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곧 당신은 질테니.
 밤의 마지막 야상곡을 들으며.



 다자이 오사무는 아름다운 선을 가진 남자였다. 근처 카페에서 가볍게 피아노 연주나 하는 음악가였음이 당연한데, 그의 선율은 지나칠 정도로 고상했다. 아니, 이질적일 정도로 가식적이었다. 무튼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확실히 그 카페에서였다. 투명한 창 밖으로는 꽃이 만발한 벚나무가 하나 있고, 비좁은 카페 안에 자리하고 있는 피아노 한 대와, 그 앞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는 다자이 오사무를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가끔씩 카페에 나와서 피아노를 치곤 했다. 음악계에서 퇴출당한, 비운의 남자 다자이 오사무. 내가 그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온 기사였다. 남자는 그 전에도 아름다운 미소로, 그 섬연한 손가락을 누르며 부드러운 연주를 이어나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뒤지던 도중, 과거 그의 리사이틀 영상이 있어 그것만 밤새 보고 있었다. 확실히 현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카페에서 부드러운 연주를 하던 그는 온데간데 없고, 강하게 흘러내리는 피아노 음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의 음들은 하나같이 다 산만했다. 물론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웠으나 지금과 같은 부드러운 선율을 과거 그의 연주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남자의 선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과거 그러했던 그의 성정과 달리 제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의 모습은 꽤 부드러워 졌다고 느꼈으나 그 산만한 연주는 여전했다. 하지만 건반을 누르는 그 가는 손가락과, 심지어 연주를 끝낼 때 눈꼬리를 길게 휘며 웃는 건 남자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는 제 그림에 영감이 되는 존재였다.

 하루는 그가 일하는 날에 맞추어 카페를 찾았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꽃이 떨어지는 봄날에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다른 점원은 제 이름을 묻더니 컵에 '츄'라고 쓴 뒤 나중에 부르겠다 답했다. 카페에는 사람이 그닥 없었기에 나는 곧바로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스케치 노트를 펴고, 연필을 집어들었다. 그의 모습을 피아노와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연속으로 사진을 찍어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옆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음악가를 제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는 이제껏 그래왔듯이 악보와 소통하고 피아노와 사랑을 해야했다. 그러면 내가 더 그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남자의 눈꼬리가 휘었다. 곧 연주가 끝날 예정이었다.

 "오늘도 왔군."

 남자는 제게 다가오며 물었다. 나는 들고 있던 노트를 품 안에 감추며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이상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를 몰래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그것만은 절대. 그러나 매정하게도 그는 여실히 떨고 있는 제 손에서 노트를 낚아채 갔다. 남자의 휜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이거, 나인가? 나 같은 건 별로 좋은 모델도 아닐텐데. 굳이."
 "아, 아닙니다. 그냥 연주듣는 게 좋아서 듣다보니 손이 움직여서, 그렸,"

 말이 계속 헛나갔다. 남자는 당황한 제 모습을 보더니 다시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흘기며 노트를 돌려주었다. 나는 뻣뻣하게 그에게서 노트를 뺏어들었다.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제 귀에 무어라 속삭이더니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 앉았다. 나는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창밖을 바라봐야 했다.
 그럼 계속 칠테니까, 열심히 그려. 이름이, 츄야랬나? 츄야 군, 이 음악은 널 위한 거야.

 남자의 아름다운 손이 계속해서 건반을 어지러이 건너다녔다. 음이 퉁명스럽게 제 가슴을 계속 찌른다. 붉어진 볼은 터질 것 같이 달아올랐다. 투명 유리 밖의 꽃잎은 선율에 맞춰 흩날렸다.

 "그래서, 츄야 군. 그 그림은 어쩔건가. 나한테 팔지 않겠나?"
 "싫, 습니다."
 "그래? 그거 아쉽군. 그럼 이건 어때. 이건 널 위한 곡이니까 그 그림이랑 이 악보를 바꾸지 않겠나?"

 Nocturne. 야상곡. 남자는 삐뚤어진 음표가 가득한 악보를 내게 내밀었다. 남자가 밤마다 썼을 이 곡을 생각하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가질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 하나 뿐일 거고, 더군다나 날 위한 곡이라는 말은 거짓으로 들렸기 때문일까. 이런 비슷한 곡을 그의 리사이틀 영상에서도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건, 제가 받을만한 게 아닌데,"
 "난 이미 그 악보를 다 외웠으니까, 상관없어. 그러니 자네가 가지게."

 그렇지만, 나는 끝끝내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남자가 악보를 건네는 손을 떨쳐냈다. 악보가 흰 꽃잎인 마냥 흩날렸다. 카페를 뛰쳐나왔다. 노트도, 가방도 챙기지 않은 채였다. 분홍빛의 벚꽃잎이 흩날렸다. 거리 곳곳의 화단에는 하얀 꽃들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음은 아직까지 겨울인 마냥 시리고 또 시렸다.


 그가 보여주는 관심은 거짓일 게 분명했다. 나를 위해 쓴 곡이라니, 가당치도 않을. 나는 그의 과거 리사이틀 영상이 담긴 DVD를 구입했고, 매번 그 부분만을 돌려보았다. 남자가 나를 위해 썼다던-분명 내가 아니라 전 애인을 위해 쓴-녹턴을 들으며 나는 애상에 잠겼다. 남자는 제게 관심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나는 저 화면에서 보이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 저 무섭고도 강렬한, 그 잔인한 음들의 향연을 더 이상은 들을 수 없었다. 부드러운 음은 어느새 광기로 변해있었다.

 그 후, 나는 그의 음악을 끊었다.(흡사 마약과도 같은 중독성이었기에 끊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DVD는 부러트려 쓰레기통에 버렸고, 공책과 연필은 다시 샀다. 가방에도 그닥 중요할 만한 건 들어있지 않았기에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예의 그 카페에 갔을 때, 그와 약 1년만의 조우가 이루어졌다. 남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분명 나를 잊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커피를 주문해 옆 테이블에 앉으려는 순간, 그 강렬하게 아름다운 음이 제 귓가를 때렸다. 저 부드러움, 절제된 선율이 다시금 나를 매만졌다. 남자는 여전히 제 모습을 눈꼬리를 휘며 응시했다.

 기억하는걸까. 무례하게 그의 호의를 거부하고 도망친 나를.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꽃이 피고 있었다.
 그는 이제 유약한 성정을 과시했으며, 이전의 그를 나타냈던 화려한 그 자신은 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녹턴을 들으며 그의 얼굴을 마주한다. 이토록 행복한 밤은 없으리라.


 꽃이 피고,
 곧 당신은 질테니.
 밤의 마지막 야상곡을 들으며.


Nocturne_fin.

+ Recent posts