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버스AU


2. 리에야쿠


리에프, 그 글자가 제 목부근에 새겨지기에는, 그닥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녀석이 배구부에 들어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는, 어쩌면 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드레스 룸의 벽에 달린, 전면거울을 바라보며 목 부근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선명하게 새겨진 그의 이름이, 어딘가 멀게 느껴진다. 목이라기엔 조금 애매한, 오히려 턱부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에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었다. 고개를 젖히면 적나라 하게 그의 이름이 드러나기에 나는 최대한 가릴 수 있는대로 가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여름에 목부근을 감싸는 짓은, 더위 때문에라도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반창고로 가리고 말지.

방학이랍시고 아침부터 나와 배구 연습이나 하고 있는 3학년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더위는 한껏 내리쬐는 햇살너머로 숨어버려, 욕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건장한 남고생들 사이로 들어서며, 한숨을 내뱉었다. 더위에 찌들린 이들이 제게 시선을 돌린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돌아가는 눈들이 삐걱대며 제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로 시선을 돌린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바라봐?"
"야쿠, 결국 그렇고 그런거 한거야? 그 녀석도 너무한걸."
"뭘 했다는거야?"
"모르는 척 하지마. 리에프한테 다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뭘. 나는 갑작스레 던져오는 그들의 희롱과도 같은 말투에 의아해하는 기척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채로 다른 이들에게 여러 번의 같은 물음을 반복했으나 다들 발뺌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제가 풀리지 않은 의문에 신경쓰고 있을 즈음, 이 문제의 제공자인 리에프가 부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심까! 저 오늘은 안 늦게...엣, 왜 그러심까?"
"리에프. 너 얘들한테 대체 뭘 말한거야?"
"그건.., 말 못함다! 애초에 아무말도 안 했.., 야쿠 선배."
"어,어. 왜?"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따지듯 물어오자 평소와는 다른 냉담함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는 제 목을 빤히 응시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반창고를 떼기위해 그 긴 손을 쭉 뻗었고, 잠시 당황한 나는 애써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누구에여, 그거."
"뭐, 뭐가."
"선배, 누구랑 잤어요? 쿠로 상? 카이 상? 아님, 제가 모르는 외간 남자랑 바람이라도 난거에여?"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무짓도 안했..!"

점차 언성이 높아지자 보다못한 쿠로오가 야쿠의 입을 막았고, 타케토라는 리에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쿠로오를 바라보자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휘적휘적 젓기에 정강이를 한 대 차주고선, 켄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없을 때 쟤가 무슨 이야기라도 했어? 그러자 약간 수긍하듯 켄마가 고개를 살짝이 끄덕였다.

"뭐.., 했을지도."

대답이 조금 시원치 못했다. 아쉽지만 쿠로오에게라도 뭔가를 물어봐야 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아마 아저씨의 능글맞은 대답 뿐이겠지만, 어중간한 대답보다는 아마 나을게다.

"쿠로오. 저 녀석이 뭔가 말한거야? 나 없는 동안?"

"음, 그렇다고 해두지. 하지만! 리에프가 뭘 말했는지 직접 생각해 보도록! 쿠로오 상은 부끄러워서 그런거 입 밖으로 못 내뱉는답니다. 이래봬도 순수하거든, 은근."
"전혀."
"리에프가 뭐라 했냐면.., 음...뭘 하겠다고 하던데."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우리들끼리 추측이었지. 너네 둘이서 그런 짓을 했을거라는 망상.

결국 네 놈들 탓이잖아. 나는 다시 쿠로오를 장난스레 걷어차며, 리에프에게로 다가갔다. 아직까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이, 리에프."
"야쿠선배."

타케토라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체육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둘의 뒤에서 체육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으나 여전히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당당히 그에게 다가가 마주섰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딘가 매서웠다.

"이거, 누구 자국이에여? 그 새를 못 참고 다른 남자랑 한...!"
"네 이름."

나는 조심스레 붙어져 있는 반창고를 떼어냈다. 선명하게 드러난 그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제 목에 얼굴을 들이 밀더니 가볍게 키스했다.

"선배가 바람핀 줄 알았어여. 아직 내 꺼도 안 들어갔는데. 이름, 오늘 생긴거에여? 지금 막 손가락 갖다 댔는데 찌릿찌릿거려여. 선배, 안아도 돼여?"
"안 돼."
"에엣, 안게 해주세여!"
"지금 말고 나중에. 우리 집에서."

귓속말로 속삭이자 그의 얼굴이 새빨게 지더니, 조용히 네,하고 대답하고선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귀여우니까 오늘은 봐준다. 그를 뒤 따라 들어가며 나중을 기약하고, 그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서투를지도 모르는 그대, 하이바 리에프.

부디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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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네임버스 AU

 

쿠로×츠키

 

 절대 지워지지 않는 흔적,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그 흔적을 덮었다.
 쿠로오 상은 성인이 되었다. 원래도 만날 일이 그닥 없었으나 대학생이 되고 난 후로 소식 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방학이 되자마자 대학을 뛰쳐나온 쿠로오 상은 도쿄에서 곧장 미야기로 달려왔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아직 방학기간이 아니었고, 쿠로오 상은 저녁 연습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제가 저녁 연습을 끝나고 체육관에서 나올 즈음, 그는 학교 교문에서 나를 발견 하고선 달려오다시피 했다. 그가 팔을 벌려 제 몸을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조금, 차가웠다.
 그는 나를 마주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해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쿠로오 상이 한 손으로 제 두 손을 마주 잡고, 나머지 한 손을 제게 들이 밀면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그건, 그의 손에 새겨진 제 이름이었다. 선명하게 그의 손에 적혀있는 제 이름을 황망히 바라보며 그에게 물어보았다.

 "이게...뭐..,"
 "네 이름. 사랑한다는 증거야."
 "하지만, 저는 안 생겼는데요..?"
 "네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 생겼을지도 모르지."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제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제 팔에 조금 소름이 돋긴 했지만, 그의 차가운 손길에 기분이 좋았다고 하는게 맞을테다.

 "바로 가실거에요?"
 "음...,아니."
 "괜찮다면 저희 집에 오실래요..?"
 "아니야. 괜히 신세 질 필요는 없지. 다이치네 자취방에서 머무르기로 했으니까, 걱정마."

