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宰


 꿈이었다. 꿈 속은 검은 물로 가득 차있었다. 나는 그 위를 걷고 있었다. 신발도 신고 있지 않았다. 맨발로 물 위를 걷는 기분이란, 실로 미묘한 것이어서 발바닥에 닿는 그 느낌마저도 이상했다.
 꼭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청아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진동해 제 귓가를 울리는 것과 동시에 먹먹한 정적만이 그 공간을 끊임없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고요가 내 귓가에 잠식했을 때야 나는 두려움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 발목을 휘어잡는 그 창백한 손은 발길질 한 번만으로 꺾일 것만 같이 섬약하게 보였다. 귀는 이미 먹먹해져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아까의 그 잔청이 계속 울려댄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푹꺼진 어둠의 심연에 허우적대던 그 하얀 손을 잡아올린 건, 얄팍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 미묘하지만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형체가 보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부서질 듯한 연약한 손목을 잡아서 끌어올렸다. 그-사실 그라고 명명하기에는 너무 예쁘장한 여자아이 같은 모습이었던 남자아이-가 물에서 끌려나오던 순간, 눈을 떠버렸다. 허망한 꿈이 스치듯 사라졌다. 언뜻 기억나기에 어두컴컴한 곳이었던 건 기억나는 데, 그 이후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가 백지처럼 하얘졌다.

 쿠니키다는 제가 가픈 숨을 내쉬는 걸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제게 다가왔다. 숙직실 소파에 기대 누워있던 나는 꿈을 떠올리다 말고 숨을 고르느라 바빴다. 그는 제 몰골을 보더니 그러려니 하며 가지고 있던 하얀 종이를 제게 건냈다.
 나는 그에게서 종이를 받아들고 머리를 대충 정리한 뒤 숙직실을 나섰다.  그도 나를 따라오며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뭔데?"
 "거기 적힌 그대로."

 모르겠다는 둥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쿠니키다는 제게 퉁명스레 답했다.

 "그래서, 내가 이걸 맡으란 말야?"
 "어쩔 수 없잖아. 상부에서 지시 내려온 거고. 너 같이 머리 텅빈 놈은 가서 따질 수라도 있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잖 …, 어이! 다자이!"

 쿠니키다가 뒤에서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으나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나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그가 건넨 그 종이를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뒤를 돌아 쿠니키다를 바라보았다.

 "미안, 나 지금부터 자살하러 갈꺼니까, 알아서 잘 부탁하네!"

 그러고는 뛰쳐나가는 제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뭐 씹은 표정으로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그가 꽤 재미있어보여 나가기로 한 건 잠시 미루고 구석에 숨어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내 주변을 쫓아다니던 아츠시가 쿠니키다에게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아까 했던 말들을 다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쿠니키다의 뒤에서 아츠시가 말을 건냈다.

 "저러고도 어떻게 자살예방 캠페인 프로젝트를 맡으셨대요? 학교에선 저런 인간을 받아준답니까?"
 "저 놈이 가겠다고 한 게 아니라, 학교에서 하도 사정해대서 받아준 거랜다. 그 알량한 말솜씨로 애들한테 이상한 말이나 지껄이다 올걸."
 "그래도 조금 …."
 "상관없어. 일 내면 자기가 알아서 수습할 테고, 적당히 저 잘난 얼굴이나 보여주다 돌아오겠지. 걱정말고 순찰 준비나 해. 아, 그거 네가 맡을래?"
 "하기 싫다고 후배한테 막 돌리지 마세요. 상부에선 다자이 상한테 지시한 거라면서요. 굳이 또 제가 맡았다가 후쿠자와 상에게 한 소리 듣긴 싫습니다."
 " …뭐, 하기 싫음 말고. 빨리 챙기기나 해."
 "예."

 지극히 그들다운 대화였고, 그 특이점 하나 없는 평범란 말들에 지겨워졌기에 일어서려던 찰나, 아츠시 군이 저를 쳐다보며 안쓰러운 눈빛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호의는 보이지 않았다.

 "다자이 상."
 "무슨 일이라도?"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제 모습을 보더니 못미더운 얼굴로 제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나는 구부정하게 화분 뒤에 숨겼던 몸을 세웠다. 아츠시 군은 걱정스럽단 얼굴로 다시 한 번 제게 물어보았다.

