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宰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노곤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걷기는 힘들 것 같아 그를 차에 태워 서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멍하니 있던 아츠시가 저를 발견하고는 순순히 밖으로 나왔다. 아츠시 군은 제 뒤에 숨어있던 아쿠타가와를 보고선 의문을 내던졌다.
 
 "저기, 다자이 상? 그, 거기 그 사람은 누구…,"
 "걔."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그는 의문형의 대답만 계속 내뱉었다.

 "네?"
 "집에 갇혀 있다던 그 민원신고의 주인공이다. 잘 돌보고 있어. 후쿠자와 상한테 갔다올테니."
 "네? 네…."

 조금 불안한 얼굴로 제 옷깃을 잡고있던 아쿠타가와의 손을 잠시 떼어놓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장실 앞에 서서 문을 가볍게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후쿠자와 상은 고양이를 매만지며 또 다른 사건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여간 저 노인네, 고양이 좋아하는 거 때문에 위층 공기가 너무 탁하다니까. 두어번 손을 휘휘 내젓고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후쿠자와 상은 무슨일로 올라왔냐며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알고 보낸겁니까."
 "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도 좋고."
 "그럼 이제 저 아이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자네가 맡게."

 본부대로. 나는 별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곧장 서장실에서 빠져나왔다. 밑으로 내려가자 그가 불안한 듯 의자에 앉아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신경쓰이는지 아츠시 군은 진정시키려 했고, 쿠니키다는 그걸 보는 것 마저도 귀찮은지 아츠시 군에게 그만두라는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쿠타가와에게 다가가자 그는 몸을 흠칫 떨면서도 공허한 눈은 유일하게 나를 응시했다. 가볍게 미소짓자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지만.

 "아, 참. 다자이 상. 아까 후쿠자와 상이 귤을 좀 사오셨던데, 드릴까요?"
 "몇 개만."

 아쿠타가와는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아츠시 군에게서 귤을 받아들어 그에게 건네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 손을 떠밀었다. 턱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제 손을 응시하며 입을 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다시금 그 집에서의 그의 행태가 떠올라 나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 귤을 싫어하는 건가. 그렇게만 짐작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그를 껴안았다. 그도 거부하지 않고 차분하게 숨을 내쉬며 안겼다.

 "아기고양이 같네요."
 "아기고양이라, 적절한 표현이군. 그렇지만 서내에서 애정행각은 삼가도록 해라, 다자이."

 쿠니키다가 담배를 피고 돌아오며 아츠시 군에게 뭐라 덧붙이고선 제게 시선을 향했다. 나는 못 들은 척, 시선을 피했다.
 아츠시 군이 멀리서 제게 물어왔다. 턱을 괸채로, 얼굴엔 불안함이 만연한 거짓미소를 띄운 채로.

 "그럼 어떻게 하실겁니까, 계속 그 집에 남겨두는 건…,"
 "걱정마. 내가 데리고 갈거니까."

 그러세요. 아츠시 군은 퉁명스레 대답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새 긴장이 풀렸던 모양인지 아쿠타가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불편해 보이는 선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남자들 같은 놈들한테는 안 보낼테니까 …, 근데 진짜 고양이 같네. 예민하고, 사람 경계하고…, 데리고 갈 수 밖에 없겠네."

 조금 걱정스런 다자이였다.



***



 "일어났나?"
 "여긴…어디,"
 "내 집. 넌 3일동안 잠이나 자고 있고,"
 "어머니는…,"
 "지금쯤이면 병원에서 이송했을 거야. 걱정하지마."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저는 이제…."
 "다시 간다고? 그 집에?"
 "그게 아니,"
 "여기서 살아. 그 놈들은 여기 못 찾으니까. 나중에 나랑 병원도 가야하고."
 "…네."

 이제는 영원한 봄이왔다. 더 이상 그를 괴롭힐 여지조차 남아있지 않은 까닭에 그의 마음은 결국 봄을 되찾았으리라. 한가지 두려운 점이 있다면 그건 필시 그가 나를 싫어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는 그와 소소한 애정을 나눌 생각이었다.

 나의 감정이 어느새 그에게 스며들었다. 봄은 쉬이 그를 반겼다. 나는 곧 그에게 있어 안기고픈 봄이 될 터였다.

