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리에프×일일 스타일리스트 야쿠



 "애인이 챙겨주셔서 좋으시겠어요."
 "네, 이게 다 애인 잘 둔 덕이죠."
 "오늘도 다른 여자모델과 촬영하면 여자친구가 섭섭해 하겠는데요? 괜찮으시겠어요?"
 "아아, 부끄러운데여. 제 애인은 별로 상관 안 쓸거에여. 저는 단 한 번도 그 사람한테서 눈을 뗀적이 없거든요. 지금도."

 그러고선 지긋이 벽뒤에 몸을 숨긴 제 모습을 바라보는 리에프를 찡그리는 눈으로 그만하라고 제지하고선, 그대로 의상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붉어진 볼을 붙잡고,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리에프는 야쿠를 보며 미소짓고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곧 있으면 화보 촬영이 있을 예정이었다. 아직까지도 세간에 알려진 열애설은, 일반인과 연애하는 모델 리에프였으나 사실은 달랐다. 자신의 여자친구는 남자였고, 그렇다고 야쿠가 제 스타일리스트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제 촬영장을 쫓아다니며 날 바라보는 야쿠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한 번쯤 꼬집어 주고싶을 정도였다. 원래라면 누나가 왔어야 할 촬영장이었으나 오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누님대신 야쿠상이 온 것이다. 야쿠는 오늘 일일 스타일리스트로 제 의상을 체크해 줘야할텐데. 의상실로 들어가자 주저 앉아선 벌겋게 달아오른 야쿠상이 있었다.
 야쿠에게로 다가가자 얼굴을 가리고선 가까이 오지말라는 야쿠의 말을 무시하고선, 그에게로 다가섰다. 야쿠 상을 일으켜 세우자 그는 달아오른 얼굴을 그 작은 손으로 가리고선, 제 품으로 파고드는 그가 귀여워서 한 번 안아주었더니 더 볼을 붉힌다. 암튼 귀여워, 정말.

 "야쿠상. 고개 들어봐요."
 "응."
 "여기 봐. 완전 빨게졌네. 그렇게 부끄러워요?"
 "일단 옷 골라줄게 가만히 있어봐."

 야쿠는 볼을 계속 매만지며 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옷을 꺼내고 건네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나는 그에게서 옷을 받아들고선, 옆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클래식 정장컨셉으로 웨딩컨셉 화보였는데, 굳이 보자고 하면 조금의 관능미를 더한 웨딩컨셉 화보랄까. 여기서 중요한 건, 웨딩 '컨셉' 화보였다. 절대 그 상대 모델과 하는 웨딩 화보가 아니었다. 나도 사진 감독님만 아니었다면 야쿠상이랑 진짜 웨딩사진이라도 찍었겠지. 둘이서. 하지만 이건 일이었고,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다른 건, 생각치도 못했다.

 "나 촬영하고 올 동안, 가만히 있어여."
 "걱정마. 내가 너냐."
 "열심히 하고 올게여."

 야쿠 상을 뒤로 하고, 상대 모델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서 촬영시간이 거의 2시간 정도가 흘러있었다.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사진감독님의 말에 의상실로 돌아가니 야쿠상이 곤히 자고 있었다. 내 애인은 어찌 저리 귀여운지,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갈 지경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야쿠의 머리결을 쓰다듬자 눈을 비비며 야쿠가 일어났다. 아, 깨우려던건 아니었는데. 미안함에 야쿠상의 얼굴을 매만져 주니 좋다면서 계속 비비적 거리며 제 품으로 파고드는 야쿠상을 제 무릎에 앉혔다. 아직까지 잠이 덜깬 야쿠상이 꾸벅거린다. 나는 졸린 야쿠상의 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선 좀 더 쉬라고 이른 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촬영장으로 나갔다. 이미 야쿠가 의상을 골라놓은 뒤였기에 쉽게 입을 수 있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오늘도 또 매치가 안 맞는 옷을 입고나가 감독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을 뻔했다. 하지만 오늘은 야쿠상이 있었기에 그런 일은 면했다.

