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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해 볼 생각 없습니까?

 

 

 

 맞잡은 두 손에서 마츠카와는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세심한 감촉을 느꼈다. 오이카와의 손가락에는 훈련으로 단련된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곳곳으로 느껴지는 영광의 상처들이 손에 표식을 새겼다. 헌데도 유난히 눈에 띄는 건, 오이카와의 오른손에 여실히 드러난 흉터 자국이었다.

 마츠카와의 눈썹이 움찔거렸고, 곧이어 몰아 내쉬는 그의 숨소리에 오이카와는 약간 당황했지만 황급히 달려 나가는 마츠카와의 손에 이끌려 그 또한 주차장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눅눅한 공기를 머금은 지하 주차장의 불빛이 걸음마다 따라 나섰다. 차 앞에 다다르자 마지막으로 빛을 밝힌 구석의 한 자리에는 깔끔하게 반짝거리는 고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마츠카와의 손에 들린 차 키에서 고요한 울림이 퍼졌고, 이내 차 문은 열렸다. 차가운 냉기가 보이지 않는 주변을 에워쌌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를 보조석에 태우고선,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끈적하게 달라붙던 손길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손끝에 남아있던 까닭에, 핸들을 잡고서도 아직까지 심장이 뛰는 이유리라. 마츠카와는 시동을 걸었고, 때 마침 제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에서 발신자의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지이(じい)'였다.

 여기에 대해 잠시 변명해보자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으나 지을 당시에는 굉장히 놀랍고 획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마츠카와는 묻지도 않은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장난삼아 케이지, 케이지 하고 그를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게 어엿 2년 째, 그리고 그런 그를 보고 있자면 무엇보다 절실하게 드는 생각이 '통화상대 명'을 바꿔야겠다는 것이었다. 마츠카와는 케이지를 읊조리다 끝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지이(영감)'가 되었다고 무색한 변명을 머릿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물론 그런 별명이 자리 잡기까진, 애늙은이라는 표현이 대신하고 있었다. 지이, 지이. 케이지. 마츠카와는 딱 세 번 마음속으로 아카아시의 이름을 외쳤다.

 열렬하게 울리는 휴대폰에 시선을 한 번 주고, 오이카와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무언의 표시와 함께 차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전화를 받았다.

 [마츠카와 상?]

 [아아, 미안해. 일이 좀 생겼거든. 오디션 잘 보고, 나중에 가게에서 봐.]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행운을 빌어, 케이지.]

 귓가로 파고든 낮은 울림의 여운이 정적에 감싸였다. 다행히도 오이카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차 안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는 간간히 뒤쪽 창문을 응시하며 마츠카와가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도착했을 땐, 축축해진 옷깃을 붙잡고 오들오들 떨며 불편하게 앉아있는 오이카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운전석에서 본 그의 몰골은 더더욱 비참했으나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을 듯 했다. 오히려 이 어색한 상황에 익숙해지지 못해 방황하는 것 같았다. 그의 모습이 욱신거리는 제 신경을 자극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편파적인 반응이었으나 꽤나 타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카와는 떨고 있는 그의 손을 마주잡고선 나지막하게 말했다.

 "많이 추우십니까."

 "아니 …, 괜찮습니다. 손 떠는 건 습관같은거라."

 그 후로 둘의 침묵만이 적적한 공기를 갈랐다. 갇혀있는 텁텁한 공기에 흐릿해진 정신을 부여잡고선 주차장에서 빠져나왔다. 방송국에서 가게까진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가게는 꽤나 아담한 편이었다. 옅게 흩어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어두컴컴했던 가게의 불이 켜지자마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가게의 깔끔함도 한 몫 했거니와, 그것보다도 분위기의 문제였다. 솔직히 말해, 맞춤정장이라고 들었을 때 이런 분위기를 상상했던 건 아니다.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 벽지에 녹아있었고, 소품 하나하나에도 다 신경을 써 놓은 듯 한 느낌이었다. 오이카와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저런 남자에게 이런 취향이 있었다니-정도의 이질감을. 실은 우아하고 고상한 디자인이기도 했으나 살짝은 여성스런 아기자기한 분위기여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오이카와가 잠시 말을 끊자 마츠카와는 의아하다는 듯 오이카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깨닫고는 오이카와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런 분위긴지 알고 싶으신 겁니까?"

 "그걸 어떻게…."

 "그야 매번 찾아오시는 분들이 물어보시니까."

 "아…, 네."