 "그거, 정말 하실겁니까."
 "위에서 내려온거라고. 거절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정부의 개라고 불리는 놈인데 이런 거 하나 못 할까. 자고로 충성스런 개한테 내려지는 달콤한 보상은 상상하는 그 이상이란 말이지, 아츠시 군."
 "준다해도 필요없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다녀오겠네. 자살예방교육은 자네에게 맡기지."

 코트 주머니에서 그 하얀 종이를 꺼내들고 흔들거리자 아츠시 군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난 여기 다녀올테니, 학교가는 건 쿠니키다 군에게 잘 말해서 자네가 갔다오고."
 "그건,"
 "괜찮네, 학교에서도 별 신경 쓰지 않을 걸세. 그럼, 부탁하네."

 허망한 표정으로 제 얼굴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츠시를 뒤로하고 서를 빠져나왔다. 하여간 그 꼰대. 무슨 일이든 나한테 맡기지 않으면 좀이 쑤시나 보지. 나는 종이를 다시 펼쳐들었다. 바람에 펄럭이던 종이 안에서 붓으로 쓰인 정갈한 글씨체가 흔들렸다. 대체 요즘 시대에 사내 유선 전화로 통보해도 될 걸 왜 굳이 종이에 서써 전보를 보내냐 이거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글자를 읽어내렸다.


「다자이 군, 여기에 좀 다녀오게나. 위치는 밑에 사진으로도 찾을 수 있을게야. 자네가 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밤마다 비명소리가 들린다는데, 말 좀 잘해보게. 민원신고가 끊이질 않아.」


 민원신고, 라니. 고작 민원신고 때문에 내가 가야하는 건가. 그런거라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나카지마 군이나 타니자키 군에게 맡겨도 상관 없었을 텐데. 내가 가지 않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란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결코 좋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혹여 성도착증 환자라든가, 정신나간 미친 놈이 날뛰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사진 밑에는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쓰여져 있었다.

 
「서에서 나와 직진하다보면 공터가 하나 나올텐데, 멈추지 말고 쭉 걷게나. 그러다보면 집들이 드문드문 거리가 멀어질 거야. 그러다 마지막에 허름한 집이 하나 있을거야, 빨간 우체통이 있는.」


 사진을 보며 찾다보니 어느새 시야에 빨간 우체통이 보일만큼의 거리에 다다랐다. 하지만 서에서 그렇게 먼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를 힐끔거리던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자기네들이 민원 넣어놓고 이리 내빼도 되는 건가. 이 궂은 일을 계속 도맡아온 타니자키 군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저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약간의 정보라도 얻으려 말을 걸어보려 했으나 다들 제 몰골을 보곤 자리를 피하거나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별 수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뒤에서 한 여성이 제 코트를 잡아 끌었다.

 "어디서 오신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긴 들어가지 말아요. 악마가 사는 곳이야, 거긴. 거기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해요."
 "경찰입니다."

 경찰증을 꺼내 보여주자 덜덜 떨던 여자의 등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듯해 보였다. 

 "민원신고 받고 왔습니다. 저기 사는 사람에 대해 뭔가 아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기 사는 괴물은, 그건…."

 주저앉아 이상한 언어를 쏟아내던 여인을 진정시킨 후에야 나는 그 집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열려있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열리는 현관문을 조심히 열어 젖히고선, 미세하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두운 그 집에 발을 내디뎠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곳이었다. 마치 그 꿈 속에서의 어둠과 같은 ….

 "누구 있으십니까? 이웃에서 민원 신고를 넣으셔서 부득이 하게 들어왔습니다만…,"

 손을 더듬어 벽에 있던 스위치를 누르자 천장에서 불이 깜박거리며 희미하게 자취를 남겼다. 빛의 잔상이 어린 그 단칸방에 있던 건 다름 아닌 소년이었다. 그것도 아주 앳된, 어린 소년.
 몸을 감싸 방구석에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그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안쓰러워 보였다. 툭 튀어나온 뼈마디마디가 고통스러워 보였으며, 한 몇 달은 굶은 듯한 얼굴에 핏기조차 없어 창백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 그 새에 인기척을 느끼고는 느릿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마저도 흐릿했다. 삶의 의미를 잃은, 곧 죽을 때를 앞둔 노인네처럼 그의 눈에는 공허만이 가득했다.