 우리는 온 몸에 피어난 서로의 고독을 보듬고, 열을 나누면서 애정을 갈구할 것이다. 물론 먼저 다가서는 건 겨울이었다. 봄을 느껴보지 못한 소년에게, 봄을 느끼고픈 겨울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마주 안았다. 서로는 서로의 모순된 감정조차 숨기지 못한 채로 더욱 애절하게 서로를 마주했다.

 겨울은 곧 지나가고, 봄에 완연히 물들 것이었다.



천유의 흔적_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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芥川



 죽음만이 내가 살 길이었다고, 나는 한참을 뇌까렸다. 차라리 그 때 맞아서라도 죽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텐데.


 어머니의 남친들은 전부 젊고 어린 남자들이었다. 남편을 일찍 보내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 사라진 그녀는 나를 낳고 꼬박 10년 후, 매일 밤, 남자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5,6년 간은 잘 숨겨온 것 같았다. 문제는 어머니가 아닌 그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은 집으로 오면서 나를 눈독 들이고 있었던 건지 계속해서 내 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나를 숨기는 데 급급했지만, 나는 한 번씩 몰래 잠을 자지 않고 문 뒤에 숨어 밖의 상황을 염탐하기도 했다. 그 당시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피로에 젖어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날, 그 남자는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나를 범했다. 다른 남자도, 또 다른 날에 온 남자도 다 내게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로소 나는 악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게 내 나이 16살의 경험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들과의 관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역겨운, 어머니의 남친들과의 관계.


 반항해 봤자 돌아오는 건 손찌검 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당하기만 했다. 아니, 이제 익숙해 졌으니 당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도 남자들과 내가 관계를 가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와의 흔적은 날이 갈 수록 눈에 띄게 늘어났다. 어머니는 못본체 했고, 나 또한 감출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나와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단칸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나를 찾았다. 어머니는 그 꼴이 보기 싫으셨는지 항상 밖에 나가계셨다. 나는 다시 그 지겨운 생활을 반복해야 했다. 

 하루는 새벽에 잠이 깼다. 소리를 세게 지른 듯 목이 쉬어있었다. 어머니는 아무일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날은 밖으로 나가자 옆집 사는 사람이 날 보며 다짜고짜 화를 냈다. 밤마다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는 둥, 소리 좀 줄이라는 둥, 알 수 없는 얘기를 지껄였다. 무시하기로 했다.


 그로 부터 2주 후에 한 남자가 집으로 쳐들어왔다. 어머니의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민원신고가 들어와서 이 집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내 몸을 바라보는 그 두 눈이 역겨웠다. 남자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지껄이며 돌아갔다.






太宰



 그대로 서를 나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계속해서 그 소년의 여린 살결이 시야를 가렸다. 소년의 몸은 안타까울 만큼 말라있어서 그 몸에 닿은 것 조차도 죄가 될 것만 같았다.
 밤 중에 그곳에 다다랐을 때는 고요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후였다.
 소음에 대한 확인을 명목으로 내세워 그 집에 가는 도중이었다. 이따금씩 멀리 떨어진 집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담벼락 위에서 도도하게 걷던 검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르기도 했으나 '그 집'에서는 의심스런 정적만이 가득했다. 기어코 무언의 확답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계속 그 집앞에서 서있었다.
 순간, 집 안에서 비명소리가 터졌다. 여자의 높은 톤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묵직한 남자 목소리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 애의 비명이었다. 현관문을 탕탕 두드려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 소년의 비명 뿐이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점차 비명소리는 약한 신음소리로 변질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확인을 해보고 싶었는데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옆 마당쪽에 작은 창문이 열려있었다. 조용한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만, 그만 둬! 싫어, 아프단말야,하지 …마,"
 "아가, 아가, 진정해. 아가…,"

 여자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곧이어 여자도 약간 혼미한 정신으로 소년을 떼어내려고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저리가, 넌 악귀가 붙은게야, 이 빌어먹을 놈! 여자의 손이 소년을 내리쳤다. 여자는 꼴보기도 싫다는 듯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허망하게 남겨진 소년을 뒤로한 채, 문은 열려서 끼익대는 소음을 내고, 여자는 전화를 들고 남자를 찾고 있었다.
 몰래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 젖혀 있는 현관 문 사이로 그의 눈이 다시 한 번 더 나를 응시해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차가운 두 눈을 의식적으로 피하며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그 다음 날,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소년은 자고 있던 도중이었다. 밤새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는지 문짝은 닫혀있지 않고 열려있었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소년은 몸을 웅크려 뒤척이고 있었으며, 나쁜 꿈을 꾸는지 얼굴은 찌푸린 채였다. 나는 앉아서 그가 깨기만을 기다렸다.