 당신은 나를 다시 한 번 꽉 안아주더니 곧장 제 몸을 이끌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한 여름인데도 바람이 불었다. 허나, 상쾌하지 않은, 텁텁하고 더운 바람이었다. 거기다가 더위에 습기까지 한데 뭉쳐 불어오니 짜증은 배로 커졌다.
 그런 바람을 맞으며 그의 손에 붙잡힌 채로 집으로 가야했다. 집 문을 열고 그를 밀어넣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시도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탓이다.
 그는 나를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선, 아무 미련도 없이 돌아서서 다이치 선배네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 마지막엔, 살며시 입을 맞춰주고 내일 보자는 달콤한 말을 지껄이긴 했지만, 나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그의 이름은 마치 암흑과도 같아서, 혹여 제가 지니고 있다가는 제 빛이 사그라 들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물론, 착오일 뿐이다. 그를 굳이 색으로 말하자면, 흰색, 순수하다 못해 이질적이다. 본성이 순수하다기 보단, 아껴주고, 지켜주려 하는 그의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순수하다는 건 전부 애들 장난 일뿐. 오히려 좀 더 대담한 남자였음 좋았을테다. 가령 빨간 성인책을 관심 독서로 두고, 어김없이 성욕을 내뿜는 그런, 파렴치한 남자였을지라도. 아님 그의 이름처럼, 어둠에 잠식되어 나를 타락시켜 줄 그런 남자도 어쩌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가 나를 붙잡았을 적에,그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것 같은 그런- 제 몰골이 얼마나 처참히 망가졌는지도 기억한다. 한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 입꼬리는 비죽 올려 냉소를 지으며,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제 표정을 본 그는, 공원에서 자살하려던 제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실은, 죽으려던 건 아니었다. 때 마침, 커터 칼을 들고 있었고,-죽을지 말지에 대한 갈등이었다-표정은, 원래 제 얼굴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그는 단단히 오해를 했는지 제게 달려와선 커터 칼을 빼앗았다. 나는 당신의 눈빛이 그토록 빛나던 금빛이었는지는 그 날 처음 알았던 사실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제 몸에 새겨질 법도 한데, 야속하게도 당신의 이름은 커녕 흔적조차도 없다. 그는 나를 괜찮다고 타일렀으나 나는 불안하다. 어쩌면, 당신과의 관계가 쉽게 부서질 수도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쿠로오 상.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 것도 안 생기는.."
 "케이. 넌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고, 나 또한 그래. 그리고, 넌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몸에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서 안 생길 수도 있는거라니까. 걱정하지마. 난 네 몸에 내 이름이 안 생겨도 안 떠날테니까."
 "다른 사람 이름이 새겨지면..."
 "와, 지금 네 입으로 바람피겠다고 한거야? 케이, 너무한데. 쿠로오 상 조금 상처받았을지도."
 "그런거 아닙니다! 그저, 걱정이 되서.."
 "난 너 좋아하니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그가 제 이마에 가볍게 버드키스를 했다. 옅게 붙었다 떨어지는 그의 입술이 붉게 물든다. 사랑에 빠져있는 남자는, 기분이 좋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걱정스럽다.

 "정 걱정되면 내가 새겨줄게. 성인 되면. 아직은 아냐. 네 어설픈 요구 때문에 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있는 수고는 너도 싫겠지? 아직은 아냐."

 미성년자 강간하면 잡혀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의 이질적인 말소리가 흩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으나 이미 식어버린 분위기를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탓에 그 와의 거리는 점점 금이 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게요. 늦어서 형이랑 엄마가 걱정하거든요."
 "그래? 안녕. 내일 봐, 케이. 내 꿈 꾸는거 잊지말고."

 그는 다시 버드키스로 제 볼에 한 번 부딪히더니, 그대로 제가 가는 방향을 향해 손을 흔들고, 그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내일 쯤이면 제 몸에 당신의 흔적, 당신의 존재가 각인 되어 있길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핏기가 가신 창백한 손목에 칼날을 대자 붉은 선혈이 송글송글 맺혀나왔다. 나는 조심히 당신의 이름을 새겼다. 어쩌면 흉터로 남을테지만, 난 당신을 제 첫번째 흉터로 남겨 놓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내일 쯤이면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놀라 경악할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핏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당신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느낌-그것이 고통일지라도- 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상처 또한 마다 않으리라. 나는 비릿한 미소를 흘겼다.

 조금 흐릿한 하늘과 당신의 표정이 일치하는 걸 보니, 본의아니게 그는 제 상처를 알아차린 듯 했다. 그는 점점 험악해진 표정으로 제 눈을 응시하더니, 곧이어 그 시선을 제 손목으로 옮겼다. 손목에는, 핏자국으로 선명해진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

 "이거 봐요, 당신 이름이야."
 "케이. 이런 건..."
 "이제 당신하고 나는 이어진거야. 그렇죠? 내 몸에 당신이 있으니까, 나만 봐요. 네? 테츠로...상."

 당신만 있으면 돼. 내 몸에 새겨질 모든 흉터는, 당신의 것이야. 그러니까, 날 안아요. 테츠로 상.

 "사랑해요, 테츠로 상."

 나는 조심스레 그를 안았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그의 떨림이 조금 크게 느껴졌으나, 곧 그것도 무뎌졌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잖아?

 나는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요. 내 몸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건 선명하다 못해 타들어가는 붉은 흉터처럼 남았고, 그것은 아주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겨져있어서, 어쩌면 당신이 찾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했어요. 지금은 당신을 사랑할지언정, 그 흔적은 쉽게 지워지는 흉터가 아니야. 당신이 부디 그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에, 당신의 이름은 항상 볼 수 있는 곳에 두고 싶어서, 핏물로 당신의 이름을 새겼지만 아프진 않아. 괜찮으니까, 아무 말 없이 안아주세요.
 아무리 당신을 사랑할지라도, 내 몸엔 당신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입으로 나마 당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 쿠로오 테츠로.

 부디 그의 이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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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네임버스 AU

 

다이×스가

 

 옅어져 간다는 의미는, 사라진다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내 손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지는, 몇 일 되지 않았다. 아직 그럴싸한 변화도 없었기에 고작 그게 끝인가, 싶었다. 연하다 못해 거의 보이지도 않는, 어쩌다 짓눌려 만들어진 어설픈 자국같이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확연히 피부색과 차이가 나긴 했지만, 선명하다기 보단, 흐릿하다. 나는 이름이 새겨진 왼쪽 손등을 매만지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선명하게 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혹여나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은거라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몇 일 전만 해도, 이런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 아님,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그럴일은 없다. 적어도 나는 3년간 그를 짝사랑해왔으니.
 다이치는 연습시합을 끝내고 벤치로 들어왔다. 시미즈가 다이치에게 물통을 건네주고, 노란 물병을 받은 그는 물병을 입에 물고선 제게로 다가온다. 여전히 확신에 찬 얼굴이다. 오늘에는 꼭, 고백을 하고야 말겠다는. 그런.
 그가 제 옆에 물병을 놓아두고선, 앉아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손은 먼저 이끌려 나갔고, 다이치는 묵묵히 제 손을 잡아끌었다. 일으켜 세우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나는 끌려가듯이 그의 품에 폭하고 안겼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척, 실은 얼굴을 붉히면서-보이진 않았지만-제게 귓속말로 말했다.

 "조금 있다가, 애들 연습하는 동안에 체육관 뒷 쪽으로 와."

 그건, 고백을 준비하기 위한 첫 한마디 였을까, 아님 허물 뿐이던 제 이름을 그의 몸에서 없어지게 할 구실이었을까. 그는 제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체육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몇분 뒤, 다른 애들이 연습하는 틈을 타서 체욱관 뒷 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엔 그가 제게 이별을 통보한다거나, 그의 손에 새겨진 이름이 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정확히 그의 손에 새겨진 이름은 분명히 제 것이었으며, 제 손등에 새겨진 이름도 분명 그의 이름이었다. 그럼, 고백인데.

 "스가."
 "으응?"
 "이거. 네 이름이야. 어쩌지?"