 "부모님은…어디 계셔?"
 " … …."
 "여기 집에서 밤마다 소음이 너무 심하다고 민원이 들어왔는데, 혹시 부모님이 밤마다 싸우고 그러시니?"
 " … …."

 소년은 나를 응시하다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돌리고선, 벽을 마주보고 앉았다. 빨리 나가달란 의미였을까. 나는 눈을 한 번 치켜뜨고는, 그 가냘픈 뒷모습과 섬약해 보이는 목덜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혈흔인지 모를 붉은 반점이 낭자하게 목덜미에 울긋불긋 나있었다. 한편으론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으나 상처가 난거라 단정짓고는 그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집을 나서는 도중, 현관에서 몸을 뒤돌던 찰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눈이었다.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며 예의 어떤 광명을 찾은 듯했다. 그 애절한 눈빛은 마치 자신을 여기서 꺼내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이 지독하고 차가운 감옥에서.

 "나중에 다시 올게."

 소년은 아직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틈새로 보이던 그 표정은 두려움과 맞먹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름 정도는 물어 볼 걸 그랬다.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서로 돌아가려던 찰나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여자가 제 앞에 마주섰다.

 "들어갔다가 뭔 일 없었죠?
 "예? 어, 예, 아무일도."
 "저기 저 여편네가 그 애 생모인데, 2년 전부터였나? 저렇게 미친듯이 집에 안 들어가려고 발악을 한다고. 괴물이 있다는데 집에 들어가려 하면 저 여자가 막아서니까 신경을 안쓸래야 그럴 수가 있나."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아까 그 여자가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쯔쯧, 여자가 미친게야. 악귀에 씌인거지. 하루는 남편이랑 몰래 저 집에 들어가 봤는데 애가 하나 있데? 그런데 애 상태가 이상했어. 막 뭐에 홀린 듯 떨고있긴 한데, 애 몸에 상처가 막 나있는 거야.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니까 애가 말리기에 그만, 이제까지 말 못하다가 최근에 들어서 밤마다 저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신고했지."
 "잘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는 김에 저 여자도 어떻게 할 수 없나? 낮만 되면 집 안에 귀신이 있다느니 그러면서 밤만 되면 조심스레 슬금슬금 집으로 들어가는데 낮마다 행패를 부리는 걸 어찌 가만 두고 볼 수가 있나. 어디 정신병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잘,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라는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그녀의 눈빛이 나에게 닿는 그 순간순간의 찰나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자는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외면했다. 경찰이라고 소개한 제 시선을 피하고, 마치 자신이 무언의 죄를 지은 죄인인 마냥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급기야 내가 그녀와 시선을 맞추려 가까이 다가갔을 적 마저도 손을 내저었다.

 "부인, 말씀을 좀,"
 "난 할말 없습니다. 쟤는 악귀에 씌인거라고, 것도 남자 홀려먹는 악귀! 대체, 대체 왜…."
 "부인,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난 잘못한거 없다고! 그건 악귀 때문이야. 불쌍한 내 새끼 몸에 더러운 잡귀가 들어가서…, 그래서…."

 흐느껴 우는 여자에게 더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기에 그냥 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많이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서 그런지 서로 가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곧장 서에 도착해서 그들 모자의 신상을 찾아보았다. 어머니인 여자는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러는 반면에 그 아이는 찾기가 힘들었으나 몇 번의 추적 끝에 그의 신상을 찾아냈다. 사진도 없고 다른 정보조차 불분명 한걸 보면 미성년자인 듯 했다. 18살, 이제 곧 성인이 될 나이였다. 순간 그 소년의 유약한 몸이 떠올랐다. 부러질 것만 같은, 고작 14살 정도 되어보이는 그 마른 몸이 이제 성인이 될 청년의 몸이란 게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단 걱정이 앞섰다. 슬슬 여자의 말이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 애는 악귀가 씌인거야, 것도 남자 홀려먹는 악귀 …! 그러니까 가까이 다가가지 마. 무언의 경고와도 같은 압박이 가슴을 억죄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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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리에프×일일 스타일리스트 야쿠



 "애인이 챙겨주셔서 좋으시겠어요."
 "네, 이게 다 애인 잘 둔 덕이죠."
 "오늘도 다른 여자모델과 촬영하면 여자친구가 섭섭해 하겠는데요? 괜찮으시겠어요?"
 "아아, 부끄러운데여. 제 애인은 별로 상관 안 쓸거에여. 저는 단 한 번도 그 사람한테서 눈을 뗀적이 없거든요. 지금도."