 한 서너시간 쯤 지났을까. 오후가 되어서야 눈을 뜬 그는 가픈 숨을 내쉬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꿈이라도 꾼건지 사방을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사무라치게 놀라며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문이 열려 있었어. 너 잡으러 온 거 아니니까 걱정마."
 " ……."

 그의 목부근에 어제의 그 흔적보다 더 선명한 자국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이질적인 흔적이었다. 집 안에만 있었다면 저런 상처가 날 일이 없을텐데. 혹여 벌레에 물린 건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흔적이 너무 많았다. 목부근의 혈흔과 같은 자국을 확인하려 다가서려 하자 그는 손을 막 내저으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잠깐만, 그 목에 다친 건…,"
 "하, 하지…마, 하지…마세요. 싫어! 싫어! 하지마!"

 발악과도 같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소년의 가녀린 몸이 사시나무 떨듯 부서지고 있었다. 제가 다시 한 번 그에게로 다가가려 하자 그는 제 눈길을 피하며 계속 손만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그의 손목이 붙잡혔다.

 "괜찮아, 떨지마. 아무 일도 없을거야. 괜찮아."
 "으…읏,"
 "괜찮아. 아무 짓도 안할게."

 그는 그제서야 긴장을 서서히 풀며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그러나 여전히 저를 경계하고 있었다. 마주앉아 그의 등을 쓰다듬자 그도 어느정도 편해진 표정으로 느릿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잠깐만, 잠깐 위의 옷 좀 벗어 볼래?"
 "으, 으아으으,"

 경기를 일으킬 것만 같은 비명소리를 지를 준비를 하며 다시 그는 몸을 감쌌다. 이렇게 까지 온 상황에서 포기할 순 없었다.

 "잠깐만, 잠깐이면 되니까,"
 "싫어! 그만…, 만지지,"

 말란 말야…. 조심스럽게 잡고있던 그의 상의를 벗겨내자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며 몸을 웅크렸다. 등에는 온갖 시퍼런 멍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가관이네."

 나는 툭 내뱉었다. 그러자 그는 더 몸을 웅크렸다. 아아, 실수한 건가. 나는 그의 몸에서 나는 이질적인 향기를 느끼려 했다. 순간의 정적으로 깨졌을 그 묘한 향은 어미란 여자가 쓸 법한 향수도 아니었을 뿐더러 산뜻한 꽃향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제 기억의 흔적을 쫓아갔을 때, 그 이질적이고 묘했던 텁텁한 향의 출처는 분명 남자의 그것이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텁텁한 향도 그 향이었다. 밤꽃 냄새는 희미하게 후각을 자극했고, 그는 여전히 떨면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붉은 흔적이 목덜미에 낭자했고, 푸른 꽃이 등줄기에 가득했으며, 허옇게 들러붙은 정액은 그 모든 흔적을 증명하 듯 소년의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나는 떨고 있던 그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가서 욕조에 물을 채웠다. 적당히 따뜻한 물이 채워졌을 즈음 나는 그를 안아들고 욕조로 향했다. 그는 제 손길을 거부하며 벌벌 떨다가 가볍게 들려진 자신의 몸이 붕 떠있음을 느끼자 당황한 모양인지 더 이상 화내지도 못하고 가만히 제 품에 안겨있었다.
 제 목에 손을 두르고 떨고 있던 그를 욕조안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안쓰러워 보이는 몰골이었다. 깡마른 몸하며, 푸석해진 머릿결에, 온 몸에 가득 퍼져있는 시퍼런 멍. 그리고 목덜미를 뒤덮은 붉은 울혈까지. 무게마저도 이게 사람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심하게 가벼웠다. 얼굴은 병이 있는 환자인 마냥 시퍼렇게 질린 그를 진정시키려 어깨를 쓸어내렸다.