 "실은 가게를 열기 전에, 이 가게 전체가 아틀리에였습니다. 그 때, 여성복을 만들던 친구가 있었는데, 일이 있어서 이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멍하니 가게를 바라보고 있던 오이카와의 앞을 스쳐지나가며 조심스런 시선을 보냈다.

 "제 아틀리에는 저깁니다."

 조심스레 내뱉은 말과 손이 오이카와를 안내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쪽문을 열고 내려가니 반지하로 된 아틀리에가 있었다. 그곳도 가게 못지않게 화려했다. 오이카와는 눈으로 주위를 훑으며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마츠카와는 치수를 재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오이카와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이어 마츠카와는 그를 불렀고, 그는 조용히 마츠카와에게로 다가갔다.

 "오이카와 상, 잠시 이쪽으로."

 오이카와는 정장 자켓을 벗고 마츠카와가 지시하는 대로 몸을 세우자 그는 조심스레 오이카와의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딱딱하게 긴장한 오이카와의 근육이 얇은 셔츠사이로 살짝 드러나자, 마츠카와는 치수를 재면서도 그 쪽으로 신경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혼자 감탄하며 오이카와의 근육을 쓸어내리고선,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을 이어갔다.

 "역시 운동선수라 그런지 비율이 좋네. 근육도 잘 짜여져 있고. 특히 이 부근이."

 "아…, 마츠카와 상!"

 오이카와의 들뜬 한숨에 마츠카와는 놀란 듯 바라보았으나 붉게 상기된 볼 말고는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손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치수를 재겠다는 핑계를 두고, 팔의 길이를 재는 동안에도 한 쪽 손과 줄자의 끝부분은 오이카와의 손에 닿아있었다.

 "불편하면 말 놓아도 됩니다. 맛층이라고 불러도 좋고."

 "그게 아니고…!"

 "그럼?"

 "그, 거기, 손 좀 놓아주셨으면 하는데."

 오이카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치자 마츠카와는 변명거리를 떠올려냈다.

 "아…, 아니, 세터라서 그런지 손이 예쁘길래 나도 모르게 그만."

 "…조금 춥네요."

 오이카와는 납득한 표정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하는 그를 보며 마츠카와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겨울이니까요. 감기 들겠다. 아, 그리고 기장은 다 쟀으니까, 다 만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젖은 옷은 제가 세탁해 드릴 테니 일단 이거라고 입고 계세요."

 그가 내민 건, 청바지와 정장 셔츠, 니트였다. 오이카와는 아틀리에에 딸린 작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고, 세탁물은 마츠카와에게 건넸다. 그의 옷인지 좀 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적당히 맞았다. 추위에 감기 걸려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막상 그의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다기 보단, 조금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냥 세탁비만 받아서 와도 괜찮았을 법 한데 할 일도 없는 나머지 그냥 따라와 버린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치수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다시 돌아와선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저, 혹시 모델 해 볼 생각 없습니까?"

 "모델이요?"

 "네. 피팅모델."

 "저, 내일부턴 일자리를 찾아봐야 해서, 그건 안…."

 "월급도 드릴 테니까."

 잠시 월급이란 소리에 혹 빠진 오이카와는 고민에 빠졌다. 옷까지 만들어 주신다는데, 좋은 기분으로 흔쾌히 수락했다. 마츠카와는 꽤나 기뻐했다. 오이카와에게 집 주소를 물은 뒤, 서로의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가게 문 앞에서 둘은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럼 내일부터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내일 봬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0시까지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맞춰서 오겠습니다."

 마츠카와는 오이카와를 보내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게로 들어갔다. 곧이어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다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이카와가 다시 돌아온 건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오이카와가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웃으며 들고 있던 대본을 흔들어 보였다. 마츠카와는 대수롭지 않게 그의 손에서 대본을 뺏어갔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둘의 공기를 갈랐다. 아카아시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고, 마츠카와는 그 큰 손으로 아카아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다는, 격려의 의미로.

 아카아시는 오이카와가 붙지 못했던 오디션에 단번에 붙었으며, 주연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마츠카와로부터 충격적-이라기 보단 난감스러운- 소식을 전해 받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마츠카와는 아카아시에게 이제 피팅모델은 그만 해도 되겠다는 통보를 했다. 아카아시는 아쉬워하면서도 알겠다고 말했다.

 둘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잠시 가게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마츠카와는 가게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카아시를 배웅했다. 마츠카와는 세탁할 오이카와의 정장과 아카아시의 정장을 챙겨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가는 마츠카와의 모습을 계속 뒤돌아보면서도 아카아시는 재빠르게 거리를 벗어났다. 조금, 추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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