 그러고선 지긋이 벽뒤에 몸을 숨긴 제 모습을 바라보는 리에프를 찡그리는 눈으로 그만하라고 제지하고선, 그대로 의상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붉어진 볼을 붙잡고,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리에프는 야쿠를 보며 미소짓고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곧 있으면 화보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아직까지도 세간에 알려진 열애설은, 일반인과 연애하는 모델 리에프였으나 사실은 달랐다. 자신의 여자친구는 남자였고, 그렇다고 야쿠가 제 스타일리스트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제 촬영장을 쫓아다니며 날 바라보는 야쿠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한 번쯤 꼬집어 주고싶을 정도였다. 원래라면 누나가 왔어야 할 촬영장이었으나 오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누님대신 야쿠상이 온 것이다. 야쿠는 오늘 일일 스타일리스트로 제 의상을 체크해 줘야할텐데. 의상실로 들어가자 주저 앉아선 벌겋게 달아오른 야쿠상이 있었다.
 야쿠에게로 다가가자 얼굴을 가리고선 가까이 오지말라는 야쿠의 말을 무시하고선, 그에게로 다가섰다. 야쿠 상을 일으켜 세우자 그는 달아오른 얼굴을 그 작은 손으로 가리고선, 제 품으로 파고드는 그가 귀여워서 한 번 안아주었더니 더 볼을 붉힌다. 암튼 귀여워, 정말.

 "야쿠상. 고개 들어봐요."
 "응."
 "여기 봐. 완전 빨게졌네. 그렇게 부끄러워요?"
 "일단 옷 골라줄게 가만히 있어봐."

 야쿠는 볼을 계속 매만지며 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옷을 꺼내고 건네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나는 그에게서 옷을 받아들고선, 옆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클래식 정장컨셉으로 웨딩컨셉 화보였는데, 굳이 보자고 하면 조금의 관능미를 더한 웨딩컨셉 화보랄까. 여기서 중요한 건, 웨딩 '컨셉' 화보였다. 절대 그 상대 모델과 하는 웨딩 화보가 아니었다. 나도 사진 감독님만 아니었다면 야쿠상이랑 진짜 웨딩사진이라도 찍었겠지. 둘이서. 하지만 이건 일이었고,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다른 건, 생각치도 못했다.

 "나 촬영하고 올 동안, 가만히 있어여."
 "걱정마. 내가 너냐."
 "열심히 하고 올게여."

 야쿠 상을 뒤로 하고, 상대 모델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서 촬영시간이 거의 2시간 정도가 흘러있었다.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사진감독님의 말에 의상실로 돌아가니 야쿠상이 곤히 자고 있었다. 내 애인은 어찌 저리 귀여운지,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야쿠의 머리결을 쓰다듬자 눈을 비비며 야쿠가 일어났다. 아, 깨우려던건 아니었는데. 미안함에 야쿠상의 얼굴을 매만져 주니 좋다면서 계속 비비적 거리며 제 품으로 파고드는 야쿠상을 제 무릎에 앉혔다. 아직까지 잠이 덜깬 야쿠상이 꾸벅거린다. 나는 졸린 야쿠상의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선 좀 더 쉬라고 이른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촬영장으로 나갔다. 이미 야쿠가 의상을 골라놓은 뒤였기에 쉽게 입을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오늘도 또 매치가 안 맞는 옷을 입고나가 감독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을 뻔했다. 하지만 오늘은 야쿠상이 있었기에 그런 일은 면했다.

 그 후 여러번의 촬영 뒤, 의상실로 들어서자 두 눈을 껌벅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야쿠상이 보였다. 나는 그를 두 팔로 안고선, 달콤하게 속삭였다. 야쿠상도 싫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흔들면서도 계속 품으로 파고들었다. 비로소 그가 팔을 벌려 제 품에 완전히 파고 들었을 때, 나는 그를 안아 올려 의상실 밖으로 나갔다. 촬영장 안에서는 이미 촬영이 다 끝났으므로 양해를 구하고 스튜디오를 잠시 쓰겠다고 이른 뒤, 야쿠상에게도 옷을 입혀주었다. 둘다 정장을 입고 있으니 진짜 웨딩화보 같기도 하고, 프로포즈하고 싶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야쿠를 안아들며 말했다. 야쿠상, 좋아해요. 이런거 밖에 못해주는 나라도, 사랑해 주실래요? 감독님은 가볍게 몇 번 셔터를 누르시더니 싱긋 웃어보였다. 야쿠는 촬영 중이란 것도 인식하지 못한채로 리에프의 품에 파고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둘은 가볍게 버드키스를 나누었다. 둘의 달콤한 장면을 놓지지 않겠다는 감독의 열혈한 의지로 서로는 정답게 사랑을 나누었다. 둘의 밀어는 사진감독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고 나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던 야쿠였다. 야쿠는 리에프를 안으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난 너 많이 좋아해.

