 그냥 남자답게 해버려! 뭘 고민하고 앉아있어.
 -그 사람은 나보다 너무 여려서 부서질지도 모르겠거든여.

 그게 당신이란 걸 왜 몰라. 그 남자의 입이 뭐라 중얼거리긴 했으나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를 토닥이며 술은 그만 마시라는 충고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다. 20대의 연애란 좋구나.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선 찬 바람을 느끼며 밤을 보냈다. 

 이틀 후, 그의 얼굴은 좀 나아진 듯 했으나, 끈적하게 달라붙어오는 그 시선은 어딘가 불순한 것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 여자랑은 어떻게 잘 되고 있어?
 -예? 잘 모르겠슴다. 아직도 못 물어봐서.
 -답답하네. 나 같으면 바로 물어볼텐데. 20대면 좀 더 불꽃같은 연애를 즐겨야 하지 않나? 왜 그렇게 고민해. 그 여자가 너 싫대?
 -모르겠슴다. 연상이라서 대하기도 힘들고.
 -아, 연상.

 연상의 여자라. 너도 취향한번 독특하다. 적어도 29. 아님 30대라는 얘긴데. 그 정도 나이면 연하나 만나고 있을 시간은 없을텐데. 그래도 저런 남자면 만나볼 가치는 있겠지.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그 여자의 생각일테니.

 -그래도 술은 그만마셔. 몇 일째 술만 마시고 있잖아.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한 병만, 당신이랑 마시면 안될까여.
 -여기서? 그래, 그럼.

 그러더니 그가 조심스레 들고 나온 건, 와인잔 두개와 비싸보이는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자주빛의 액체가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그의 것을 따라주고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건 남자에여.
 -뭐라고?
 -그렇다고 하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시겠죠?
 -아니.

 별로. 취향이란 건 다 다른거니까. 제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좀 밝은 얼굴로 저를 마주했다. 헌데 그것이 조금 이상한 것이 그의 끈적한 시선이 달라붙었을 뿐더러 와인을 놓고 테라스 사이에 붙어오던 그의 손을 느꼈기 때문일게다.
 그의 입술이 제 것을 향해 다가왔다. 혀가 밀고 들어오던 끈적한 느낌에 그는 혀 끝으로 제 입천장을 쓸어내리더니,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옆 선반에 잠시 내려놓고 제 머리를 끌어당겼다. 강하게 얽혀드는 그의 혀가 축축하게 서로의 것을 쓰다듬었다.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그의 혀에 농락당해야 했다. 야릇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은 초조함에 잠겨있었다. 매만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애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서성이는 제 혀도 그러했다.
 그의 입에선 담배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달콤한 향이 났다. 사탕인가. 거기에 약간 붉게 상기된 눈도 뭔가 귀엽게 보이고. 오히려 이상한 건, 제가 이 상황에 저 남자랑 왜 키스를 했냐는 것인데.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저 사실 당신을 좋아함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때 부터. 저 싫어졌겠죠?
 -아니.
 -저 그럼 당신한테 고백해도 되나여. 제 방식대로, 야쿠 상이 말했던 것 처럼 남자답게.

 그렇게 우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자연스레 넘어가는 의식의 흐름이 무의식을 덮칠 때 즈음, 우리는 테라스에서 달콤한 키스를 하고 있을게다. 그것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거나,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매만지고, 그는 상체를 굽혀 제 입술에 살며시 입맞출게다.
 서로의 거리는 그렇게 짧았다. 하지만 인연은 길었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 나는 당신과 나의 입술이 닿는 거리를 알고 있다. 그것은 거의 닿을것 같으면서도 애절하게 멀어져가서 당신이 나를 꽉 붙잡아 주었기에 제가 닿을 수 있었다는 걸. 당신은 과연 알까.

'HQ!! > 네코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에야쿠] 웨딩화보  (0) 2016.10.09
[리에야쿠] 선율의 애로사항 (1)  (0) 2016.09.25
[쿠로켄] 애증의 모순  (0) 2016.09.25
[리에야쿠] 흔적  (0) 2016.08.02
[쿠로켄] 약속  (0) 2016.07.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