 그 후 여러번의 촬영 뒤, 의상실로 들어서자 두 눈을 껌벅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야쿠상이 보였다. 나는 그를 두 팔로 안고선, 달콤하게 속삭였다. 야쿠상도 싫지는 않았는지 고개를 흔들면서도 계속 품으로 파고들었다. 비로소 그가 팔을 벌려 제 품에 완전히 파고 들었을 때, 나는 그를 안아 올려 의상실 밖으로 나갔다. 촬영장 안에서는 이미 촬영이 다 끝났으므로 양해를 구하고 스튜디오를 잠시 쓰겠다고 이른 뒤, 야쿠상에게도 옷을 입혀주었다. 둘다 정장을 입고 있으니 진짜 웨딩화보 같기도 하고, 프로포즈하고 싶은 느낌도 들었다.

 나는 야쿠를 안아들며 말했다. 야쿠상, 좋아해요. 이런거 밖에 못해주는 나라도, 사랑해 주실래요? 감독님은 가볍게 몇 번 셔터를 누르시더니 싱긋 웃어보였다. 야쿠는 촬영 중이란 것도 인식하지 못한채로 리에프의 품에 파고들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둘은 가볍게 버드키스를 나누었다. 둘의 달콤한 장면을 놓지지 않겠다는 감독의 열혈한 의지로 서로는 정답게 사랑을 나누었다. 둘의 밀어는 사진감독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고 나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던 야쿠였다. 야쿠는 리에프를 안으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난 너 많이 좋아해.

 "사랑해, 리에프."
 "저도, 저도 그래여."

 둘의 밀어는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서로의 입에 결국 먹혔으나 다시 흩어진 밀어가 서로의 귓가를 자극하기 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둘은 계속해서 사랑을 속삭였다. 마치 정말 신혼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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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여운은 연주회장의 분위기를 잡아 흔들고 있었다. 강하게 젖어드는 미묘한 울림이 귓가에서 일렁였다. 피아노에서 손을 좀체 떼질 않던 리에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사뿐히 들렸다. 어느새 관객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선, 가벼운 손놀림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던 리에프는 관계자의 지시에 따라 다시 대기실로 돌아섰다. 아쉬워 하는 관객들은 리에프를 향해 장미꽃을 날렸으나 리에프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제지하기 바빴다. 그에 한숨을 내뱉는 이들은 야쿠를 포함하여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바 리에프. 일본을 대표하는 러시아 혼혈 피아니스트. 올해 23살, 다수의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개인 공연을 하며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는 중.

 야쿠는 입으로 리에프의 프로필을 줄줄 외우며 대기실을 지나치고 있었다. 오늘에야 말로 리에프를 만나고 말겠다는 강렬한 외침과 더불어 더 이상은 참기 힘들다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끼얹으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거기, 누구시죠."
 "네에, 관계잡니다만."
 "아,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린 룸 안으로는 들어가지 마십시오."

 쳇. 아쉬움에 돌아서려고 하니 그린 룸에서 리에프가 튀어나왔다. 아! 저 기럭지 하며 날이 선 반듯한 눈매마저도 매혹적이다 못해 아찔하다. 또, 저렇게 가지런한 손가락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게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야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넋을 놓은채 리에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팬이신가봐요? 남자 팬은 드문데. 이런 팬서비스라도 괜찮으신지 모르겠네."

 그러더니 리에프는 야쿠의 손에 가볍게 입맞춘 뒤,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남자에게 손 키스? 먼저 든 생각은 떨리는 손을 주체 할 수 없었던 걸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겠다는 거였고, 그 다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어떻게든 붙잡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리에프에게로 뛰어가다가 그의 몸으로 쓰러질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멈춰섰기에 자신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저 귀한 몸에 흠집하나라도 나면 안 되지, 암. 야쿠는 그래도 자기 몸이 넘어졌으니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앞에서 리에프의 손이 어른거렸다.

 "괜찮으세요? 뛰어 오길래 멈춰섰는데 넘어지셔서"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급하게 뛰어오시던데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웃으며 물어보는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멎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점차 흩어지는 시선에 리에프가 두개로 나눠졌다. 의식이 점차 무의식으로 전이 될 즈음 고개를 흔들어 제지시켰다. 리에프를 바라보며 정확하게 말했다.

 "저, 팬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알아요. 제 팬이시니까 오신거겠죠?"
 "그래서 제가 당신한테…"
 "네. 저한테 뭐요?"
 "그, 그러니까…."