 "사랑해, 리에프."
 "저도, 저도 그래여."

 둘의 밀어는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서로의 입에 결국 먹혔으나 다시 흩어진 밀어가 서로의 귓가를 자극하기 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둘은 계속해서 사랑을 속삭였다. 마치 정말 신혼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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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해는 금물

 

 

 

 오이카와는 뺨 끝에 남은 마츠카와의 진득했던 눈길을 곱씹으며 방송국까지 걸음을 옮겼다. 붉게 물든 왼쪽 뺨 언저리에는 마츠카와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손끝이 주는 감각에 오이카와는 약간의 온기를 느꼈으나 찬바람에 이내 그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마츠카와의 시린 웃음이 눈앞을 가렸다. 처진 눈 아래로 떨어지던 그의 잔해가 바닥을 뒤덮고선, 오이카와는 그 잔해 위에서 유영하던 한 마리 물고기였다. 펄떡이던 그의 숨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가. 마치 심해 생물처럼 깊은 바닷속을 누비며 느릿하게 바닥을 훑고 지나가고, 제 살결에 닿은 그의 손길은 점차 옅어져갔다. 심해의 묵직한 것에 눈길이 팔려있을 때 즈음, 연하게 쓸어내리는 그의 목소리가 탁하게 귓가를 울렸다.

 -내일 봅시다.

 그 말에, 단 한마디에 그렇게 녹아내렸던 것이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차갑게 얼어붙은 볼을 매만지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걷히고, 눅눅한 공기가 주위를 감싸자 오이카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눅진하게 얼어붙은 그 곳의 공기가 싫은 탓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었으나 비온 후의 습한 공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단지 맑은 날을 더 좋아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오이카와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고서 차의 시동을 걸고 추위를 녹였다. 차 안의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에 귓가가 웅웅 울렸으나 금세 그의 잔해가 다시 귓가에 가득 찼다. 오이카와는 애써 그 이질적인 감정을 마음속에 담으며 그를 지우려 노력했다.

 집에 도착하자 저를 맞이하는 건 차갑게 식은 냉기 어린 방이 아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손부터 들이 밀었다. 착잡하게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건네주고서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죽 훑으며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분명 자신의 권유로 현관 문 비밀번호를 알려줬었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선수생활로 집을 비울 때마다 항상 오피스텔에 와서 생활했었으나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했을 거라곤 생각을 못했었다. 오이카와는 머리를 긁적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따뜻한 온기가 불어 들어왔다. 이와이즈미는 술상을 거하게 차려놓고선 오이카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는 가볍게 맥주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앉히고선 냉장고에 캔 맥주를 가지러 갔다. 오이카와는 코트를 벗으며 앉았는데, 찝찝함에 샤워를 하러 가자니 이와이즈미의 호통이 두려웠다. 그는 이미 냉장고에 남아 있던 술 한 병을 다 마신 뒤였고, 조금 취해있었으나 아마 제가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면 불같이 화낼 터였다. 두려움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오이카와는 다소곳이 앉아 이와이즈미를 기다렸다. 그가 준비해놓은 맥주잔을 받아들었다. 거하게 들이 붓는 대담한 그의 손길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있었던가. 내일 일하러 가야하는데. 거부하기엔 이와이즈미의 주정이 너무나 두려웠기에 그냥 마시기로 했다. 시원스레 넘어가는 샛노란 액체가 목 끝을 적셨다. 오이카와는 반 쯤 정신을 놓았고 , 그 후로 이와이즈미가 건네는 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마셨다. 뻗은 게 누가 먼저라고 말할 수 없었으나 확실한 건, 이와이즈미의 필름이 끊겼을 때 자신은 아직 소주잔을 홀짝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잔을 깔끔하게 비우고서야 골아 떨어졌었는데, 한 2시간 정도 후에 이와이즈미가 다시 깨어나선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혼탁한 시야를 그에게 맞추고선 그를 바라보니 그는 멀쩡한 얼굴로 술을 한 병 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눈을 찌푸리곤 흐릿한 눈길을 그의 얼굴에서 병으로 떨어뜨렸다. 그 존재를 보자마자 놀란 오이카와는 이미 신경에 먹힌 몸을 억지로 세우며 그에게로 다가가려 했으나 이미 그는 술병을 따놓은 뒤였다.