 그의 말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그에게 먼저 고백해 차인다면, 더더욱 상처로 남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3년간의 짝 사랑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제 손등을 조심히 살펴보니, 점점 더 옅어져 가는 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옅어지는 게 아니라, 없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왼쪽 손등을 매만지며, 다시 그의 이름이 새겨지길, 간절히 바랬으나 다시 선명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스가. 나, 아무래도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
 "그러니까, 그게...사귀자, 스가."

 보란 듯이 선명해지는 그의 이름이 제 손등에 여실히 드러났다. 그의 손에 새겨진 제 이름도 더 선명해진 것 같았다. 그는 제 이름을 부르며 가볍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손을 잡아들어 그의 투박한 손으로 제 손을 매만져 주었으며, 제 손등에 가볍게 입맞추는 걸로 프로포즈를 마무리 했다. 이제는 제가 무언가를 말해야 할 터 였다. 답하기 어렵다면 나중에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 설레는 마음을 그에게 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도.., 좋아해. 3년 전부터 쭉, 좋아했어."
 "3년 전부터?"
 "응. 처음 만난 그 때, 여기. 네 이름이 새겨졌었거든."

 그리고 말 없이 조심스레 안아주는 다이치의 품에 파묻혀 눈물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흘러내리는 상태로,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포근한 품에 파묻혀, 서로의 손을 깍지끼고, 가볍게 입맞추며 사랑을 맹새하는 것 따윈, 제 망상속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사랑을 맹새했다. 어쩌면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라고. 분명 이 다음에 그나 나의 이름이 없어질 정도로 탁해진다면, 그건 아마 변심의 의미일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었을 뿐. 나는 당신의 고백을 듣고, 당신의 손을 잡으며, 당신과 함께 기도한다.
부디, 나의 구원자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사랑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손 끝에서 흘러내린 그것이 제 손등에 안착하자, 밝은 빛으로 물들었다. 옅어지던 색 따위, 신경쓸 게 아니다. 그저 당신과 나의 마음이 같으면 되는 것이므로.
 나는 당신의 이름을 다시 매만진다. 선명한 손 끝의 느낌이, 오른손으로 전이되어 당신을 느낀다. 당신의 오른손과 제 왼손을 마주잡으며, 나는 당신의 앞에서서 미소 짓는다.
 다신 없어지지 않을, 당신의 이름을 손으로 매만지며, 작게 입밖으로 내어본다. 나의 구원자, 사와무라 다이치.

 부디, 나의 구원자가 없어지지 않길 바라며.

 

각애(刻愛)
(부제: 죽을 권리와 살 의무)


 


*나래님 생일 축전))
*마츠×오이(+이와)

 

 

 

 열린 창문 새로 바람이 옅게 불어오고 있었다. 거무죽죽한 안개가 부옇게 흐려오던 오전이었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눅진하게 스며들었다. 허리 부근이 아프다 못해 아리다.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 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니, 그 전날의 기억이 머릿 속을 어지러이 유영했다. 아슬아슬한 기억속에 그와의 접문이 아릿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결코, 말하건대 그의 키스는 최악이었다.
오늘에야 말로 죽어버릴테다. 각오는 산산히 부서져 그의 입술에 먹혔다. 어젯밤 죽을 각오를 하고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보안 장치에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주변을 가릴 즈음, 제 방으로 찾아와 자고 있는 제 몸을 덮치며 조심스레 키스했다. 입 맞춤은 최악이었다. 혀를 휘감아 오는 그의 입이 제 것을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들었다. 솔직히 말해, 못한다기 보단 너무 아팠다. 그가 깨문 제 입이 붉게 부어올랐다.

 "오이카와.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그리고 그는 방을 나갔다. 잠시의 접문을 끝내고, 밤이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한채로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해가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또한, 제 옷은 갈아입혀져 있는 상태로, 그의 차에 태워져 회사로 가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가 골랐을 수트는 깔끔하게 입혀져 있었고, 그는 유유히 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 왔어. 내려."
 "여긴 뭐하러 왔어? 할 일도 없잖아. 유령회사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오늘 거래가 있을거야. 중요한 거래니까, 6층에서 조용히 있어."
 "잠깐 시내에 나가는 건 안 돼? 이와쨩만 잠깐 보고 다시 돌아올..."
 "안 돼."
 "내가 억지로 빠져나간다면?"
 "그땐 사지를 절단해 버릴거야."

 그러니까 말로 할 때 들어. 나도 네 사지를 절단하고 싶진 않거든. 아직 제대로 맛도 보지 못했는데 죽어서야 되겠어?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를 뒤로 하고 사장실로 향했다. 아마 거래는 회의실에서 이루어질게다. 그는 순순히 뒤를 돌아 회의실로 향했고, 사장실로 가려다가 담배나 한 개비 피우려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 자신을 반긴다. 하늘은 오늘따라 흐릿했다.

 이와쨩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을텐데.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가 떠올랐다. 아마 비흡연자였던 이와이즈미의 호통이 생각났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담배는 냄새도 맡기 싫다며 거부하더니, 결국 이런 상태다. 물론 담배 때문에 떠나간 건 아닐지라도, 매한가지다. 그는 내가 싫었던걸까. 담배 끊기는 좀 힘든데. 그가 깔리는게 아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와쨩은 나를 마츠카와에게 팔아 넘기고 이 빌어먹을 공간을 나갔다. 그의 감시 아래 있었던 그가, 자유를 되찾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이라도 이와쨩이 돌아와서 날 데리고 나가겠다고 와준다면, 난 다시 받아줄 의향이 있다. 이와쨩이 싫다고 해도 나는 그를 붙잡고 나갈게다. 그럴러면 제 몸 값을 지불할 -원래는 이와이즈미의 빚이었다- 돈이 있어야겠지. 애인을 팔아먹고 빚을 갚은 남자에게 줄 수 있는 건, 벌 뿐이다. 마츠카와에게서 벗어난다면, 반드시 그를 만나 그 간의 서러움을 알려주리라.

 무튼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는다 해도 -즉사만 아니라면- 그를 볼 수 있다면 나는 뛰어내릴 것이다. 가장 바라는 건, 지금 이와쨩이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서, 마츠카와가 거래하는 동안에 나를 빼내는 거였다. 하지만 제 기대는 역시나 부서졌다. 정말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속박되어 사는 것보단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게 낫겠다고, 저 괴물같은 남자에게 잡아먹힐 바엔 세상을 등지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생각의 자유도 없는 건가. 그는 거래가 끝났는지 상쾌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이와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허황된 미래를 잠시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지쳐 쓰러지던 제 손을 잡아 올린 건, 그가 아니었다. 깊은 눈매로 나를 응시하던 남자는, 넘어져 있던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고선, 뒤에서 나를 꽉 끌어 안았다. 그의 품에 폭하니 파묻힌 제 몸부림은 그의 팔에 간단히 제압되었다. 그는 그 단단한 손으로 제 몸을 끌어 올리고선, 파도처럼 잔잔한,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제 귀를 현혹시켰다.

 "놔! 난 죽을거라고! 이거 놔!"
 "토오루."

 그의 어두운 목소리가 제 귓가를 스치고, 그의 손은 제 몸을 더 억죄어 온다. 더듬는 그의 손길이 어딘가 모르게 음습하다. 옅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제 귀에 박혔다. 호탕하게 웃는 것도 아니고, 한숨과 가까운 웃음을 흘겼다.

