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오이×카게

 

 

 

 실은, 그는 날 사랑하지 않았던게 분명했다. 그의 표정만 봐도 그러했다. 사랑이라고 명백히 말을 꺼냈으나 정작 행동은 그러지 않았다. 어렸을 적, 좋아하는 아이에게 얄궂게 행동하는 남자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달까. 하지만 어린아이의 장난과는 다른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더 나쁜 행동을 하고 있건만, 어른이란 이유로 벌은 커녕 꾸중조차 듣지않는, 이유없는 욕심으로 가득찬 당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당신은 정녕 진심으로 사랑을 외쳤던가. 나는 당신의 마음에 비수를 던진다. 차가운 화살이 제 말을 통해 그의 가슴에 박힌다. 피가 흘러나오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숨에 가까운 신음을 흘리다가 죽음에 사로잡힌 당신은, 곧 정신을 잃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당신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제 시야를 관통시켰다. 이제 핏물이 흘러내리는 제 시야 안에는 핏물에 적셔져 어쩌면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당신에게 장미를 건네고, 당신은 그 장미를 받아들며 살며시 웃어보인다.

 "장미가 조금 시들었네, 토비오."



*



 오이카와 토오루, 23살. 성인이 되자마자 가업을 이어 현재 서점을 운영하는 중이다. 실제로 평일 한 낮, 한가하게 서점에 들러 책을 사가는 사람은 극히 적었으므로 가게 돌보는 일도 그닥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나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손님이 와도 친절하게 인사하는 걸 잊지 않았으며 사근사근한 그의 태도는  제 마음을 매혹시키기엔 충분했다. 줄곧 당신같은 남자를 바랬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거의 서점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도 서점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계단으로- 2층에 있었고, 서점 앞을 정리하거나 청소할 때 빼고는 거의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게 당연했다. 더군다나 지금같은 여름에는 더욱. 한 손에 부채를 쥐고, 앞에 책을 펼쳐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웠는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분위기 만큼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당신은 잡아 삼킬 듯한 눈빛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으나 얕게 찰랑이는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손님이 계산대 앞에 다가와서 당신을 부르면, 그 청명한 눈으로 손님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는다. 당신이 좋다. 부디 그 눈으로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서점 옆을 지나쳤다.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나, 그것도 어느 날에 당신의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는 매일마다 지나치는 제 모습을 보고선, 나를 붙잡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기심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호기심은 점차 관심으로, 증오로, 애정으로 변하며 제 마음을 갉아 먹으리라고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으나, 외면하고 싶었다. 확실치 않은 미래를 제 행복과 맞바꿀 순 없었으므로.
 당신은 제게 고백했다. 스스럼없이 이름으로 부르며, 책 선물까지 하고, 관심이 있으니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볼을 붉혔다. 단순히 좋아해, 혹은 사랑해보다는 관심이 기운 쪽에 가깝겠지만.

 "있지, 토비오. 토비오는 어느 학교 다녀?"
 "카라스노 고등학교.., 요."
 "헤에, 카라스노? "

 그는 아직까지 제가 고등학생인줄 알고 있다. 실제로 거리를 다닐 때 교복이 편하니까, 눈에 띄지 않으려면 오히려 교복이 더 나은 편이었다.
 오이카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정리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여전히 제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거, 좋아요?"
 "응."

 그 날 우리는 무덤덤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키스하고선 헤어졌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 건, 그 다음날이었다. 실은 충격적이라기 보단, 들어선 안되는 의뢰에 불과했지만, 그를 죽여달라는 의뢰였다. 당신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제 손에 죽어야하는가. 그리고, 나는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는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겐 너무나 단순한 의뢰였으나, 제겐 단순할 리가 없었다. 아직 사랑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으나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와 나는 서로 사랑할 수 있었을게다. 서로의 배신만 없었더라면.
 사랑인가, 배신인가. 그것은 문제삼을게 아니었으나 도덕적인 양심에는 문제가 있었다. 제게 관심을 가져준 그 상냥한 사람에게, 총을 겨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죽여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이지 못한, 어떤 더러운 술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더군다나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였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진 당신에게 제 마음을 전부 주지는 않았으므로, 어쩌면 분명 나는 당신에게 가볍게 이별을 선언하고 당신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나를 조심히 대해주었다. 겉으로 장난은 치고 있으나 속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바스라질까 두려운 여린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거, 얼마에요..?"
 "그 책? 안 팔아. 네가 읽으면 해로울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어서 안돼. 고등학생은 그런거 읽는 거 아냐."

 하루는 책을 들고 가서 그에게 내밀었더니 되려 호통만 들었다. 아마 책을 잘못고른 것 같았다. 그냥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 왔는데, 그게 외설스런 글이었던 걸 보면. 그래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책을 다시 되돌려 놓고 와야 했다. 그는 실수 할 수도 있다며 나를 타일렀으나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곧 죽을 사람에게 정을 둬선 안 되는 일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당신은 제 손에 죽을 것이다.

 "내일 봐, 토비오."

 당신은 여전히 그 달달한 목소리로 제 귓가를 자극한다. 적절히 섞인 미성이 마음에 와닿았고, 옅은 숨소리가 입가에 닿았다 사라진다.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며, 서로의 입술을 맞대었다. 속으론 내일 당신을 죽일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사랑한다는 거짓말을 지껄이며 미소지었다.

 "내일 봐요, 오이카와 상."

 그의 마지막을, 제 손으로 물들이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날을 위해 나는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사고, 그에게 선물받은 책을 소중히 손에 들고 그에게로 향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목소리 또한 미성에 부드러움까지 첨가한 완벽한 모습이었다. 나는 책의 한 구절을 읽으며 그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언뜻 보기에는 프로포즈 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아니었다. 그가 장미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총을 겨눴다.

 "오이카와 상, 사랑해요. 하지만 난 당신을 죽일 수 없어. 그러니까, 나 대신 살아요. 저 멀리 도망쳐서 나 대신 살아줘. 이 더러운 세상에서 죽는 건 나 혼자만으로 족하니까, 부디 당신이라도 살아."

 그의 손에 붙들려 있던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계산대 위에 펼쳐져 있던 책으로 떨어졌다. 핏물이 책들로 떨어졌다. 그는 제 손에 들린 총을 빼내서 자신의 입을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이내 그 차가운 쇳덩이를 꺼내들어 제 목을 조준했다. 제 손을 빠져나간 총기의 서늘함이 다시금 목 주변으로 박혔다.

 "죽을거면 제대로 죽어. 토비오. 어설프게 얼쩡거리는 건, 내가 원하던게 아냐."

 당신이 조준한 총이 제 목을 관통했다. 살점을 비집고 나온 총탄이 핏물을 가득히 묻히고 떨어져 나갔다. 일그러져 형태 조차 알 수 없는 피부가 찢겨나왔으며, 검붉은 핏물이 흘러넘쳤다.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 나는 분명 당신의 죽음을 바랬건만,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없었다. 사랑이란 어설픈 욕망을 건네 준, 당신이 너무나 싫었으나 제 손으로 직접 죽이기엔 과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게다. 좋았던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핏물에 적셔진 장미가 책 끝에 걸쳐져 있었다. 장미는 조금 시들어있었다.

_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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