 '천사의 유혹'. 구하기 힘들어서 엄청 독한 마음을 먹고 산 거였는데.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 나갔을 지도 모르겠다. 이와이즈미는 가볍게 웃으며 다시 술잔에 '천사의 유혹'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구한 건데 저게. 그 개 같은 선배님을 통해서 얻은 거란 말이야. 이제 구할 곳도 없는데, 어쩌지. 작은 술잔에 깔끔하게 채워진 그것을 보고 있자니 오이카와는 현기증이 밀려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친구고 뭐고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오히려 자신이 쫓겨날 수도 있었다. 만취한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만취한 오이카와 토오루보다 힘이 세니까. 오이카와는 굳게 쥔 손을 풀었다. 체념한 상태로 다시 받아드니 그는 쉴 새 없이 제 잔으로 쏟아 내고 있었다. 쓰디 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40도에 달하는 독한 술이라 조금 씩 먹으려고 했는데 이미 후회는 지나간 뒤였다. 천사의 달콤한 유혹이 귓가를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나를 부르는 마츠카와의 목소리와도 닮아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천사의 유혹을 다 마시고선, 빈 병을 짤랑대며 다른 술을 찾았다. 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이번에도 이와이즈미의 손이 빨랐다.

 "그거, 그러니까 그건."

 "이게 뭐야아? '백년의 고독'?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했대? 나 먹어도 되냐?"

 "아, 그거 구하기 어려운데…."

 "쿠소카와. 이런 건 좀 나눠먹고 하는 거야. 응?"

 애석하게도, 이와이즈미는 애교 섞인 말투로 투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저만 알고 있는 주사였는데, 그는 처음엔 묵묵히 잘 마시다가 어느 정도가 넘어가면 기절하더니 한 두어 시간 뒤에 다시 일어나서 술을 다시 퍼마시는 것이었다. 일어나서 마시는 주량은 그 전보다 작았으나 도수가 문제였다. 그래서 매번 제 양주가 없어지는 탓도 저 놈 짓이었고, 그 끝에서 눈물짓는 건 오이카와였다. 사실 오이카와는 선수 기간 동안 술은 거의 마시지 못했고, 경기 끝나고 맥주나 홀짝이는 정도였다. 반면에 이와이즈미는 제가 힘들게 구해놓은 비싼 양주들을 뺏어 먹고선 미안하다고 물렀다. 그것도 늘, 항상.

 저 놈은 왜 술에 그렇게 취했는데도 발음도 무너지지 않는 건지 오이카와는 내심 궁금해졌다. 이와이즈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빠르게 줄어드는 술병을 보며, 이미 체념한 채로 그냥 들이켰다. 타들어가는 술의 여운이 짙게 물들었다. 깊게 쏟아지는 잠도 눈 주변에 머물렀다. 저런 독한 술을 다 마시겠다고 계속 따르는 이와이즈미도 대단했으나, 그걸 또 받아먹는 오이카와는 자신이 꽤나 한심하다고 자책하며 고꾸라졌다.

 난방은 또 왜 이렇게 세게 틀었는지 오이카와는 슬슬 올라오는 취기에 자면서 옷을 벗어던졌다. 실은 의식이 없었던 터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와이즈미도 덩달아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난방을 끌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뜨거운 술기운을 들이키며 깔아놓은 이불 위로 몸을 눕혔다. 이와이즈미도 남아있던 술을 다 마셨는지 제 옆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렇게 어영부영 정리하지도 않은 채 그들은 기나긴 잠에 취했다.