 "……."
 "아무 짓도 안해. 넘겨 짚지 마. 이런 연약한 몸뚱아리엔 관심도 없다. 너 안는 새끼들 처럼 파렴치한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힘 좀 풀고 가만히 있어. 나는 조곤조곤 속삭였다. 노곤한 몸이 점차 물 안으로 가라 앉고 있었다. 샤워기 헤드를 그의 머리에 가져다 대자 그는 사무라치게 놀라며 싫다고 패악을 부렸다. 가슴께로 튄 물이 짐짓 제 표정을 사납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시금 그의 난기를 진정시키려 웃는 시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옳지, 착하지. 가만히 있어."
 "거짓말 마세요. 그 남자들도 다 이런식으로…,"
 "거짓말 아냐. 진짜 이것만 하고 아무 짓도 안 할게."

 그러자 좀 누그러진 표정으로 몸을 웅크리며 물을 맞고 있는 그를 보다가 화장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샴푸를 집어 들었다. 적당량의 샴푸를 덜어내서 그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점차 불어나는 거품의 감촉이 그리 싫진 않은지 제 손에 머리를 기대면서도 거부하지 않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쿠타가와 군."

 이름을 부르자 흠칫 놀라며 의뭉스런 표정으로 저를 처다보는 탓에 쥐고 있던 샤워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제야 제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선,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게…찾아보려던 건 아니었고, 도움을 주려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어서…,"
 "……."
 "역시 아쿠타가와 군보다는, 류노스케라 불러야 하나?"

 그러자 얼굴이 붉어지며 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아쿠타가와를 보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는 지겹다는 듯 제게서 샤워기를 빼앗아서 머리에 묻은 거품을 씻어냈다. 그러나 깨끗하게 씻기진 않았는지 군데군데 거품이 머릿결 사이에 피어있었다.

 "머리에 거품 있어. 가만히 있어봐."
 "……."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야."

 제가 그의 등을 조심히 매만지며 묻자 그는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그게 이 애의 발언이든지 몸이든지 간에.

 "말하기 싫으면 말 안해도 돼. 그렇지만 널 여기서 빼내려면, 협조는 해야지?"
 "…간,"

 결국 그는 입을 여는 걸 택했다. 무어라 중얼거리는 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먹먹한 귀만 매만지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강…간, 그게 그러니까,"
 "강간당한건 알고있어. 누가 그랬는데."
 "아저씨들 …,어머니의…남자들이,"
 "알겠어. 그만 떨어."

 나는 그를 진정시키고는 마저 씻지 않은 몸에 거품을 낸 비누를 천천히 문질렀다. 벌어진 상처가 따가웠는지 그는 아,아 하고 신음을 내뱉다가도 어느 순간엔 익숙해져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다시금 그의 가녀린 몸을 보며 감탄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놀라움의 표시라기 보단 안타까움의 탄식이었다. 뼈밖에 보이지 않는 마른 몸에 남아있던 남자들의 흔적을 벅벅 긁어냈다. 그는 비로소 악귀를 쫓아낸 듯 했다.

 "…경찰서 가자."
 "……."
 "너 도와주실 분이 많이 계실거야. 좋은 데로 보내줄게. 그, 돈 많은 변태 노인네는 제외하고…, 좋은 가족 찾아보면 아마 널 받아 줄만한 곳도,"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그를 큰 수건으로 감싸며 도닥였다. 그는 금새 울음을 그치고 안정을 되찾았다. 왠지 제가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양이 같은 느낌이니까 후쿠자와 상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잠시 들었지만, 어쩌면 후쿠자와 상도 변태 노인네일 수도 있었기에 고민을 지체없이 접었다.

 "알았어, 알았어. 안 보내면 되잖아."
 "어머니는, 어떻게…,"
 "조만간 병원에서 나올거야. 거기 가면 의사 선생님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잘 돌봐 주실테니까 걱정할 필욘 없어."
 "……."

 그리곤 덧붙였다.

 "넌 나랑 가자."

 조금 싸늘해 보이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를 챙겨입혀 제 차-정확히 하자면 경찰차-에 태워서 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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