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네임버스 AU

 

쿠로×츠키

 

 절대 지워지지 않는 흔적,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그 흔적을 덮었다.
 쿠로오 상은 성인이 되었다. 원래도 만날 일이 그닥 없었으나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 소식 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방학이 되자마자 대학을 뛰쳐나온 쿠로오 상은 도쿄에서 곧장 미야기로 달려왔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아직 방학기간이 아니었고, 쿠로오 상은 저녁 연습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제가 저녁 연습을 끝나고 체육관에서 나올 즈음, 그는 학교 교문에서 나를 발견 하고선 달려오다시피 했다. 그가 팔을 벌려 제 몸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조금, 차가웠다.
 그는 나를 마주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해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쿠로오 상이 한 손으로 제 두 손을 마주 잡고, 나머지 한 손을 제게 들이 밀면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건, 그의 손에 새겨진 제 이름이었다. 선명하게 그의 손에 적혀있는 제 이름을 황망히 바라보며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게...뭐..,"
 "네 이름. 사랑한다는 증거야."
 "하지만, 저는 안 생겼는데요..?"
 "네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 생겼을지도 모르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제 팔에 조금 소름이 돋긴 했지만, 그의 차가운 손길에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게 맞을테다.

 "바로 가실거에요?"
 "음...,아니."
 "괜찮다면 저희 집에 오실래요..?"
 "아니야. 괜히 신세 질 필요는 없지. 다이치네 자취방에서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걱정마."

 당신은 나를 다시 한 번 꽉 안아주더니 곧장 제 몸을 이끌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한 여름인데도 바람이 불었다. 허나, 상쾌하지 않은, 텁텁하고 더운 바람이었다. 거기다가 더위에 습기까지 한데 뭉쳐 불어오니 짜증은 배로 커졌다.
 그런 바람을 맞으며 그의 손에 붙잡힌 채로 집으로 가야했다. 집 문을 열고 그를 밀어넣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탓이다.
 그는 나를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선, 아무 미련도 없이 돌아서서 다이치 선배네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 마지막엔, 살며시 입을 맞춰주고 내일 보자는 달콤한 말을 지껄이긴 했지만, 나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그의 이름은 마치 암흑과도 같아서, 혹여 제가 지니고 있다가는 제 빛이 사그라 들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물론, 착오일 뿐이다. 그를 굳이 색으로 말하자면, 흰색, 순수하다 못해 이질적이다. 본성이 순수하다기 보단, 아껴주고, 지켜주려 하는 그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순수하다는 건 전부 애들 장난 일뿐. 오히려 좀 더 대담한 남자였음 좋았을테다. 가령 빨간 성인책을 관심 독서로 두고, 어김없이 성욕을 내뿜는 그런, 파렴치한 남자였을지라도. 아님 그의 이름처럼, 어둠에 잠식되어 나를 타락시켜 줄 그런 남자도 어쩌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가 나를 붙잡았을 적에,그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 같은 그런- 제 몰골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졌는지도 기억한다. 한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 입꼬리는 비죽 올려 냉소를 지으며,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제 표정을 본 그는, 공원에서 자살하려던 제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실은, 죽으려던 건 아니었다. 때 마침, 커터 칼을 들고 있었고,-죽을지 말지에 대한 갈등이었다-표정은, 원래 제 얼굴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는 단단히 오해를 했는지 제게 달려와선 커터 칼을 빼앗았다. 나는 당신의 눈빛이 그토록 빛나던 금빛이었는지는 그 날 처음 알았던 사실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제 몸에 새겨질 법도 한데, 야속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커녕 흔적조차도 없다. 그는 나를 괜찮다고 타일렀으나 나는 불안하다. 어쩌면, 당신과의 관계가 쉽게 부서질 수도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쿠로오 상.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 것도 안 생기는.."
 "케이. 넌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나 또한 그래. 그리고, 넌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몸에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서 안 생길 수도 있는거라니까. 걱정하지마. 난 네 몸에 내 이름이 안 생겨도 안 떠날테니까."
 "다른 사람 이름이 새겨지면..."
 "와, 지금 네 입으로 바람피겠다고 한거야? 케이, 너무한데. 쿠로오 상 조금 상처받았을지도."
 "그런거 아닙니다! 그저, 걱정이 되서.."
 "난 너 좋아하니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그가 제 이마에 가볍게 버드키스를 했다. 옅게 붙었다 떨어지는 그의 입술이 붉게 물든다. 사랑에 빠져있는 남자는, 기분이 좋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걱정스럽다.

 "정 걱정되면 내가 새겨줄게. 성인 되면. 아직은 아냐. 네 어설픈 요구 때문에 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있는 수고는 너도 싫겠지? 아직은 아냐."

 미성년자 강간하면 잡혀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의 이질적인 말소리가 흩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나 이미 식어버린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탓에 그 와의 거리는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게요. 늦어서 형이랑 엄마가 걱정하거든요."
 "그래? 안녕. 내일 봐, 케이. 내 꿈 꾸는거 잊지말고."

 그는 다시 버드키스로 제 볼에 한 번 부딪히더니, 그대로 제가 가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고, 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내일 쯤이면 제 몸에 당신의 흔적, 당신의 존재가 각인 되어 있길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핏기가 가신 창백한 손목에 칼날을 대자 붉은 선혈이 송글송글 맺혀나왔다. 나는 조심히 당신의 이름을 새겼다. 어쩌면 흉터로 남을테지만, 난 당신을 제 첫번째 흉터로 남겨 놓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일 쯤이면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놀라 경악할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핏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당신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느낌-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상처 또한 마다 않으리라. 나는 비릿한 미소를 흘겼다.

 조금 흐릿한 하늘과 당신의 표정이 일치하는 걸 보니, 본의아니게 그는 제 상처를 알아차린 듯 했다. 그는 점점 험악해진 표정으로 제 눈을 응시하더니, 곧이어 그 시선을 제 손목으로 옮겼다. 손목에는, 핏자국으로 선명해진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

 "이거 봐요, 당신 이름이야."
 "케이. 이런 건..."
 "이제 당신하고 나는 이어진거야. 그렇죠? 내 몸에 당신이 있으니까, 나만 봐요. 네? 테츠로...상."

 당신만 있으면 돼. 내 몸에 새겨질 모든 흉터는, 당신의 것이야. 그러니까, 날 안아요. 테츠로 상.

 "사랑해요, 테츠로 상."

 나는 조심스레 그를 안았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그의 떨림이 조금 크게 느껴졌으나, 곧 그것도 무뎌졌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잖아?

 나는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요. 내 몸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건 선명하다 못해 타들어가는 붉은 흉터처럼 남았고, 그것은 아주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겨져있어서, 어쩌면 당신이 찾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요. 지금은 당신을 사랑할지언정, 그 흔적은 쉽게 지워지는 흉터가 아니야. 당신이 부디 그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에, 당신의 이름은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싶어서, 핏물로 당신의 이름을 새겼지만 아프진 않아. 괜찮으니까, 아무 말 없이 안아주세요.
 아무리 당신을 사랑할지라도, 내 몸엔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입으로 나마 당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 쿠로오 테츠로.

 부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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