 "이거..., 놔줘."

 태도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이렇게 접근하는게 빠져 나오기 쉬울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편히 죽길 원했다. 나는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선뜻 표를 던질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의 말소리가 이질적으로 제 가슴을 찔러온다. 곧 비수가 되어 제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았다.

 "넌 못 죽어. 알잖아? 네 몸은 내가 샀으니까, 네가 독단적으로 움질일 수 있는게 아니란 말이다."
 "보스..."

 나는 최대한 애절하게, 비굴하게 나 자신을 낮추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내려다 보는 그 눈빛에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눈에 제가 온전히 파묻히게 된 것이었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거니와 그는 처음으로 -느낌이지만- 내 눈을 정확히 쳐다보고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니 그의 얼굴이 보였다. 금욕적인 얼굴을 가진 이 남자는, 뇌쇄적인 미소를 흘기며 제 본능을 자극했다. 그것은, 수컷 짐승의 구애 같기도 했고, 혹은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발악같기도 했다. 제 몸을 감싸오는 그의 손길이 야릇한 본능을 지니고 있었다면, 그의 표정만으로는 이미 모든 걸 끝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미소에 나는 조심히 꼬리를 내리고 위협을 느끼면서도 조금은 대담한 손길로 그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선, 다시 한 번 제 볼에 입을 맞추었다.

 "틀렸어. 난 네 보스가 아니라 애인이지."
 "미친, 당신이 왜 내 애인이야."
 "몸 맞고 마음 맞으면 애인이지. 아직도 그 녀석한테 미련을 가지고 있는거야? 널 버리고 떠난 놈인데도?"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그는 그런 뜻으로 나간게 아닌데. 분명 그는 다시 돌아올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을 그는 단 3초의 정적으로 깨뜨려 주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은 어느새 바람결에 흩날려온 마냥 다시 스치듯 흘러갔다. 그가 팔을 느슨하게 풀려는게 느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어떻게든 안간힘을 썼고, 몸은 빠져나왔을지언정 마지막에 붙잡힌 손목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어오른 손목이 아릿했다. 더 세게 쥐어오는 탓에 통증은 더 심해졌다. 점점더 그의 손이 제 것을 쥐고 억죄어 왔다.
나는 있는 힘껏 발악을 했다. 그의 표정이 약간 험악해 졌음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당신의 그 잘난 손에 붙잡혀 총으로 맞고 칼로 난도질 당해 처참히 생을 마감하고픈 마음은 없다. 적어도 생의 마지막을 그런식으로 끝낼수는 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그와의 언쟁이 점차 심해지다 못해 극에 다다랐다. 제 목소리는 여전히 공기를 갈랐지만, 그는 평소와 같이 고요한 울림이었다. 나는 목이 쉴 정도로 외치며 제 의사를 밝혔다. 그에게는 편치 않는 짐승의 포효와 별반 다를게 없었겠지만.

 "그에게 보내주지 않으려면, 그냥 죽는게 나아! 이거 놔! 죽을거라고!"
 "오이카와, 못 들은거야? 네 몸은 내가 샀다니까. 당신은 죽더라도 내가 죽여, 알겠어?"

 잠시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죽는 것도 저 괴물에게 맡겨야 한다니. 잠시 치가 떨리는 제안이엇지만, 고통스럽게 죽기보단 즉시하는게 낫겠다. 총으로 한 방에 죽여주면 좋으련만.

 "애초에 마피아를 앞에 두고 죽겠다고 난리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죽여달라면 편히 보내줄텐데,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일을 만들어?"
 뭐, 부탁해도 안 들어 줄거지만. 섬뜩하게 웃는 녀석의 낯빛이 반질거렸다. 그는 제 손을 다시 잡으며 세게 쥐었다. 잇새로 신음이 튀어나가자, 그는 의아한 듯 제 손목을 들어 살펴보았다.

 "윽."
 "손목? 많이 부었네."

 그는 제 손을 확인 하고선 앞으로 안아들었다. 졸지에 공주님 안기 꼴이 됐지만, 몸이 들리니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걸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손목 삔 것 뿐인데. 굳이 이렇게..."
 "걷다가 다리까지 삘지 누가 알아?"

 옥상에서 내려와 사장실로 들어갈 때 까지 나는 그에게 안겨 있어야 했다. 그는 서랍에서 붕대와 약품등을 들고와선 제 손목을 둘러 감쌌다. 얌전히 6층에 있으라던 그의 말을 안 들은게 잘못이었다. 왜 굳이 옥상에 올라가서 이런 몹쓸 꼴을 보이다니, 과거의 내가 정말로 원망스러웠다. 그는 조심스레 제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이카와, 사랑한다."

 그러니까 죽으려고 하지마. 그건 결코 당신이 정부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의 말처럼, 나도 당신을 어쩌면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백하게 새겨진,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강압적인 느낌의 언어였다. 억지로 새겨진 사랑을 다시 훑으며, 당신은 다시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가볍게 입 맞추며 조심스레 사랑을 새긴다. 사랑이란 이질적이고도 모순적인 감정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르는 제 감정을 드러내며.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귓속말로 사랑을 속삭인다.

 

각애(죽을 권리와 살 의무)_Fin.

 

 

 

+(설정)
-마츠카와 잇세이 : 마피아 보스. 현재 회사 운영 중. 회사라 해도 허물만 회사일 뿐, 실제로 없는 유령회사. 무기상이며 마약거래도 함.
-오이카와 토오루: 회사원이었으나 애인이었던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오이카와를 마피아 보스에게 파는 바람에 마츠카와네 저택에서 살게됨.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데리러 올거라 믿고 있음.
-이와이즈미 하지메: 마츠카와에게 빚이 있음. 그래서 오이카와를 대신 팔아넘김.

 

-

본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늦어지더라도 감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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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을 새기다

각애(刻愛) 스핀오프

 

 

 

마츠×오이

 

 

저번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더웠으나, 그나마 나았던 점은 회사에 틀어박혀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남은 잔업을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름은 조금 달랐다. 아무 일도 하지않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했던 터라,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대낮부터 아무것도 없는 건물에 붙박혀 있는 것은, 결코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그나마 에어컨이라도 달려있어서 다행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여름 더위에 쪄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의 사무실은 단조로운 편이었다. 적어도 전에 있던 회사와는 전혀 달랐다. 가끔씩 지시를 받으러 올라갔던 사장실의 풍경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간결하게 책상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요즘에는 쓰지 않을 법한 깃펜 하나가 잉크 통에 세워져 있었다. 또한 접대를 위한 테이블과 소파 외엔 어떠한 가구도 찾아볼 수 없는 간결함이 흐르고 있었음엔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 밖의 비서실엔 서류들이 넘쳐 났는데, 그의 비서는 꽤나 성실한 편이라 오전에는 거의 일을 다 끝내곤 했다. 아니, 하는 일이 그닥 없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유령회사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여튼, 그의 사무실은 정갈하게 정돈 되어 있음이 확실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오늘 그의 사무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따분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갑게 식은 책상과 딱딱한 가구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품속에 안고 왔기에 망정이지, 책이라도 가지고 오지 않았더라면 또 적막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가끔 거래를 할 때 나를 데리고 같이 나오곤 했는데, 그는 내가 도망갈 것을 걱정했는지 사장실에 보안장치를 걸어놓고는 거래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더운 여름, 에어컨이나 틀어놓은 사무실에 박혀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전에는 특별하다 느끼지 못했던 자유가 간절해지자 옥상에서 뛰어내릴 성 싶었던 제 계획도 그의 손에 산산조각나 부서졌다. 죽겠다 다짐했었던 그 허망한 각오마저도 사라진지 오래다.

