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산산히 부서지는 갈망 속에 타들어가던 애절함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었고, 눈물 방울은 끝무렵에 걸쳐있었으며 서로의 손은 맞잡은 채로 무참히 찢겼다. 그의 뜨겁던 몸뚱아리와, 귓 속에서 흩어져버리던 약한 숨소리마저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했던 때가 무색하게 나는 기억 속에서 완전하던 당신을 조각내고선, 애써 조각난 기억의 산물을 전부 무의식의 심해로 던져버렸다. 다신 그 기억을 꺼낼 이유도, 그럴 일도 없으리라.

 그 날 그렇게 다짐하고선, 다시 그가 생각났다. 그는 나의 구원자이고, 내 인생에서 전환점에 서 있던, 그 구원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바라건대 나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길 빌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3년 전, 자살기도를 하던 나를 구해주었다. 이젠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비오는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걸었다.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여전히 어둑하게 깔린 어둠에 앞은 보이지 않았으며, 껌벅거리는 가로등 불도 곧 꺼질 것만 같았다.

 빗 속을 뚫고 지나쳤다. 차들은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엔, 저 멀리 보이는 가로등 한 개 외엔 전부 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는 그 밝은 가로등 불을 흐릿한 눈길로 응시했다. 추위에 나뒹구는 시체가 있다면 시청에서 처리해줄까. 유서라도 써놓는게 좋을까, 와 같은 의미없는 물음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그 날 죽음을 각오했다.

 실은 죽더라도 밝은 곳에서 죽길 원했다. 앞으로 계속 사람이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은 골목이었다. 그 흔한 고양이 조차도 없는 걸 보면 사람도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비가 와서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명 정도는 지나면서 죽어있는 내 시체를 발견하고선 누군가가 처리할 게다. 그저 죽음은 예견된 미래였다.
 그 때, 누군가가 제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앉아 있으면 감기 걸리실텐데."

 그 남자였다.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눈매마저도 아름답던 그가 제게 말을 건네왔다. 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선 내 손을 맞잡았다. 이미 내려간 체온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나를 부축하고선, 근처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나는 별 수 없이 경찰서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제 갈 곳이 없었다. 그가 내 보호자라는 말을 하고서는 경찰서를 나섰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금 있다가 돌아온다는 그 남자의 말이 귓가에서 헛돌았다. 뺨 끝 언저리에 남은 그의 온기는 다시 차갑게 변질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죽지 않았으나 나는 경찰에게 내 신원에 대한 진술을 해야했다. 몇일 전 일어난 주택 살인사건의 피해자이며, 나를 제외한 가족 전부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할텐가? 나 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아니, 그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사체가 되어 그냥 거리의 쓰레기로 전락되어 땅 어딘가에 묻혀졌을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 다시 시작해야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까지 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이제야 내가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대가 나를 구원한다면야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을테요, 다만 그대를 원할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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