 직접 그를 대면하고 나니 말을 잇기가 껄끄러웠다. 당신에게 악보를 준 건 나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야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닙니다, 로 짧게 그와의 만남을 끝냈다. 그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야쿠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그 간결한 감정을 거두고는 자신의 팬이라는 남성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고선 경호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야쿠도 언젠가는 꼭 다시 그를 만나리라고 다짐하며 짐을 챙기고 작업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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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밤 옆집 테라스에서는 담배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하얗게 물들어간 연기 한 송이가 거무죽죽한 공기를 가른다. 네온사인이 붉게 물든 도시 한 가운데의 아파트에서, 작게 마련된 공간이 테라스가 아니던가. 요즘 매번 기침을 달고 사는 것도 그 남자 때문이 아닐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테라스에 있는 작은 선반 위에 라이터와 담배를 놔두고 다녔는데, 그 선반은 제 집에서 닿을 수 있는 거리라서 혹여나 그가 나갔을 때 슬쩍 빼오면 안될까 생각도 해봤다. 옆집이라 그런지 붙어있는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테라스가 아주 가까이 붙어있었다. 정 안되면 넘어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하지만 매번 제 인기척에 그는 테라스로 나왔으므로, 재빨리 뺏아올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을 뿐더러 빼앗아 온다 하더라도 그는 아마 다시 담배를 사러 앞의 편의점에 갔다 왔을테다.
 담배피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제가 나와있을 때 만큼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 그는 항상 제가 밖에 있는 시간을 노려 조심스레 나와선 능청스레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선 보란듯이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뻑뻑 피워댄다. 제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표정 하나 까딱없이 그저 슬며시 웃으며 저를 마주할 뿐이었다.
 몇 일 이야기 하다보니 그에 대한 몇가지 정보를 알게되었다. 하이바 리에프. 나이는 28살. 제 나이보다 딱 2살 어렸다. 회사는 이 근처 어디. 우연인가? 제 회사와 가까운 것 같았다.
 옆집인데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제 쪽이 아니라 그 남자였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건넸다. 제 테라스로 넘어온 길쭉한 손이 어른거렸다. 제가 그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는 어서 악수하자며 재촉했다. 그는 미묘한 미소를 흘기며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이 연기를 흩날렸다. 그가 피던 담배 연기가 제 쪽으로 날라오자 갑작스런 상황에 콧속으로 들어온 텁텁한 담배향기가 목을 간질였다. 재채기가 튀어나오고, 옆에선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나는 코를 틀어막았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서 제 테라스로 넘어오려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급히 그를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혹시 어디 안 좋으신건 아님까.
 -호흡기가 좀 안 좋을 뿐입니다. 담배도 조금 힘들고요.

 그가 언젠가 제게 담배를 권유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거부했고,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뻑뻑대던 기억이 있었다. 그게 불과 사흘 전인데. 굳이 그 사람에게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담배를 피지 않겠다고 하며 제가 있을 때만큼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다른 때에도 정말 안 피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요즘들어 그의 곁에서 나는 냄새는 담배냄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질이 나쁜 냄새였다. 싸구려 향수 냄새, 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독한 꽃의 향기가 코 근처를 간질였다. 직접적인 불쾌함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의 몸에서 나던 담배냄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질 나쁜 냄새에 대한 출처는 끝끝내 들을 수 없었다.
   
 -있잖아요, 그 쪽, 애인있슴까?
 -없어.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귀여워서. 그의 잇새로 튀어나온 그 단어에 움찔 반응하더니 뒤로 물러나자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나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제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인지하지 못했으며, 다시 말을 건네기 까진, 조금 힘겹게 대꾸한 탓도 있을테다.

 -그럼, 너는?
 -저 말임까? 음, 애인은 없는데. 신경쓰이는 사람은 있슴다.
 -누군지 물어봐도 돼?
 -작고 귀여운 사람임다. 부드럽고, 고운.

 아마 그 싸구려 향수의 주인공인 듯했다. 작은 여자가 취향이라니. 역시 자신의 성향과는 반대의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 말이 맞는 걸까. 나는 쓴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선,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도 조금있다가 이내 추위를 느끼며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심장은 쿵쾅대고 있었다.

 몇 일 후에 그를 봤을 땐,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피폐해진 얼굴과, 녹아내린 다크서클, 수척해진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겼다. 테라스에는 이제 담배가 아닌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너 뭐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거야, 대체!
 -머리가 너무 아픔다.
 -무슨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지 않아서여.
 -아아, 연애문제? 그 때 작고 귀엽다는 그 사람?
 -예.

 이거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저 남자는 뭘했길래 아직까지도 고백을 못한걸까. 그냥 남자답게 저질러버려! 하고 조언해 주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조금 무리가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여자는 네가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
 -아, 그 여자. 모르겠죠 아마.
 -그럼 그냥 남자답게 해버려! 뭘 고민하고 앉아있어.
 -그 사람은 나보다 너무 여려서 부서질지도 모르겠거든여.