"물이라도 드시겠어요?"

그의 비서였다. 그와는 초면이었다. 솔직히 말해 달가운 편은 아니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오히려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의 존재마저도 전 애인-그의 비서직에서 해고당했다-이 떠오르는 탓에 쉽게 웃어보일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적개심을 드러낼 의도는 없었기에 한껏 치장된 웃음를 내보이며 미소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는 조용히 비서실로 가서 물을 한 잔 가지고 왔다. 안에는 얼음이 한 가득 담겨있는 채였다. 나는 그에게서 물 잔을 받아들고선 조심히 한 모금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으로 시원스레 넘어갔다. 그는 빤히 제가 물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때 마침 거래를 끝낸 마츠카와가 들어왔다. 그는 귓속말로 비서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잠시 귀 기울여 듣다가 인사를 꾸벅 하고는 비서실로 다시 돌아가는 그 비서를 황망히 바라보다가, 제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입가를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얼음만 남아있는 물잔으로 고정시켰다.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났다.

"더워. 밖에 나가면 안 돼?"
"안 돼. 지금 폭염이라 나가면 죽어. 그냥 여기 있어. 에어컨도 틀어놨는데, 진짜로 더워?"
"더워."
"그럼 시원하게 해줄게."

그는 제 몸을 소파위에 눕히더니 얼음이 든 컵을 집어들었다. 그대로 몸에 부으려는 건가. 조금 무서워지기도 했으나 아마 그는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리라. 물은 다 마셨지만 얼음이 맨 살에 닿으면 아마 차갑다기 보단 아프단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두 손목은 그의 한 손에 잡혀있었고, 그는 물 컵을 들고선 제 위로 그의 몸을 겹쳐왔다. 결국 그가 덮치는 자세로 제 몸을 깔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거 풀어줘. 더우니까 손 좀,"
"더우니까 시원하게 해준댔잖아. 조금만 참아."

그러고선 한 손에 들고 있던 컵에서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넣고선, 밑에 깔린 제 입에 넣어주었다. 그의 타액이 섞인 투명한 얼음 조각이 제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투명한 액체가 그의 입에서 떨어져 제 볼으로 흘러내렸다. 얼음은 그의 입에 삼켜져 제 입으로 옮겨졌다. 부드럽게 녹아드는 얼음이 차가워야 할텐데, 그의 타액에 닿아 뜨겁다. 그의 시선마저도 정열적으로 타들어간다.

"하나, 더 줄까?"

그의 목소리는 낮게 제 귓가를 울린다. 억지스럽게 요구하는 말투는 아니었으나 분명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다. 안 먹는다 해도 억지로 먹일 것이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얕게 웃으며 다시 컵의 얼음을 한 개 입에 머금었다. 얼음을 녹이는 그의 혀가, 어쩌면 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잔뜩 머금은 얼음과 물을 제 입으로 넘겨주었다.

아니. 넘겨주다가 그의 입이 제 것을 삼킬 듯이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서로의 혀가 얽히면서 차가운 얼음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말캉한 혀가 서로 부딪히며 얼음 조각을 녹혔다. 점차 작아지는 얼음 조각에 더 격하게 얽혀드는 혀가 뜨거웠다. 축축하게 얽혀드는 그의 혀가 부드럽게 제 혀를 감쌌다. 얼음이 다 녹고 나서도 그의 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입 안을 헤집었다. 이제 야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어느새 그에도 익숙해 졌는지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부끄럽다기 보단,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의 시선을 좇고 있다 보면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뜨겁게 일렁인다. 그 뜨거움을 즐기는 건 적적한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나, 더?"
"이번엔, 좀 더 진하게."

나는 그에게 옅은 미소를 흘겨보였다. 그는 제 눈꼬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눌렀다. 그의 미소가 제 눈으로 흘러들어왔다. 점차 옅어지는 그의 미소가 제 눈에서 일렁였다. 그가 얼음을 물고 제 입을 향해 다가오자 나는 다시 한 번 조심스레 그의 입을 받아냈다. 서로의 혀는 얽혀서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부드러운 입 맞춤에 시원하긴 커녕 좀 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를 밀쳐낼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에게서 여름의 -잊지못할- 기억을 받은 것만 같다. 여전히 강렬하게 엉키는 혀가 나를 덮쳐온다.
얼음이 그의 손에 들려있던 컵에서 쏟아져 흘러내렸다. 제 몸으로 흘러내린 얼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맨 살에 닿아 투명하게 흘러내린다. 얼마 남지 않은 얼음이었기에 그는 제 팔에 떨어진 얼음을 혀로 감싸고, 제 팔을 핥아 올렸다. 아아, 그의 혀가 제 몸을 뜨겁게 감싼다. 그의 혀로, 여름을 새기며.


여름의 무더위는 얼음에 녹혀져 흩어졌다. 눅진한 기억 속, 그 해 여름을 꺼내며, 다시 한 번 여름을 새긴다.

욕망

*사망소재 있습니다.

쿠로×츠키

 

 당신의 그 단단한 손에 쥐어져 질식될 수 있다면, 황홀할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당신의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바라보며, 눈물 범벅으로 흘러내린 제 얼굴을 애써 미소로 바꾸며 애처롭게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당신의 그 어벙한 모습이 보고싶었다. 멍하게 제 눈물을 쳐다보며, 어찌할지 모르는 당신의 그 손을 잡았다. 더, 더 세게. 제 힘으로는 당신의 손을 풀 수 없을 정도로 세게. 계속 졸려지는 목에 켁켁대면서도 성대에 힘을 주고 보란 듯이 더 세게. 당신은 날 구하러 온, 천사인가요. 그렇다면, 제 목을 졸라주세요. 더 이상 제가 살 의지조차 느끼지 못하도록.

 "더, 더-! 커헉! 죽지-않-을-정도-로오, 질식하고 싶-,윽."
 "이제 그만. 진짜 못하겠다. 이건 아니야, 츠키시마."
 "당신이 바란거잖아요? 남자 고등학생, 그 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데, 목을 조이면 반응이 즐겁다면서요. 울먹이면서 그만해달라 애원하는 모습이 좋다고. 분명 당신이 첫 만남 때 그랬어."
 "하지만, 츠키시마 군, 이건 아닌 것 같아."
 "난 좋아요. 당신이 제 표정 보면서 어떻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좋고, 다 끝나고 챙겨주는 것도 좋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신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그 단단한 팔로 나를 죽여줄 수 없다는 점."

 그는 의아해 하면서도 다시 제 목을 쓰다듬었다. 그의 능숙한 손길이 제 목을 단단히, 부드럽게 주무른다. 당신의 손길이 목 위의 천을 사이에 두고 선명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제 목을 보며 물음을 내뱉는다.

