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에서 핏물이 떨어질 때면 내 온갖 신경이 마구 치솟아 오르면서 막, 막 이상한 감정이 차올라."

 당신이 제게 했던 말은 어느새 찢어진 붉은 입술에 먹혀 짙게 터져나오는 호흡에 갈라졌다. 그는 제게서 얻어내려고 하는 게 적지 않았으나 이토록 어이없게 단번에 저를 잡아먹으려 했던가? 그의 손길이 제 턱선을 따라 가슴 팍으로 내려가더니 어느새 허리에 다다랐다. 그는 끈적한 손길로 제 허리를 감싸더니 또 다시 제 목부근에 머리를 박고선 흐르는 핏물을 조심스레 핥아먹고 있었다.

 "당신 피는 야해서 좋아. 최근에 먹은 피 중에 당신 게 제일 좋았단 말이지."
 "잔말말고, 빨리 드시고 꺼지시죠."
 "너무 야박하네. 말했잖아. 이제 당신 피 말고는 먹을 피가 없다고. 다른 피는 다 더러워 보여서 말이지."
 "그냥 저를 죽이시고 피나 실컷 먹으신 뒤에 버리시는게,"
 "너를? 너를 죽이란 말이야? 대체 왜? 몇 일만 쉬면 새로운 피가 샘솟을 텐데, 내가 뭘 위해서 그래야하지? 한 순간의 행복을 위해 내가 당신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님 말고요."

 당신은 아마 제 피가 탐나기 때문에 내 곁에 머무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갈 곳 없는 나를 붙잡아 집을 내어주었고, 음식도 건네주었다. 나는 당신에게 피를 내어주는 것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는 꽤나 친절했다. 고작 피를 먹겠다고 충분한 음식을 매일 내어준다든가, 다정하게 제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의 행동은 오히려 연인같이 보이기도 했다. 정작 그는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지만.

 "저기요, 뱀파이어 씨?"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몰랐다. 딱히 대체할 호칭도 찾지 못했기에 뱀파이어라 불렀다. 언젠가 그가 이 곳을 비우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이 빌어먹을 저택을 빠져나가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주 동안 그는 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꼼짝없이 뱀파이어에게 잡혀있어야 했다.

 "왜 그러지? 부탁이라도 있는건가?"
 "그건 아니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있어야 하죠?"
 "아, 밖에 나가고 싶은건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훑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였기에 그가 뭐라 하는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으므로, 안타깝지만 접어두는게 나을 듯 싶었다.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그럼?"
 "오늘이 몇 일이죠?"
 "9월 25일."

 예?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9월 25일이면 그를 처음 골목에서 마주했을 때와 같은 날짜였다. 혹여 1년이 지난 건지 물어봤으나 확실히 그 날이었다. 시간이 멈춰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는 이 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다. 여전히 그는 허기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일그러지던 제 얼굴을 보던 그의 표정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번졌다. 그러더니 양껏 걱정을 껴안은 제 양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기에 앞서, 그의 입술이 움직거리는 종착지를 찾아가니 더 이상 놀랄 수는 없었다.

 "거짓말이야. 뭐 그리 실망해? 오늘 당신이 들어오고 나서 딱 2주 지났어."
 "그, 그렇습니까."

 농담은 되도록 하지 말아주시죠. 당하는 나는 심장 떨리니까. 또 얼굴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심장에 무리가 갈만한 외모라서 계속 제 심장은 열심히 뛰고 있다. 냉철한 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능글맞게 대꾸하고 있지만.

 "당신, 근데 내 이름 안 궁금해?"

 왜 안 물어보는거야? 그는 귓가에 대고 제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별로. 피만 주다가 나갈꺼니까요."
 "아냐, 기억해두는 게 좋아. 당신이 언제고 나를 마음 속으로 기억할 때마다 이름을 부른다면, 그 때라도 나는 당신을 이 저택으로 다시 데리고 올 생각이거든."

 당신도 아마 내가 그리워질껄? 능글맞게 웃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하자 그는 제 몸을 벽 쪽으로 밀치고선, 또 다시 입을 맞춰왔다. 평소보다도 더 격렬한 키스였다. 어쩌면 그간 했던 접문 중에서도 가장 여운이 길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터진 입술에서 비릿한 피맛이 감돌았다. 그는 제 피를 보고도 달려들지 않았다.

 "마츠카와 잇세이.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그럼, 잘가. 오이카와."

 그는 미련 없이 제 몸을 문 밖으로 밀쳐냈다. 눈을 뜨니 전에 그와 만났던 골목이었다. 휴대폰 액정이 나타내고 있는 시간은 오후 9시. 날짜는, 9월 25일이었다. 한 순간에 몰려드는 무력감과 황당함이 머릿속으로 가득차고 있을 즈음, 그의 이름이 생각났다.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 감정도 들지도 않았고, 어떤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그냥 매정하게 말하자면 허상이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어. 언제까지고 나는 당신과 아무런 연이 없는 평범한 인간일테고, 당신은 그저 잠시 내가 골목에서 빈혈이 나서 까무룩 쓰러진 차에 제 꿈 속에 나타난 무의식일 뿐이다. 난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언젠가 내가 당신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다시 만날 마음은 없는거야.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버리는 사람하고는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츠카와를 다시 본 건, 그로 부터 이틀 후였다.



 "오이카와?"
 "으음, 누구?"

 깨어나보니 그의 저택 안이었다. 마츠카와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어쩌면 환청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잠들려고 했으나 맞닿아오는 그의 손길에 이는 꿈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의 선명한 숨소리가 제 귓가로 파고 들고 있었다. 얼굴을 제 목에 파묻은채로 짐승처럼 피를 갈망하다가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푹, 이를 박았다.
 피가 흐르는 감촉에 그의 머리를 끌어 안고선 고통을 내뱉었다. 어느새 노곤해진 몸은 그의 손이 지탱하고 있었고, 그는 제 몸을 잡아선 침대에 다시 눕혀주었다.

 "봐. 넌 다시 올거라고 했지? 이제 벗어날 수 없어."
 "이건 꿈입니다. 그래 이건 꿈이겠지."
 "꿈? 꿈 같은 소리 하네. 넌 이제 내 품에서 못 벗어나, 오이카와."

 저렇게 말하는 재수없는 놈에게 화가 나야하는게 분명한데 피를 빨려서 그런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아, 나는 탄식했다. 그의 몸을 껴안으며, 피의 저주에 잠식되어가면서. 점차 감정의 몰락에 처연히 대처하며.

 감정회로의 손상이 일어났다. 억지로 맞지 않는 곳에 끼워넣었다. 그럴 수록 이상하게 당신이 제 눈에 어른거렸다. 정말 고장난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 현실이 꿈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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