 그게 당신이란 걸 왜 몰라. 그 남자의 입이 뭐라 중얼거리긴 했으나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를 토닥이며 술은 그만 마시라는 충고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냈다. 20대의 연애란 좋구나. 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선 찬 바람을 느끼며 밤을 보냈다. 

 이틀 후, 그의 얼굴은 좀 나아진 듯 했으나, 끈적하게 달라붙어오는 그 시선은 어딘가 불순한 것이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 여자랑은 어떻게 잘 되고 있어?
 -예? 잘 모르겠슴다. 아직도 못 물어봐서.
 -답답하네. 나 같으면 바로 물어볼텐데. 20대면 좀 더 불꽃같은 연애를 즐겨야 하지 않나? 왜 그렇게 고민해. 그 여자가 너 싫대?
 -모르겠슴다. 연상이라서 대하기도 힘들고.
 -아, 연상.

 연상의 여자라. 너도 취향한번 독특하다. 적어도 29. 아님 30대라는 얘긴데. 그 정도 나이면 연하나 만나고 있을 시간은 없을텐데. 그래도 저런 남자면 만나볼 가치는 있겠지. 그건 제 생각이 아니라 그 여자의 생각일테니.

 -그래도 술은 그만마셔. 몇 일째 술만 마시고 있잖아.
 -그럼 마지막으로 딱 한 병만, 당신이랑 마시면 안될까여.
 -여기서? 그래, 그럼.

 그러더니 그가 조심스레 들고 나온 건, 와인잔 두개와 비싸보이는 와인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자주빛의 액체가 조심스레 흘러내렸다. 그의 것을 따라주고 약간 몽롱한 기분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건 남자에여.
 -뭐라고?
 -그렇다고 하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시겠죠?
 -아니.

 별로. 취향이란 건 다 다른거니까. 제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좀 밝은 얼굴로 저를 마주했다. 헌데 그것이 조금 이상한 것이 그의 끈적한 시선이 달라붙었을 뿐더러 와인을 놓고 테라스 사이에 붙어오던 그의 손을 느꼈기 때문일게다.
 그의 입술이 제 것을 향해 다가왔다. 혀가 밀고 들어오던 끈적한 느낌에 그는 혀 끝으로 제 입천장을 쓸어내리더니,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옆 선반에 잠시 내려놓고 제 머리를 끌어당겼다. 강하게 얽혀드는 그의 혀가 축축하게 서로의 것을 쓰다듬었다.
 나는 당황할 새도 없이 그의 혀에 농락당해야 했다. 야릇하게 쓰다듬는 그의 손은 초조함에 잠겨있었다. 매만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애절함이 녹아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서성이는 제 혀도 그러했다.
 그의 입에선 담배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달콤한 향이 났다. 사탕인가. 거기에 약간 붉게 상기된 눈도 뭔가 귀엽게 보이고. 오히려 이상한 건, 제가 이 상황에 저 남자랑 왜 키스를 했냐는 것인데.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저 사실 당신을 좋아함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때 부터. 저 싫어졌겠죠?
 -아니.
 -저 그럼 당신한테 고백해도 되나여. 제 방식대로, 야쿠 상이 말했던 것 처럼 남자답게.

 그렇게 우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자연스레 넘어가는 의식의 흐름이 무의식을 덮칠 때 즈음, 우리는 테라스에서 달콤한 키스를 하고 있을게다. 그것이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거나,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매만지고, 그는 상체를 굽혀 제 입술에 살며시 입맞출게다.
 서로의 거리는 그렇게 짧았다. 하지만 인연은 길었다. 사랑하는 나의 연인. 나는 당신과 나의 입술이 닿는 거리를 알고 있다. 그것은 거의 닿을것 같으면서도 애절하게 멀어져가서 당신이 나를 꽉 붙잡아 주었기에 제가 닿을 수 있었다는 걸. 당신은 과연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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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버스AU


2. 리에야쿠


리에프, 그 글자가 제 목부근에 새겨지기에는, 그닥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 녀석이 배구부에 들어오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는, 어쩌면 제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드레스 룸의 벽에 달린, 전면거울을 바라보며 목 부근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선명하게 새겨진 그의 이름이, 어딘가 멀게 느껴진다. 목이라기엔 조금 애매한, 오히려 턱부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에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었다. 고개를 젖히면 적나라 하게 그의 이름이 드러나기에 나는 최대한 가릴 수 있는대로 가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여름에 목부근을 감싸는 짓은, 더위 때문에라도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반창고로 가리고 말지.