 "있지, 머플러는 왜 두른거야?"
 "당신 손자국이 남아서, 들키면 이제 당신 좋아하는 것도 못 하잖아요?"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게 아니라."
 "걱정마요. 난 좋으니까. "

 둘의 언어가 부서지며 얽혔다. 엄마는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마 당신이 매번 우리집에 찾아오는 걸 알고 있었나봐요. 형도 당신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매번 제 방에 들어와서 당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제가 괜찮다고 했거든요.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곧 나를 황홀하게 죽여줄, 미안하고도 고마운 사람이니까.

 당신의 욕망은 이제 빛을 바랜 듯 점차 연해졌다. 목을 조를 때의 느낌은 선명했지만, 탁하게 시야를 가렸다. 어지러히 흩어지던 제 기억이 주마등처럼 흩어 지나간다. 아아, 나의 천사여. 부디 나를 이 악한 세상에서 죽여주시길. 당신의 그 억세고 단단한 손으로 제 목을 조여 주소서. 이미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인마냥 조용히 죽어줄테니, 조심히 쥐어 사뿐히 질식시켜 주옵소서. 제 목이 조여오는 그 느낌은 당신의 손끝에서 부터 전율하여 다가왔다.

 나는 죽고 싶습니다. 당신의 그 욕망을 빌어, 부디 제 몸을 조심히 질식시킨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입니다. 당신의 욕망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이지만, 어쩌면 그러는 편이 더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조여오는 감각도 무더졌으며, 당신은 마음이 약해져 점차 힘을 약하게 쥐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은 약하게 제 목을 조여온다. 익숙해진 당신의 손길이 조심스레 제 목을 누른다. 나는 이미 이것의 쾌락을 익혀버린지라, 당신의 손길도 거부할 수가 없다. 그 황홀감에 빠져, 나는 그렇게도 증오하던 세상과의 작별을 고한다. 비록 당신의 손을 빌어 죽음을 얻어가지만, 그것 나름대로 감사한다. 나는 당신을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에 당신을 향해 제 몸을 던지기엔,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나는 오늘에야 말로 사랑하는 당신의 앞에서, 당신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던 표정을 지으며, 황홀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다시, 다시 조여주세요."
 "미안, 츠키시마. 진짜, 미안."
 "큿-,더, 더 세게,아-아아-아-아아아-"

 정돈되지 않은 언어가 한계까지 걸쳐졌다. 당신을 바라보니, 확신에 찬 표정이다. 이제 더 세게 조여주세요. 당신의 그 단단한 손길로 나는 죽고 싶으니. 그는 더 힘을 주어 제 목이 부서질 것만 같다. 제가 울먹거렸나요. 울지말라고 그가 말해준다. 입이 점차 벌어지며 막힌 숨이 튀어나온다. 손에 막혀 나오지 못한 신음 소리가 잇새로 갈라진다. 곧 산소가 부족해지며 눈이 뒤집어 지고, 몸은 제 기능을 잃고 뒤로 젖혀진다. 발작을 일으키다 덩그러니 떨어진다. 드디어, 나는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쿠로오는 그대로 츠키시마의 손을 빌어 목을 쥐려고 했지만, 이미 뇌가 멈춘 츠키시마의 손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쿠로오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자신의 목을 조심히, 그리고 조금씩 조였다. 목 안의 기관이 파열되고, 당신과 같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천사가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어, 이 빌어먹을 세상과 작별을 고하며, 나는 다시 당신의 곁으로 갈 것이니. 그 땐 반드시 사랑한다 말하리라.  

 

 약속

쿠로×

 

 당신과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나는 어렵지 않게 내뱉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운명은 당신을 밀쳐냈다. 제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눈 앞을 가린다. 선명한 피사체가 그림을 그리듯 제 눈 앞을 뒤덮는다. 아찔한 당신의 미소가 어른거린다. 나는, 당신을 차마 제 눈에서 지울 수 없다. 다시금 당신을 사랑한다고, 다시 한 번 입밖으로 되내어 본다.

 당신은 언제나 활기찬 사람이었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고 능글맞은 사람이라 해야하나. 항상 나를 격려해주고, 걱정해주는 -엄마같은- 남자였다. 그런 당신의 손을 붙잡으며 나는 속삭였다. 쿠로. 당신은 귓가를 간지럽히던 제 입이 멀어지자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그러곤 당신은 제게 이제껏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달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의 미소는 무언가 탁하고, 어두웠으나 확신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당신의 미소를 어색하게나마 따라할 수 밖에 없다. 혀 끝에서 당신의 이름이 맴돌다 부서진다.

 "쿠로."
 "잠깐 갔다오는거야.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잠시 오사카 지점에 일이 생겨서 갔다 오는 거니까, 몇 일만 혼자-."
 "혼자있기 싫어. 나도 가면 안 돼?"
 "일이니까, 조금 힘들지 않을까."
 "쿠로."

 이거야 원,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잖아. 당신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은근 기쁜 듯 나를 끌어 안았다. 당신의 포근한 품안에 안기니, 어느새 노곤해졌다. 제 몸을 끌어 안고선 나를 차량 뒷좌석에 태우고는 바로 오사카로 출발했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의 질주에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잠이 더 밀려오고 있었다. 당신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고선, 조금 자두라는 말과 함께 제 눈은 감기었다.

 "쿠로."
 "다 왔어."
 "쿠로."
 "좀 더 잘래?"
 "쿠로. 이게 뭐하는-,"
 "쉿. 이제 인형은 말 하면 안 되는거야. 켄마."

 당신에게 사랑한다 울부짖었을 뿐인데, 나는 왜. 

 당신의 손이 우악스럽게 제 손목을 잡았다. 당신의 혀가 제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필사적으로 거부하자 당신은 제 머리채를 잡아 채고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밀려드는 토기에 숨이 넘어갈 듯 들이쉬는 제 호흡을 당신의 입이 가로막았다. 점차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당신의 손가락이 제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이 당신을 향하고 있다. 당신은 개의치 않은 듯 제 머리를 쓰다듬고선 다시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쿠로, 일은."
 "가는 도중에 연락이 왔어. 안 와도 된다고. 그래도 이왕 떠난 김에, 오사카까지 가기로 했지. 방도 잡아놨는데."
 "그래서 여긴,"
 "호텔."
 "응."
 "하지만, 도망치려는 건 포기하는게 좋을 거야."

 뭐, 그 꼴로는 도망치기도 힘들겠지만. 매듭을 지어 제 몸을 포박시켜 놓고, 당신은 태연하게 제 입술을 삼킨다. 당신의 이질적인 태도가 제 마음을 바스라뜨린다.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쿠로, 도망 안 가니까, 이거 풀어줘."
 "안 돼. 너, 도망 안 간다고 해놓고 도망간게 몇 번인데."
 "이거 아파. 풀어줘."
 "나참."

 그러면서 또 당신은 부드럽게 제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어냈다. 당신은 가끔 알다가도 모르겠다. 냉철하게 쏘아 붙이다가, 마음이 한 없이 약해져 유해지기도 하고, 부드러운 당신의 면을 보다가도, 밀어붙이는 당신의 단호함을 보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나는, 당신이 나를 아프게 하는게 가장 싫었다.