 다음 날 먼저 일어난 건, 이와이즈미였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정장차림의 키 큰 남성이 이와이즈미의 앞에서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주위를 번갈아 봤고, 손에 들려있는 쪽지도 훑었으나 무슨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 오이카와 토오루 씨네 집이 아닙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아, 저는 마츠카와 잇세이라고 합니다. 오이카와의 직장 동료죠."

 정확히는 오늘부터. 덧붙이려던 말을 생략하니 한껏 어색해진 분위기를 차마 이끌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누구지. 오이카와 씨랑 동거하는 사람인가. 오이카와, 그렇게 안 봤는데 남자관계가 꽤 문란하네, 와 같은 생각을 머릿속으로 덧붙이고 있던 도중에 현관문 밖으로 튀어나온 그 남자의 손이 마츠카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마츠카와는 잠시 당황해서 멱살 잡은 손을 제지하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 생각을 읽힌 기분이었다. 아님 무의식에 입 밖으로 내뱉어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겠는가. 남자는 트렁크 한 장만 걸친 채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텁텁한 보일러의 공기가 터져 나오는 방안에서 붉게 물든 얼굴로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보이는, 오이카와로 추정되는 발과, 널브러진 이불은 오해사기 딱 좋은 구도였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마츠카와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그 망할 선배 새끼냐? 오이카와가 끔뻑 죽어 못산다던 그 개새끼? 시발,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난 선수도 아니니까 선배고 뭐고, 이 지랄 할 것도 없거든? 그러니까 입 꽉 물어라. 턱 빠질, 커억."

 이와이즈미의 소란에 오이카와는 흐릿한 눈길을 현관으로 향했다. 문 사이로 보이는 검은 정장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 위로 보이는 입술도, 코도, 눈도 전부 익숙했다. 맙소사. 그 사람이었다. 시계를 바라보자 나가기로 약속했던 시간은 넘어간 후였고,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찾으러 온 거였나. 오이카와는 재빨리 현관으로 나가서 그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제지했다.

 "그만해, 이와쨩. 개선배 아니니까 그 사람한테서 손 떼."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조금 미묘했다. 아마도 그것은 어제 무의식적으로 벗어낸 옷가지들이 현관 뒤에 널브러져 있고, 오이카와의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쳐지지 않은 탓일 테다. 차가운 바람이 현관에서 방 안으로 퍼져들어왔다. 서늘한 공기가 살결에 닿자, 그의 시선 곳곳이 제 몸으로 향했다. 그것은 수치스럽다기보다 어쩐지 미묘한 시선에 가까워서, 대놓고 가리기에도 뻘쭘한 상황이었다. 여자애도 아니고, 같은 남자끼리 가리긴 왜 가려. 이런 느낌? 하지만 현관 앞에서 외간남자에게 알몸을 보이기에는 조금 수치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는 소꿉친구인 이와이즈미와 달랐을 뿐더러 겨우 어제 만난 사람이었다. 목욕탕에서 서로의 몸을 끈적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단 한번 만날 뿐인 남남이 아니라 오늘부터 직장상사가 될 사람. 오이카와는 잠시 생각하더니 급히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와쨩, 나 갔다 올게."

 "어, 그래. 갔다 와서 얘기하자."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현관을 나섰다. 마츠카와는 그런 오이카와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더니 궁금한 질문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긴 누구집인지, 저 사람은 누군지, 밤에 뭘했길래 상태가 이런 건지 등을. 오이카와는 쏟아지는 질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애써 온전한 정신을 붙잡으며 그의 질문에 응했다.

 "그러니까, 제 집인데요, 쟤는 친구고 오늘 쉬는 날이라 잠시 놀러온 것뿐인데. 아, 밤에는 술 밖에 안 마셨어요!"

 "술은 왜?"

 왜냐니. 저 새끼가 소주 광이라서 그렇지. 사실 다른 놈들 중엔 이와이즈미를 상대할 자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말하기 어려운 질문에 머리만 긁적이며 살짝 미묘한 웃음을 흘겼다.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모델 되려면 그렇게 마시면 안 돼."

 "아, 네."

 "다음엔 내가 살 테니까, 친구는 떼놓고 와. 알겠지?"

 그럴 필요는 없는데. 자연스럽게 놓은 말도 인지하지 못한 채 오이카와는 고민했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주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와이즈미에게 물었을 때, 애교부리는 게 주사라고 듣긴 들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걸 보면 혹여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오이카와는 대충 알겠다고 끄덕이며 그의 차를 타고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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