방학이랍시고 아침부터 나와 배구 연습이나 하고 있는 3학년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더위는 한껏 내리쬐는 햇살너머로 숨어버려, 욕할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건장한 남고생들 사이로 들어서며, 한숨을 내뱉었다. 더위에 찌들린 이들이 제게 시선을 돌린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돌아가는 눈들이 삐걱대며 제 목에 붙어있는 반창고로 시선을 돌린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바라봐?"
"야쿠, 결국 그렇고 그런거 한거야? 그 녀석도 너무한걸."
"뭘 했다는거야?"
"모르는 척 하지마. 리에프한테 다 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뭘. 나는 갑작스레 던져오는 그들의 희롱과도 같은 말투에 의아해하는 기척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채로 다른 이들에게 여러 번의 같은 물음을 반복했으나 다들 발뺌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렇게 제가 풀리지 않은 의문에 신경쓰고 있을 즈음, 이 문제의 제공자인 리에프가 부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심까! 저 오늘은 안 늦게...엣, 왜 그러심까?"
"리에프. 너 얘들한테 대체 뭘 말한거야?"
"그건.., 말 못함다! 애초에 아무말도 안 했.., 야쿠 선배."
"어,어. 왜?"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리깔며 따지듯 물어오자 평소와는 다른 냉담함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는 제 목을 빤히 응시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서 반창고를 떼기위해 그 긴 손을 쭉 뻗었고, 잠시 당황한 나는 애써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누구에여, 그거."
"뭐, 뭐가."
"선배, 누구랑 잤어요? 쿠로 상? 카이 상? 아님, 제가 모르는 외간 남자랑 바람이라도 난거에여?"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무짓도 안했..!"

점차 언성이 높아지자 보다못한 쿠로오가 야쿠의 입을 막았고, 타케토라는 리에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쿠로오를 바라보자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휘적휘적 젓기에 정강이를 한 대 차주고선, 켄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없을 때 쟤가 무슨 이야기라도 했어? 그러자 약간 수긍하듯 켄마가 고개를 살짝이 끄덕였다.

"뭐.., 했을지도."

대답이 조금 시원치 못했다. 아쉽지만 쿠로오에게라도 뭔가를 물어봐야 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아마 아저씨의 능글맞은 대답 뿐이겠지만, 어중간한 대답보다는 아마 나을게다.

"쿠로오. 저 녀석이 뭔가 말한거야? 나 없는 동안?"

"음, 그렇다고 해두지. 하지만! 리에프가 뭘 말했는지 직접 생각해 보도록! 쿠로오 상은 부끄러워서 그런거 입 밖으로 못 내뱉는답니다. 이래봬도 순수하거든, 은근."
"전혀."
"리에프가 뭐라 했냐면.., 음...뭘 하겠다고 하던데."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우리들끼리 추측이었지. 너네 둘이서 그런 짓을 했을거라는 망상.

결국 네 놈들 탓이잖아. 나는 다시 쿠로오를 장난스레 걷어차며, 리에프에게로 다가갔다. 아직까지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나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이, 리에프."
"야쿠선배."

타케토라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체육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둘의 뒤에서 체육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으나 여전히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당당히 그에게 다가가 마주섰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어딘가 매서웠다.

"이거, 누구 자국이에여? 그 새를 못 참고 다른 남자랑 한...!"
"네 이름."

나는 조심스레 붙어져 있는 반창고를 떼어냈다. 선명하게 드러난 그의 이름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제 목에 얼굴을 들이 밀더니 가볍게 키스했다.

"선배가 바람핀 줄 알았어여. 아직 내 꺼도 안 들어갔는데. 이름, 오늘 생긴거에여? 지금 막 손가락 갖다 댔는데 찌릿찌릿거려여. 선배, 안아도 돼여?"
"안 돼."
"에엣, 안게 해주세여!"
"지금 말고 나중에. 우리 집에서."

귓속말로 속삭이자 그의 얼굴이 새빨게 지더니, 조용히 네,하고 대답하고선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귀여우니까 오늘은 봐준다. 그를 뒤 따라 들어가며 나중을 기약하고, 그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서투를지도 모르는 그대, 하이바 리에프.

부디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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