 "너, 집에 있었으면, 도망 갔겠지?"
 "따라왔잖아. 그걸로 도망 갈 의도가 없었다는게 증명이 되잖아?"
 "집엔 감시 카메라가 있는 걸 너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거지? 차라리 완전히 모르는 곳에서, 도망치자고."
 "......"

 사랑해. 당신이 제 귀에 대고 속삭였다. 흩어지던 당신의 그 낮은 목소리가 제 귓가를 간지럽히다 흩어졌다. 당신의 손이 다시금 우악스럽게 제 몸을 안는다. 투박한 손이 제 머리를 쓰다듬고, 당신의 그 부드러운 입이 다시 제 입을 덮친다. 당신의 혀가 얽혀들어, 묘한 느낌이었다.

 "쿠로."
 "켄마, 사랑해."
 "......"
 "그러니까, 내 곁에만 있어. 내 이름만 부르고, 나한테만 안기고. 나한테만 사랑한다고 해."
 "사랑...해."
 "나도."

 당신의 사랑은 보답받지 못한다. 나는 다신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 할테다. 당신에게만 사랑을 고하겠다고, 거짓된 사랑을 다시 속삭인다.
 사랑해, 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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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 시점의 소설입니다만, 혹여 '나'라는 표현이 발견되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찌통, 사망 요소가 들어가 있습니다(+미약한 유혈)
*분량 매우 짧습니다.(주의

 

 

 

 

너의 마지막

 


이와×오이

 


 네가 그걸로 족하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그냥 네 곁에서 너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너를 떠나보내도록 할게. 그게 너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기꺼이.

 "이와쨩."

 그날따라 너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까닭에서일까. 타케루가 괴롭히기라도 한걸까? 너의 미소는 종잡을 수 없이 일그러져갔다. 평소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없었다. 항상 밝은 미소로 맞이하던 네가 없어지고 나니 주변은 조용했다. 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하늘마저 푸른, 맑다 못해 밝은 날이었고, 방학이었지만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옅게 흩어지는 구름은 애처롭게 하늘을 누비고 다녔다. 너의 마음속에 떠다니는, 불필요한 여러 생각처럼.

 너의 그 표정을 본 순간, 장난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표정이 왜 그래. 너의 낯빛은 차차 어두워지더니 흐릿하게 일그러지다 못해 구겨지듯 어두워졌다.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가득 차던 순간에, 너는 그 깊고 깊은 근심의 파도에 휩쓸려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무런 발버둥조차도 치지 않고 고요히 가라앉고 있었다.

 "있지. 나, 이번 여행은 못 갈 것 같아."
 "왜?"
 "음, 갈 곳이 생겼거든."

 고 3 겨울방학. 우리는 모든 것을 마주했고 흘러 보냈다. 인터하이가 끝난 3학년들은 별 필요 없는 것에 불과했던가. 인터하이 후, 그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후, 너는 부활동에 나가지 않았다. 한편으로 조금 편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지만, 여전히 너의 얼굴은 일그러짐의 연속이어서 차마 너를 그냥 둘 순 없었다.
 그래서 너의 기분도 전환시킬 겸, 무작정 우리끼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그것마저도 따라주지 않는다. 부모님도 따라오지 않는 배낭여행이라 둘이서 재밌게 놀다올 수 있겠다고 밝게 웃던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조그마한 행복마저도 너에게 전해줄 수 없었던 걸까. 신은 무정하다. 너의 사랑을 앗아간 그 신에게, 되려 너를 증오하는 투로 내뱉는다. 그것은 너를 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살은 너에게로 날아간다. 마치 모든 게 네 탓인 것처럼.

 "그래도, 그 뭐냐.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고. 그거, 미룰 수 없는 거냐?"
 "응. 미안."

 너의 표정이 꽤 심각했기에 나는 아무 말도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비행기 티켓을 엄마들의 여행을 위해 각자 집에다 가져다 드렸고, 두 분은 같이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의 기간 동안같이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생겼다. 그것이 우연일지라도 너는 꽤나 기뻐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이 메말라 갈라지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오이카와, 너 어디 아프냐?"
 "가까이 오지 마, 이와쨩."
 "피, 피가 나는데."
 "이 정도 피는 괜찮아. 심각한 거 아냐."

 병원이라도 가자. 하지만 너는 괜찮다며 계속 거부했다. 너의 아픔은, 전이되지 않았다. 네가 아프면 그건 반드시 마음속으로 공유될 터인데. 너는 아픔을 나누려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병을 끌고 간다. 그것마저도 조금 의지하고 기대면 좋으련만. 가기 싫다는 너를 억센 손으로 잡아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와중에 너는 말을 건넸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한 표정으로 그 아슬아슬한 절벽을 떨어질까, 고민하고 있었다. 병의 진전도 없었지만, 완치의 진척도 보이지 않았다. 너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기대었던 머리를 떼어냈고, 지긋이 바라보던 그 눈빛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런 너를 보면서도 서로 안으며 울어주는 것 밖에 못한다는 게 슬프다. 눈물은 너의 두 볼을 타고 흘렀다. 너의 것인지도 모를 액체가 서로의 얼굴로 떨어져 부둥켜안던 너의 표정이 아릿했다. 너는 곧 죽는다.

 "의사가 말하는데, 곧 죽을 거래."

 죽는다는 말이 무덤덤하게 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 너의 최후를 맞이하는 걸 보는 건 고통스러우나, 최후의 마지막은 함께해주고 싶었다.

 "안 죽어."
 "우리 여행도 못 갔는데. 그거 졸업여행이 아니라 신혼여행이었다?"

 농담조로 내뱉었지만 꽤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너는 반응을 보더니 조금 난감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넌 남자라도 상관없어?"
 "너라면, 괜찮아."
 "그럼 결혼 할래? 아, 그건 이와쨩한테 너무 가혹하려나."
 "결혼 하고 싶어?"
 "응."

 너는 밝게 미소 지었다. 그것이 너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되는 마냥,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너의 미소가 애처롭게 아른거렸다.

 "여자랑 안 해도 되는 거야? 나랑 해도 괜찮아? 분명 남자라서 딱딱하기만 하고 재미 없을 텐데."
 "이와쨩. 난 이와쨩이 좋으니까 상관없어. 네가 남자인 것도 관계없고, 그리고 난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한 순간에 울컥 치밀어 올랐다. 너의 그 한마디는 눈물이 흐르게 했다. 죽음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결혼은 축복할 만한 일이었다. 그걸 동시에 하겠다는 건, 모순이 있었다. 죽음은 결코 축복할 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너를 떠나보낼 수 없었지만 너는 이미 마음을 전부 저승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그저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몸만을 남겨 둔 것 같았다. 그 마지막을 죽음으로 맞이하지 않고, 결혼으로 축복받으며.

 "그래. 어디서 하고 싶어?"
 "결혼식이라고 거창한 것도 필요 없어. 그냥, 사랑한다고만 말해줘."
 "사랑해."
 "이와쨩, 한 번만 더."
 "사랑해, 오이카와."
 "고마워 이와쨩."

 아스라이 흩어지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지막은 부디 평온하게 갈 수 있기를, 너의 손을 잡으며 기도했다. 이아쨩. 너의 입술이 미약하게나마 떨리며 부여잡고 있던 너의 손에 마지막 힘이 들어갔다.

