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버스AU


2. 리에야쿠


리에프, 그 글자가 제 목부근에 새겨지기에는, 그닥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녀석이 배구부에 들어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는, 어쩌면 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드레스 룸의 벽에 달린, 전면거울을 바라보며 목 부근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선명하게 새겨진 그의 이름이, 어딘가 멀게 느껴진다. 목이라기엔 조금 애매한, 오히려 턱부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에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었다. 고개를 젖히면 적나라 하게 그의 이름이 드러나기에 나는 최대한 가릴 수 있는대로 가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여름에 목부근을 감싸는 짓은, 더위 때문에라도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반창고로 가리고 말지.

방학이랍시고 아침부터 나와 배구 연습이나 하고 있는 3학년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더위는 한껏 내리쬐는 햇살너머로 숨어버려, 욕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건장한 남고생들 사이로 들어서며, 한숨을 내뱉었다. 더위에 찌들린 이들이 제게 시선을 돌린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돌아가는 눈들이 삐걱대며 제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로 시선을 돌린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바라봐?"
"야쿠, 결국 그렇고 그런거 한거야? 그 녀석도 너무한걸."
"뭘 했다는거야?"
"모르는 척 하지마. 리에프한테 다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뭘. 나는 갑작스레 던져오는 그들의 희롱과도 같은 말투에 의아해하는 기척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채로 다른 이들에게 여러 번의 같은 물음을 반복했으나 다들 발뺌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제가 풀리지 않은 의문에 신경쓰고 있을 즈음, 이 문제의 제공자인 리에프가 부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심까! 저 오늘은 안 늦게...엣, 왜 그러심까?"
"리에프. 너 얘들한테 대체 뭘 말한거야?"
"그건.., 말 못함다! 애초에 아무말도 안 했.., 야쿠 선배."
"어,어. 왜?"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따지듯 물어오자 평소와는 다른 냉담함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는 제 목을 빤히 응시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반창고를 떼기위해 그 긴 손을 쭉 뻗었고, 잠시 당황한 나는 애써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누구에여, 그거."
"뭐, 뭐가."
"선배, 누구랑 잤어요? 쿠로 상? 카이 상? 아님, 제가 모르는 외간 남자랑 바람이라도 난거에여?"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무짓도 안했..!"

점차 언성이 높아지자 보다못한 쿠로오가 야쿠의 입을 막았고, 타케토라는 리에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쿠로오를 바라보자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휘적휘적 젓기에 정강이를 한 대 차주고선, 켄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없을 때 쟤가 무슨 이야기라도 했어? 그러자 약간 수긍하듯 켄마가 고개를 살짝이 끄덕였다.

"뭐.., 했을지도."

대답이 조금 시원치 못했다. 아쉽지만 쿠로오에게라도 뭔가를 물어봐야 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아마 아저씨의 능글맞은 대답 뿐이겠지만, 어중간한 대답보다는 아마 나을게다.

"쿠로오. 저 녀석이 뭔가 말한거야? 나 없는 동안?"

"음, 그렇다고 해두지. 하지만! 리에프가 뭘 말했는지 직접 생각해 보도록! 쿠로오 상은 부끄러워서 그런거 입 밖으로 못 내뱉는답니다. 이래봬도 순수하거든, 은근."
"전혀."
"리에프가 뭐라 했냐면.., 음...뭘 하겠다고 하던데."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우리들끼리 추측이었지. 너네 둘이서 그런 짓을 했을거라는 망상.

결국 네 놈들 탓이잖아. 나는 다시 쿠로오를 장난스레 걷어차며, 리에프에게로 다가갔다. 아직까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이, 리에프."
"야쿠선배."

타케토라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체육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둘의 뒤에서 체육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으나 여전히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당당히 그에게 다가가 마주섰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딘가 매서웠다.

"이거, 누구 자국이에여? 그 새를 못 참고 다른 남자랑 한...!"
"네 이름."

나는 조심스레 붙어져 있는 반창고를 떼어냈다. 선명하게 드러난 그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제 목에 얼굴을 들이 밀더니 가볍게 키스했다.

"선배가 바람핀 줄 알았어여. 아직 내 꺼도 안 들어갔는데. 이름, 오늘 생긴거에여? 지금 막 손가락 갖다 댔는데 찌릿찌릿거려여. 선배, 안아도 돼여?"
"안 돼."
"에엣, 안게 해주세여!"
"지금 말고 나중에. 우리 집에서."

귓속말로 속삭이자 그의 얼굴이 새빨게 지더니, 조용히 네,하고 대답하고선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귀여우니까 오늘은 봐준다. 그를 뒤 따라 들어가며 나중을 기약하고, 그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서투를지도 모르는 그대, 하이바 리에프.

부디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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