 "응. 응. 오이카와. 흡, 왜 그래, 응?"
 "으, 이아쨔앙, 사랑해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너의 손에선 힘이 빠져나갔다. 너는 죽었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너의 손을 매만졌다. 마지막은 아직 인데, 아직 너를 떠나보내지 못했는데. 눈물이 너의 손을 타고 흐른다. 아직까지 온기가 남은 손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마지막은 서로의 축복을 받으며 일그러졌다. 물론 너는 일그러지지 않았다. 손마저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너의 모습은 오히려 더 평온해 보였다.
죽은 건 너인데, 되려 일그러지는 건 네가 아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심장이 차차 멎어 들어간다. 너의 마지막을 맞이하며, 너를 떠나보냈다. 부디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길 빌며.

 


 안녕, 토오루.

 

 

 

Cigarette

 

쿠로×츠키




 퀴퀴한 냄새가 연기로 흩어지며 코끝을 찔러댔다. 초봄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서늘했으며, 아스라이 흩어지는 하이얀 연기는 담배 연기에 묻혀 사라졌다. 바스라지던 그 하얀 연기는 허공을 뿌옇게 물들였다.
 코끝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은 듯 목 끝이 따가웠다. 내뱉은 한숨은 담배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독하디 독한 매연이 제 머릿속을 어지러이 헤엄쳤다.

 고개가 떨궈졌다. 앙하고 다문 입술 사이로 연기가 뿌옇게 새어나갔다. 켁켁거리는 소리가 촬영장 안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담배 한 개비를 쥐고 있던 손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게 흔들렸다.

 "컷!"

 감독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제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켁켁거리는 탓에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는지 그가 직접 세트장 안으로 들어와 제 상태를 살폈다. 평소에 배우들한테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제가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고, 관심조차 주지 않을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그랬을 텐데. 이상하게도 계속 챙겨주려는 그의 노력이 꼭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찝찝했다. 것도 배로.

 "츠키시마 군, 힘들면 그만해도 돼. 그 부분은 그냥 편집하면 되니까."
 "아니요, 하겠습니다."

 하지 말라는 데도 오기가 생겼다. 제가 맡은 역은 완벽히 소화해내고픈 마음뿐이었다. 그 사람의 노력에 반응해 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싶었다. 되도록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그가 제게 다가와 속삭였다.

 "들이마셔봐, 천천히."

 제 입에 담배개비를 가져다 대고선 금방 치웠지만 연기는 이미 호흡을 타고 넘어간 뒤였다. 다시 한 번 켁켁거리자 이번에는 그가 제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사랑하는 애인을 마주하듯 이질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웃어보였다.

 "괜찮아? 아, 이런. 새 걸 꺼내야겠네."

 담배꽁초는 재빠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꽁초 끝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선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더 꺼냈다. 그러고선 제게 줄 줄 알았던 담배는 그의 입으로 향했다.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이는 그의 손이 분주했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연기가 그의 입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몽롱한 연기는 그가 뱉어내는 숨과 함께 흩어졌다.

 "자, 다시 해봐."

 그러고선 그가 피우던-한 번이지만-담배를 제 입에 물려주었다.

 "천천히 빨고, 들이켜. 조금은 목 뒤로 흘려보내고, 나머지는 입 벌려서 뱉어내."

 전 보다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호흡을 따라하며 담배 향기를 음미했다. 여전히 독하고 더러운 냄새였지만, 그의 담배를 피운 덕인지 그렇게 역겹지는 않았다. 이게 몸에 주는 영향을 알면 그런 소리는 나오지도 않겠지만.

 다시 촬영은 재개되었고,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다시 한 번 촬영을 이어갔다. 다행히도 장면에는 이상이 없었고, NG도 나지 않았다. 코끝으로 깔깔한 담배향이 미약하게 흩어지며 간질였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아니 고요한 바람소리가 흘러간 촬영장은 감독의 한마디의 외침에 갈라졌다. 드디어 끝이다. 끝.
 '컷'을 외친 감독님은 빠르게 세트 안으로 들어와 제 상태를 살폈다. 옥상 난관이기에 딱히 세트라고 명명하기도 힘들지만, 아무튼 마지막 장면은 연기가 되어, 담배연기에 흩어지며 주인공이 사라지는 장면이었기에 감독님은 그 장면은 엄청 찍고 싶어 했다. 마치 세상에 이별을 고하듯 마지막 담배를 들이키며 참담한 얼굴로, 그걸 또 묵묵히 숨기면서 돌아서는 그 모습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했다.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지만, 담배에 모든 걸 맡겨버린 제 마음은, 감독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서서히 피폐해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렇게 담배를 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님, 단기간에 익숙해진 이 담배 향에 몸을 맡기고 다시 한 번 그 독한 매연을 들이키고선, 의지할 곳이 없는 제 처지를 비관하며 부정하려 들지도 모르겠고.

 "담배 이리 내놔."
 "쿠로, 아니 감독님. 제가 버리겠습니다."
 "버릇 들면 안 돼. 익숙해 졌다고 계속 피우게 되는 게 담배야. 이리 내. 옷에 있는 담배 곽도 내놓고."
 "예."
 "그리고 감독님이라고 안 불러도 돼. 익숙한 대로 불러. 이제 촬영 끝났으니까."
 "예, 쿠로오 상."

 나는 웃어보였다. 그도 기분 좋은 미소를 흘기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큰 손은 제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고, 나는 그 안정감에 안도했다. 이제 나와 그의 사이를 갈라놓았던 '배역' 이란 일은 끝이 났다. 그는 '감독'이란 위치에서, 나는 '배우'라는 위치에서 오롯이 '영화'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 마지막 장면을 끝마쳤다. 그 중 담배가 가장 거슬렸지만, 이제 그와 나는 원 위치로 돌아가야 했다. 요 근래 조금 어색했던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선, 애인답게 굴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빠지지 않았다.  
 어쩌면 난, 이 사람에겐 아무것도 당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쿠로오 상, 촬영도 끝났으니까 이젠,"
 "집으로 가야지."

 그래요.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어 새어 나오는 그 미소는 담배 향기처럼 중독성 있으면서도, 달콤했다.

 "촬영 끝났으니까, 담배에는 손도 대지마.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로오 상."
 "응?"
 "사랑합니다."
 "응, 응. 얼만큼?"
 "담배 만큼이요."

 잠깐, 츳키? 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쿠로오 상의 물음을 무시하고선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초봄에 흩어지는 연기는 아스라이 어른 거렸다. 제 입안을 물들였던 담배연기도 곧, 그의 집에선 사라질 테고 제 몸을 물들였던, 옷에 배인 향도 그의 향으로 가득 찰 테다. 나는 아무도 본 적 없는 미묘한 미소를 흘기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
#이런_거_넣고_싶었다!

黒-츳키.
月-쿠로오 상.
-달려드는 쿠로오 상, 막지 못한 츳키.
月-뭐 하시는 겁니까?!
黒-소독.
月-하아?
黒-담배 연기는 입 안에 배면 안 좋아.

능글맞게 웃으며 겁나 진한 키스를 퍼부어 줬다고 합니다. 것도 딥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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